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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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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정책 ‘담대한 계획’엔 담대함도 계획도 없었다

정책 연속성 무시한 역주행에 한반도 긴장 위험수위…
대북정책의 정치적 이용 벗어나야
등록 2022-11-16 10:12 수정 2022-12-09 02:39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상정한 ‘호국훈련’이 시작된 2022년 10월17일, 한국군 장병들이 경기도 파주시 한 훈련장에서 자주포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상정한 ‘호국훈련’이 시작된 2022년 10월17일, 한국군 장병들이 경기도 파주시 한 훈련장에서 자주포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 안전은 국가의 무한 책임입니다. 국민들께서 안심하실 때까지 끝까지 챙기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2022년 8월17일)에서 한 약속은 깨졌다. 10월29일 밤 서울 한복판에서 156명이 압사한 이태원 참사는 윤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참사 전후 국민은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했고, 경찰청장과 행정안전부 장관 등은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 대통령은 이들에게 책임을 묻는 대신 참사 희생자 분향소를 매일 찾아 추도했다.
국민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6개월을 이렇게 맞았다. 고물가, 고금리, 공급망 불안 등 경제위기, 북한 미사일 발사 시험 등 안보위기에 이어 많은 사람이 서울 도심에서 목숨을 잃는 안전위기까지 겪었다.
국민의 실망감은 여론조사 결과에 그대로 투영됐다. 코리아리서치가 문화방송(MBC) 의뢰로 11월7~8일 전국 성인 1001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33.4%, 부정평가는 59.7%였다. 긍정평가는 한국방송(KBS) 조사(11월6~8일, 전국 성인 1천 명, 한국리서치)에선 30.1%였고, 에스비에스(SBS)는 28.7%(11월7~8일, 전국 성인 1006명, 넥스트리서치)였다.
30% 전후의 긍정평가는 역대 대통령(1년차 2분기 기준) 가운데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로 나쁜 성적표다.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83%)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62%)도 높았다. 빠르고 과감한 개혁과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극복 덕분에 국민의 지지를 모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도 75%로 높았다.(전국 성인 1001명 갤럽 조사,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윤석열 정부 6개월을 대통령과 집권세력, 경제, 안보 등 분야별로 나눠 분석했다. 윤석열 정부와 함께 여당인 국민의힘의 난맥상도 짚었다. _편집자주

취임 6개월을 맞이한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30% 안팎에 머물 정도로 국민의 실망감은 크다. 대북정책과 외교안보정책에 대한 실망감과 우려도 마찬가지다. 특히 “담대한 계획”을 두고 담대함도 없고 계획도 없다는 비판이 국내외에서 나온다. 여기에 비판을 더 보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걸어온 길보다 걸어갈 길이 훨씬 멀고도 험한 윤석열 정부에 무엇을 권고할 수 있을까? 글을 쓰는 내내 머릿속을 맴돈 생각이다.

떠오르는 말이 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 이렇게 말했다. “기본적으로 대북정책은 ‘이어달리기’가 되어야지, 이전 정부를 완전히 무시하고 새롭게 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실상은 어떨까?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로부터 이어받은 바통을 쥐고 앞으로 가기보다는 돌아서서 전임 정부를 패고 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살인을 저지른 탈북자 송환 사건을 이유로 전임 정부 인사들을 겨냥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불리한 국제정세, 유리한 정치 지형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 정책을 ‘강화’하는 부분은 있다. 3축 체계를 비롯한 군사력과 한-미 연합훈련 대폭 강화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단계적 군축을 추진하기로 합의했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약속했다. 남북관계 악화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좌초의 중대 원인은 이런 합의와 약속을 지키지 않은 데 있는데, 윤석열 정부는 오히려 더 강하게 달리는 형국이다.

냉정하게 보면 윤석열 정부는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를 도모하기에 매우 불리한 정세를 안고 출범했다. 북한이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를 닫아걸고 핵무력을 국체로 삼아 안보는 핵으로, 경제는 자력갱생으로, 외교는 중국과 러시아 중심으로 삼기로 결심한 때는 문재인 정부 시기였다. 북한의 이런 선택은 기존 대북정책의 수단이 거의 상실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설상가상으로 미-중 전략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전쟁의 장기화로 주변국들의 대북정책 집중도와 협력적 태도도 크게 떨어졌다. 이로 인해 역대 모든 정부의 핵심 대북정책 목표인 한반도 비핵화는 너무나 멀어졌다.

윤석열 정부가 이런 정세의 불리함을 뚫고 성과를 도모할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출발점은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상 보수 정권이 중도·진보 정권보다 정치적으로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보수 정권이 전향적인 대북·대외 정책을 추진해도 종북이니 친중이니 하는 정치적 시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또 대북정책이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우선순위에서 크게 밀리는 것도 한국이 주도해 한-미 공조를 이뤄낼 역설적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정부·여당에 호소하고 싶다. 대북정책을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는 유혹을 이겨내고 정치적 자율성의 유리함을 남북관계 회복과 한반도 평화 증진에 써달라고 말이다. 한반도 정세가 전쟁을 걱정할 정도로 악화하고, 미-중 전략경쟁이 자칫 대만해협에서 무력 충돌로 이어질 경우 남북이 동맹의 체인에 엮여 전쟁으로 빨려 들어갈 위험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동맹의 체인 묶여 전쟁 휘말릴라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담대한 계획’은 안팎으로 냉소를 불러일으키지만 유망한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하나는 ‘핵을 내려놓으면 잘 살게 해줄게’라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과는 달리 ‘대북 안전보장’ 방안을 포함하려 한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비핵화를 달성하는 데 ‘단계적 접근’의 불가피성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는 북한의 요구와 공통분모를 품고 있기에 대화와 협상이 재개되면 성과를 만들어낼 기초가 될 수 있다.

문제는 대화와 협상을 재개하는 출발점에 있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 내내, 그리고 윤석열 정부 출범 6개월 동안 거듭 확인됐지만, 한-미 연합훈련 강행과 남북·북미 대화 재개는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이 자명해졌다. 또 연합훈련 타령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동시에 연합훈련을 일시적으로 유예하면서 북한에 대화를 제의하는 것 이외에 어떤 대안이 있느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2018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연합훈련 연기와 중단 약속으로 시작됐고 평화프로세스의 좌초가 이 약속의 불이행으로 촉발됐기에 더욱 그러하다.

정전협정 70주년, 평화협정의 물꼬 삼아야

윤석열 정부가 한-미 연합훈련을 일시적으로 유예하고 북한에 대화를 제의한다고 해서 색깔론에 시달릴 일은 없을 것이다. 한반도 위기관리와 대북 대화 재개에 기여할 수 있는 만큼, 바이든 행정부를 설득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특히 연합훈련 유예와 한-미 공동의 대북 제안 마련을 유기적으로 추진하면 효능감을 더욱 높일 수 있다. 이러한 결단은 빠를수록 좋다. 연합훈련 준비가 진행될수록 이를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2023년 3월은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해 북핵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지 30년째가 된다. 이는 한·미 양국 대통령이 1992년 1월 ‘팀스피릿’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기로 한 약속이 1년 뒤에 뒤집힌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 2023년 7월은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맞는다. 정전체제는 북핵의 가장 깊은 뿌리에 해당한다. 윤석열 정부가 이런 역사의 시계에 주목해 2023년 3월로 예정된 대규모 연합훈련을 유예해 대화의 물꼬를 트고 7월에는 70년 만에 처음으로 평화협정 협상을 개시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보는 건 어떨까? 이 정도는 돼야 담대한 계획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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