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법도 법”이란 말이 마치 준법의 미덕처럼 쓰이던 시절이 있었다. 사형선고를 받은 소크라테스가 남긴 말이 아니라 후대의 해석이라는 게 정설이다. 법의 무오류성 맹신이자 실정법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법실증주의의 함정이다.
검사 출신 김희수 변호사의 신간 <역사의 법정에 선 법>(김영사 펴냄)은 “힘이 곧 법이 되고 법이 곧 힘인 세상, 힘이 곧 폭력으로 변질된 법치주의 괴물 앞에서 (…) 잊히는 정의를 옹호하고 싶어 쓴 책”이다. 법률가답게 논리와 근거가 탄탄하지만, 문장과 낱말 하나하나에선 ‘사람’을 위한 법치주의에 대한 깊은 사유와 고민이 묻어난다.
책은 1부 ‘역사의 법정에서(해방 이전)’와 2부 ‘법이 공정하다는 착각’(해방 이후)으로 짜였다. 지은이는 구체적인 사건과 판결을 중심으로 한국 사법의 차가운 형식논리와 강자 편향의 오만함, 법·제도의 미흡함과 정의의 실패를 비판한다. 법 실증주의는 내용의 정당성과 관계없이 형식적 요건을 갖추면 법이라고 본다. 반면 “자연법은 정의와 인권 같은 도덕적 가치가 필수 요소이며, (…) 실증주의가 정의를 짓밟은 역사의 고비마다 개혁·혁명·투쟁의 원동력이었고 해방과 저항을 정당화하는 소중한 법 논리였다”.
우리나라에 근대적 사법제도가 처음 도입된 건 1895년 갑오개혁 때 재판소 구성법이 발포되면서다. 최초의 근대 법원이 다룬 첫 사건은 동학농민혁명군을 이끈 전봉준 등 5명에 대한 사형 판결이었다. 일본 영사도 법정 심문에 참여했다. 일제강점기, 침략자들의 법정에서 유죄 선고를 받고 사형당하거나 옥고를 치른 수많은 독립투쟁가는 법적으로는 지금도 ‘범죄 전과자’다. 식민 지배법의 원천무효나 불법성에도 불구하고, 판결 기록은 바뀐 게 없어서다. 지은이는 을사늑약(1905년)과 한일병합(1910년)이 법적 무효라는 점, 임시정부와 항일투쟁의 적법성을 국제법(실정법)과 자연법으로 논증한다. 당연히 독립투쟁가들에 대한 유죄 판결도 무효이므로, 직권으로 다시 재판해야 한다. 형사소송법의 재심 같은 방식이다.
해방 이후 박정희·전두환 독재 시절 반공법과 긴급조치법, 조작 공안 사건의 피해자들도 역사의 법정에선 모두 무죄다. 뒤집어 말하면 이들에게 유죄 판결을 한 법정이 유죄다. 부자(강자)에게 관대하고 빈자(약자)에게 가혹한 형벌 불평등에도 법원은 한없이 둔감하다. ‘초원복국’ 사건, 노회찬 전 의원이 불법 정치자금과 검사 떡값을 폭로한 ‘삼성 X파일’ 사건, 국가정보원 여직원 댓글 사건처럼 정작 범죄자는 처벌을 면하고 검찰이 교묘하게 사건을 비튼 사례도 부지기수다.
지은이는 “법은 정의다”라고 말하는 순간 법은 이데올로기가 돼버린다며 “정의는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빈 그릇과 같고 민주공화국 항아리에 정의를 채우는 건 바로 우리(시민)”라고 강조한다. 명료한 법리에 싸늘함이 아니라 심장이 뛰고 체온이 감도는 법철학 시민 교양서로 맞춤하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조한욱 지음, 교유서가 펴냄, 2만2천원
<한겨레>에 ‘조한욱의 서양사람’으로 10년간 연재한 글을 모았다. 왜 “우리나라 역사는 슬프냐”는 질문에 저자는 “위로가 될지 모르지만 모든 역사가 그렇다”고 답한다. 그래도 주로 주목받지 못한 서양사 인물을 소개하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여여 지음, 이매진 펴냄, 1만8천원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의 회원이 쓴 ‘천하제일겨털대회’와 ‘가슴해방 출렁출렁 여행’, 상의 탈의 시위 기록. 이들은 가슴이 성적이거나 음란해서 가려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남성의 가슴처럼 몸의 일부일 뿐이라고 말한다.
박배균 등 지음, 빨간소금 펴냄, 2만원
서울시 마포구 공덕역 1번 출구 경의선공유지에서는 2020년 5월까지 4년여간 커먼즈 실험이 이루어졌다. ‘경의선시민행동’은 공동으로 이 구역을 점거해 벼룩시장, 문화공연, 세미나, 어린이 놀이터 등을 만들며 개발을 막았다. 그 4년여의 기록이다.
노주희·이종태 지음, 개마고원 펴냄, 1만5천원
개인·기업이 외국에 투자했다가 국가의 조처로 손해를 입었을 때 배상을 요구하는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 ISDS. FTA 협상 과정 ‘독소조항’ 공방으로 알려졌다. 2021년 한국에서 제기됐거나 제기할 의향이 밝혀진 것은 모두 13건, 저자들은 ISDS 폐지 의견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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