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에 더해 감정 소모까지… 여성의 뇌는 쉬지 못한다

가사노동과 돌봄에서의 평등은 흔히 ‘시간’의 문제로 간주된다. 국가데이터처의 ‘혼인상태별 및 맞벌이상태별 가사노동시간’ 조사가 전형적이다. 2024년 이 조사에서 맞벌이 가구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은 남자 59분, 여자 2시간51분으로 집계됐다. 이 수치가 드러내는 건 갈 길이 까마득히 먼 현실만이 아니다. 이전 조사 결과들과 대조해보면, 더디게라도 격차는 줄고 있다. 그렇다면 가사노동 평등의 핵심 과제는 ‘속도’인가.
‘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앨리슨 데이밍거 지음, 전경훈 옮김, 한겨레출판)는 이 질문의 답을 품고 있다. 책은 가사노동시간의 격차가 0으로 수렴하더라도 누군가는 불평등을 느낄 수밖에 없으며, 그 느낌은 개인의 주관이 아닌 과학적 진실과 연결돼 있음을 입증한다. 가사노동과 돌봄에서 비가시적 영역으로 존재하는 ‘인지노동’을 가시화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인지노동이란 계획과 추론, 조율, 감정 소모 같은 노동을 가리킨다.
저자는 이성 커플 76쌍과 성소수자 커플 18쌍을 심층 인터뷰해, 인지노동이 어떻게 분담되는지 조사했다. 결과는 예상 범위를 벗어난다. 재키(여성)-매슈(남성) 커플을 보자. 가사와 육아에 들이는 시간은 재택근무를 하는 매슈가 오히려 많았다. 그러나 자신이 수행하는 인지노동 일지를 각각 작성한 결과, 재키의 항목 수가 매슈의 것보다 세 배나 많았다. 아이 생일 선물을 준비하고, 냉장고 속 식재료를 떠올려 식단을 짜고, 휴지와 샴푸의 잔량을 확인하고…. 재키의 머릿속은 24시간 쉬지 못하고 돌아간다.
이성 커플에서는 인지노동의 여성 편중이 일관되게 나타났다. 의외로 성소수자 커플에서도 편중 현상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강력한 행위 주체성을 공유하며, 각자 상황과 조건에 따라 효과적인 인지노동 배분 방식을 형성하고 재형성했다. 이성 커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열린 태도’다. 가사노동과 관련해 이성 커플은 대부분 여성을 ‘초인 유형’, 남성을 ‘허당 유형’으로 고정하는 성별 본질주의를 성격 차이로 돌리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편익을 누리는 건 자신을 무능하다고 내세우는 남성들이다.
물론 이성 커플들은 육체노동도 심하게 편중돼 있다. 그러나 저자는 평등주의를 지지하는 커플조차 성별이 인지노동 배분과 무관하다고 믿으면서 성별 불평등을 영속화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짚는다. 성소수자 커플들은 이를 해결할 영감의 원천처럼 보인다. 436쪽, 2만4천원.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 21이 찜한 새 책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최승자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2만8천원
사랑을 두고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못해 자신과도 화해하지 못하는 존재의 갈라 터진 내면을 처절하고 숨 막히는 시어로 그려온 최승자 시인의 시를 한데 모았다. 제목은 시인의 뜻에 따라 시집 ‘즐거운 일기’(1984)에 수록된 시에서 가져왔다. 9명의 여성 시인이 8권의 시집에서 91편의 시를 추린 뒤, 최 시인에 의해 달라진 자신의 시 세계에 관해 쓴 산문을 별책으로 묶었다.

아무도 나를 몰랐지만
전수경 지음, 아를 펴냄, 1만7천원
제빵사, 강아지 유치원 교사, 헤어디자이너, 서커스단원, 뮤지컬 단역배우…. 20명의 일하는 청년 여성을 인터뷰한 저자는 자신의 책을 “21세기 공장 순례기 같은 것”이라 했다. 일터 풍경은 지난 세기와 크게 다르지만, 착취와 차별, 부조리, 모멸과 혐오 등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건’의 자격에도 못 미쳐 오히려 만연한 그것들이 읽는 이의 몸에 저릿한 통증으로 스민다.

페미니즘 생산론
고정갑희 지음, 여이연 펴냄, 1만6천원
마르크스주의부터 페미니즘 사회재생산론에 이르기까지 ‘생산’을 상품생산과 임금노동 중심으로 정의해온 체계에 문제를 제기한다. 여성의 노동을 재생산 영역에 고정하는 이들 이론이 정작 자본주의 가부장제 생산 체계를 유지·재생산해왔다고 비판하며, 상품 생산 외부의 노동, 나아가 동물과 자연에까지 생산 개념을 확장하는 ‘페미니즘 생산론’을 제안한다.

무해한 혐오주의자
함규진 지음, 온더페이지 펴냄, 1만8800원
오늘날 빈번하게 쓰이는 혐오 표현 12가지를 분석했다. 그런 표현이 생겨난 배경, 표현 뒤에 숨은 한국 사회의 균열에 초점을 맞췄다. 가령, ‘틀딱’은 노인을 향한 혐오뿐 아니라 누구나 맞이할 ‘나의 미래’에 대한 공포이기도 하다. ‘맘충’은 돌봄과 배려를 평가절하하는 사회의 민낯을 비추는 거울이다. 혐오 표현이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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