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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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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과학에 많이 간섭하는 것은 옳지 않다”

로봇물고기 개발자 에식스대 후훠성 교수 인터뷰
2009년 이명박 대통령 개발 시점 2년 뒤로 못박아, 실제론 2012년 시험 개발 뒤 큰 진전 없어
등록 2014-02-14 15:16 수정 2020-05-03 04:27

영국에서 연수 중인 경제부 이정훈 기자가 로봇물고기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이름난 에식스대 인공로봇연구소 후훠성 교수와 최근 만나 나눈 이야기를 대담 형식의 글로 보내왔다. 지난해 이 기자가 영국으로 연수를 떠날 때,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그에게 특별히 에식스대 로봇물고기 전문가들을 취재해볼 것을 여러 차례 제안했다고 한다. 이 기자는 “박상표 정책국장에게 많은 빚을 졌고, 이제 그 빚을 갚을 길이 없음이 원망스럽다”며, 뒤늦게 이 인터뷰로나마 그에 대한 추모의 정을 대신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_편집자

영국 에식스대는 로봇물고기 개발의 선두주자로 국내에서도 유명세를 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9년 11월 ‘국민과의 대화’에서 수질오염 감시용으로 로봇물고기를 소개한 바 있다. 아울러 상용화 시기도 2011년 11~12월로 못박았다. 이와 관련해 에식스대 인공로봇연구소 후훠성 교수는 국내 대학과 공동 연구를 진행해온 당사자다. 후 교수는 지난 1월30일 진행한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로봇물고기 개발사업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이 2011년에 상용화할 수 있다고 얘기한 것은 정치인의 수사였다. 현시점에서 봐도 앞으로 5~10년 뒤 수질오염 감시 기능을 갖춘 로봇물고기가 개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알고 얘기했는지는 모르지만 크기를 줄이려고 물고기 여러 마리가 기능을 분산해 편대를 이루도록 한 것은 좋은 아이디어였고, 실제 우리도 그 방향으로 개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1m 개발했지만 무선통신 부품 달고 나니 1.8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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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물고기를 개발하게 된 계기는.

=2002년 런던의 아쿠아리움에서 전시용 로봇물고기를 필요로 했다. 이 제안을 받아 개발을 시작해 2005년 전시할 수 있었고, 2007년부터는 매일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전시하고 밤에는 충전하는 식으로 지속적으로 로봇물고기를 선보였다. 이후 2009년 유럽연합(EU)의 제안으로 선박 출입이 잦은 항만에서 기름 누출 등 환경오염을 영구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로봇물고기 개발을 시작해 2012년 스페인 북부 항만에서 시범 운용을 했다. 2011년부터는 환경 감시를 목적으로 하는 로봇물고기 개발을 한국의 한국생산기술연구원(KITECH)·부산대는 물론 중국 샤먼대 등과 함께 하고 있다.

-개발 목적은.

=현재는 수질오염 감시가 주된 목적이고 향후 많은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바다를 횡단하는 송유관에서 기름이 누출됐을 때 그 지점을 확인할 수 있고, 바다 생물 연구 등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기술 수준은.

=2012년 시험 개발에 성공한 뒤 큰 진전은 없다. 조금씩 발전하고는 있지만 획기적인 성과는 아직 없다.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수질오염 감시를 위해서는 두 가지가 중요하다. 오염물질을 감지하는 센서와 이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전송하는 기능이다. 단순하게 기름 누출을 감지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각종 오염물질을 함께 감지하고 그 물질의 정상치와의 오차를 계산하는 등의 기능을 개발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도 앞으로 5~10년 뒤 상당한 오염물질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가 개발돼 로봇물고기의 상용화가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

-상용화될 경우 로봇물고기의 크기는 어느 정도 되나.

=2012년 선보인 로봇물고기는 1.8m였다. 당시에는 1m 크기로 개발했지만, 무선통신 기능 부품이 1.5m에 달해 커졌다. 현재는 1~1.5m 크기가 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사용 목적과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호수나 저수지에서는 더 작아질 수 있지만, 강이나 바다에서는 물살을 헤쳐나가야 해서 배터리·모터 등의 장착으로 인해 더 커질 수 있다.

로봇물고기는 수질오염 감시 후보 중 하나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무선 보트로 수질을 감시하는 등 비용 대비 효과 면에서 로봇물고기가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당연히 다른 방식으로 수질을 점검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강둑에 센서를 심어서 하는 게 움직이는 것에 비해 비용이 저렴할 수 있다. 하지만 바다에 있는 긴 송유관을 점검하는 데는 자유롭게 이동하는 로봇물고기가 효율적일 수 있다. 어떤 것이 절대적으로 효율적이라고 얘기할 수 없다. 로봇물고기가 일부 분야에서 장점이 있는 것이다.

-로봇물고기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선박이나 잠수함의 터빈은 물속에 새로운 움직임을 만든다. 이것이 환경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데, 로봇물고기는 그런 것이 없다. 또 보트는 물속까지 갈 수 없고, 잠수함은 수중에선 가능하지만 공간적 한계가 있다. 로봇물고기는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로봇물고기에 대한 관심이 많다.

=전직 대통령이 소개하면서 개발 압박(Big Push)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앞에서 말한 대로 로봇물고기가 수질오염을 감시하는 데 절대적으로 최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인들로부터 로봇물고기와 관련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수질오염을 감시할 수 있는 여러 후보 중 하나이며, 어떤 점은 유리하고 어떤 점은 불리하다’고 말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9년에 상용화 시기를 2011년 10~11월로 못박았다.

=정치인들은 과학자와 달리 늘 과장한다. 이미 상업 용도로 전시용 로봇물고기는 개발돼 있다. 하지만 수질오염 감시 기능을 갖춘 로봇물고기는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상태다. 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옳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어떤 과학적 근거를 갖고 그런 발언을 했다고 보진 않는다.

-한국의 로봇물고기 개발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평가하는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말한 뒤 정부 투자가 있었고, 많은 대학과 국책기관이 연구에 매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동안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아직 시간이 좀더 필요할 것이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과 관련된 기술뿐만 아니라 통신 기능, 수질오염 감시 기능 등의 센서 기술과 수중 유영 기술 등의 측면에서 현실화되는 데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전 대통령이 말한 대로 그런 분야에서 기술 진전이 2년 안에 이뤄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로봇물고기의 크기를 줄이기 위해 3∼5마리씩 무리지어 다니는 ‘편대 유영’ 방식도 제안했다.

=그 점에서는 그가 옳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기능을 갖춘 물고기 하나를 생산하는 것보다 특화된 기술을 갖춘 물고기들이 팀을 이루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도 이런 방향으로 개발하고 있다.

상향식에 하향식 절충되기를

-이 대통령이 퇴임한 뒤 로봇물고기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었다.

=정치가 과학에 많은 간섭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세상은 복잡하고 로봇 기술 수요도 다양하다. 정부 투자가 한 방향으로만 진행돼서는 그 수요를 만족시키기 어렵다. 미국의 경우 다양한 투자를 해서 많은 후보들 가운데 현실화 정도를 판단해 선택한다. 그 과정에서 정부는 리포트만을 보고 판단할 뿐이다.

-결국 정부 주도의 기술 개발이 문제라는 말인가.

=한국은 중국·싱가포르처럼 동양문화권이다. 오랫동안 하향식 의사 결정이 많았다. 그동안 삼성 등 대기업이 짧은 시간에 성장하는 데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 그런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페이스북이나 구글은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과학자들이 정부의 의도를 따르는 대신 좀더 독립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하향식 의사 결정과 상향식 의사 결정이 절충된다면 앞으로도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콜체스터(영국)=글·사진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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