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대신하지 않고 곁에 서는 일

‘창녀’라는 말은 쉽게 입 밖에 내기 어려운 말이다. 누군가를 낮추고 배제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얽히는 돌봄’(오월의봄 펴냄)에서 김혜수(작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주리(성노동자이자 한국계 입양인, 사회학 전공자)를 만나 그 말을 둘러싼 삶과 노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화는 성노동자의 노동권과 자기결정권에서 시작해 이주와 인종차별, 입양과 모국어의 문제로 이어진다. 주리는 피해자나 구제 대상의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의 노동과 관계, 욕망과 선택을 자기 언어로 설명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더 나은 이름을 대신 붙여주는 일이 아니라, 당사자의 말이 지워지지 않도록 곁을 지키는 일이다.
이 책의 여섯 필자, 희음·김누리·윤은성·최예린·김혜수·보란은 서로 다른 현장에서 돌봄을 둘러싼 고민들을 펼쳐 보인다. 돕는 마음에도 권력이 섞이고, 보호는 선택을 대신하는 일로, 구제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덮는 일로 이어질 수 있다.
윤은성(생태·기후 활동가)이 만난 여름(활동가)의 용주골 이야기는 성노동자를 사라져야 할 공간의 일부나 구제돼야 할 피해자로 부르는 관성을 흔든다. 여름과 용주골 ‘아가씨’들은 행정대집행의 공포 속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현장에 함께 서고, 생계의 불안을 같이 감당한다. 그 과정에서 여름이 느낀 ‘레즈비언성’은 성적 정체성에만 머물지 않는다. 남성 중심의 시선과 구제의 언어 바깥에서 여성들이 서로를 욕망과 노동과 상처를 지닌 동료로 대하는 감각이었다.
김누리(기록활동가)가 만난 모아(운영자)는 집이 혈연가족의 울타리 안에만 있는지 묻는다. 누군가에게 집은 돌아갈 곳이 아니라 떠나야 했던 곳일 수 있다. 최예린(작가)은 장애와 동물권 활동을 하다 지쳐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란히 놓으며 돌봄의 속도를 묻는다. 누구나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회복하고 활동을 계속할 수는 없다. 보란(중등 화학 교사)이 만난 탈가정 청소년들의 이야기는 보호와 통제의 경계를 드러낸다. 자립은 혼자 버티는 능력이 아니라, 실패한 뒤에도 다시 찾아갈 관계가 남아 있는 상태다.
희음(작가)이 만난 혜리(동물권활동가)의 이야기는 돌봄의 범위를 비인간의 세계로 넓힌다. 돼지 곁에 서면 몸의 크기와 냄새, 리듬이 먼저 다가온다. 동물을 돌본다는 것은 인간의 선의 안으로 데려오는 일이 아니다. 돼지가 원하는 거리와 싫어하는 접촉, 스스로 만드는 질서와 힘을 인정하는 일이다.
여섯 필자가 만난 삶과 현장, 그곳에서 마주한 고민들이 쌓이면서 이 책이 말하는 돌봄의 의미도 조금씩 분명해진다. 돌봄은 누군가를 안전한 자리로 옮겨놓는 일이 아니다. 상대의 주도권을 빼앗지 않기 위해 내 자리를 고쳐 세우는 일이다. 248쪽, 1만8천원.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 21이 찜한 새 책

노동하는 주권자
악셀 호네트 지음, 문성훈·이지선·이행남 옮김 사월의책 펴냄, 2만8천원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춘다”는 ‘격언’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가 반쪽짜리도 못 되는 구조적 원인까지 암시한다. 세계적 사회철학자인 저자는 노동에 관한 규범적 이론, 이들 이론과 어긋나온 근현대사를 잇대어 분석하고, 민주적으로 노동을 재조직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는다. 요컨대 노동의 민주화가 정치적 민주주의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생태사회주의란 무엇인가?
미카엘 뢰비 지음, 김덕민 옮김, 두번째테제 펴냄 1만8천원
기후붕괴라는 파국으로 향하는 열차를 멈출 비상제동장치로서 생태사회주의의 기본 개념을 담았다. 강대국들이 지구온난화에 맞서기 위해 내놓은 가장 ‘진보적’인 시도들조차 비참하게 실패하는 이유는 “성장하거나 죽거나”라는 자본주의의 정언명령이 이 위기의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산양식에 대한 민주적이고 집단적인 운영만이 대재앙을 피하는 해법이다.

엔시티피케이션
코리 닥터로 지음, 박희원 옮김, 흐름출판 펴냄 2만4천원
플랫폼은 처음엔 편리함을 약속한다. 연결하고, 찾고, 사고, 배달받고, 창작하게 해준다. 그러나 이용자를 붙잡은 뒤엔 광고를 밀어 넣고, 수수료를 올리고, 알고리즘으로 가격과 노동을 쥐어짠다. 저자는 이 과정을 ‘엔시티피케이션’(Enshittification)이라 명명했다. 직역하면 ‘똥화’, 조금 풀면 ‘멀쩡하던 서비스가 점점 쓰레기처럼 변해가는 과정’이다. 아마존, 애플, 구글, 우버, 테슬라 사례를 통해 똥이 되어버린 플랫폼을 고쳐, 망가진 인터넷을 다시 구할 가능성을 묻는다.

웹툰이라는 전쟁터
위근우 지음, 돌베개 펴냄, 1만8천원
웹툰은 혐오가 ‘재미’의 얼굴로 번지기 쉬운 문화 공간이다. 이 책은 ‘뷰티풀 군바리’ 등 논쟁적 사례들을 따라가며, 혐오가 웹툰 안팎에서 증폭되는 과정을 살핀다. 드라마 ‘김부장’ 흥행을 계기로 ‘외모지상주의’의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의혹이 다시 거론되는 상황은 이 논의가 현재형임을 보여준다. 빠른 연재와 댓글, 조회수와 알고리즘 속에서 혐오가 ‘독자 반응’이라는 이름으로 번지는 과정을 살핀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한강, 배재고 사태에 “그냥 지나가면 안 돼…혐오 극복 더 깊게 다뤄야”

권성동 의원직 상실…‘통일교 1억 수수’ 징역 2년 확정

‘만장일치’ 한은 “기준금리 인상 기조 이어갈 필요”

메시가 ‘아기 야말’ 씻어준 뒤 19년…이들은 월드컵 결승서 만난다

박지원 “DJ 5년 내내 괴롭혔던 유시민, 이젠 이 대통령 흔들어”

마을하천도 보 철거해야 산다…수질 좋아진 탄천, 또 ‘인공 여울’ 문제 만들어

유시민 “이 대통령 선택, 실패로 끝날 것”…민주 “선 넘었다” 격앙
![이 대통령 지지율 55%…사관학교 통합 반대 55% [NBS] 이 대통령 지지율 55%…사관학교 통합 반대 55% [NBS]](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716/53_17841701548748_20260716501531.jpg)
이 대통령 지지율 55%…사관학교 통합 반대 55% [NBS]

징계 받고 교회 떠난 목사에게 ‘사택 전세권’까지…강남 대형 교회의 기나긴 싸움

‘기자 명예훼손’ 김어준, 발언 6개월 전부터 ‘제보자X’와 연락 정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