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세기말 인류는 순진했다

딥페이크부터 성범죄까지 최신 연구를 담은 ‘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즘’
등록 2024-11-15 19:16 수정 2024-11-18 16:24


20세기 말, 온라인 공간은 민주적이고 평등한 공론장이 될 것이라며 기대에 가득 찬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은 누구도 그렇게 단언하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는 더 나은 미래인가, 더 나쁜 미래인가?

딥페이크 성범죄부터 온라인 담론 투쟁까지 ‘온라인 페미니즘’의 최신 연구를 담은 책 ‘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즘’(허윤 외 17인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이 나왔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한 여성혐오의 확산, 게임업계의 사상 검증이 벌어지는 ‘디지털 사회’에 맞서거나 적극적으로 이용할 도구를 찾을 수도 있는 연구들이다.

영화연구자 손희정은 사야크 발렌시아의 ‘고어 자본주의’ 개념을 원용해 ‘디지털 고어 남성성’을 분석했다. 이 남성성을 지닌 이들은 ‘남성이 약자’라는 인식으로 여성과 소수자를 낙인찍고, 정치권은 ‘이대남’의 분노를 ‘작전’으로 쓴다. 자본주의는 이런 배제와 혐오를 산업화한다. 연구활동가 이민주는 ‘메갈 밥줄 끊기의 역사’를 통해 여성과 페미니스트에 대한 남성들의 집단적인 공격을 살핀다. 남성들의 온라인 집단행동은 ‘소비자의 힘’을 반페미니즘 정치에 활용했다. 젠더 정치의 문제를 시장 거래로 환원했다는 분석이다.

김애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가상공간의 성범죄 등을 ‘기술매개 성폭력’으로 정의하면서 온라인에서 여성의 이미지가 수익으로 직결되는 자원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교수는 여성들이 폐쇄형 커뮤니티를 통해 ‘안전한’ 온라인 생활을 구축하는 듯하지만 이 ‘버블’은 반대로 배제와 ‘진정성’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도 해석했다.

그 밖에도 페미니스트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인류학자 이지은과 과학기술학자 임소연의 글, 임신과 출산 등 재생산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출산을 회피하거나 거부할 수밖에 없음을 밝힌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의 글 등이 실렸다.

여성들의 디지털 행동주의에서 저항의 가능성을 읽으면서, 페미니즘 대중화의 딜레마까지 함께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디지털 매개 성폭력 산업의 이윤을 과연 누가 챙기며 수익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물음도 따라붙는다. 허윤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페미니즘 지식 생산은 우리가 발 디딘 세계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지금의 디지털 사회가 만들어내는 문제를 페미니스트답게 극복하기 위한 길잡이가 되고자 한다”고 서문에 썼다. 396쪽, 2만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페미사냥
이민주 지음, 민음사 펴냄, 1만7천원

출간 전부터 화제를 몰고 온 신작. 2016~2024년에 걸친 페미니즘 사상 검증 사건을 탐색한다. 왜 그들은 페미사냥을 하는가? 여성들의 즐거운 놀이터는 어떻게 낙인의 사냥터가 됐는가? 유저들을 움직이는 건 ‘재미’다. ‘서브컬처 오타쿠’ 내부에서 분석을 전개해 사건 현장 당사자의 시선으로 핵심을 간파한다. 민음사 탐구 시리즈 12권.


1%의 힘 농업 안내서
유재흠 지음, 안난초 그림, 너머학교 펴냄, 1만7천원

전북 부안에서 30년 이상 건강한 농사를 위해 농법을 혁신하며 벼, 콩, 우리밀 등 작물 농사를 지어온 저자 유재흠이 들려주는 농업 이야기. 농부의 살림살이부터 친환경 농업 경험, 우리밀의 역사, 이랑과 고랑 만들기와 풀매기의 타이밍, 기후변화가 농사에 미친 영향을 느끼는 농부로서 솔직한 심정 등.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
비비언 고닉 지음, 성원 옮김, 오월의봄 펴냄, 2만7천원

작가 비비언 고닉의 1977년 작품. 유대 이민자 노동계급 출신의 고닉은 미국 전역에서 공산주의자로 살았던 수십 명을 인터뷰했다. 식탁에 앉아 세계의 공산주의자들과 연결되었다고 느꼈던 사람들. 그들은 ‘혁명’과 ‘더 나은 세상’을 꿈꿨다. 트럼프 당선 이후 더욱 희미해져가는 미국의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뜨거운 기록.

 


내 안에 기후 괴물이 산다
클레이튼 페이지 알던 지음, 김재경 옮김, 추수밭(청림출판) 펴냄, 2만2천원

우리 몸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후재난의 실체를 밝히는 책. 뇌과학자이자 환경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기후변화가 인간의 몸과 마음에 어떤 치명적 문제를 일으키는지 신경과학, 데이터과학, 인지심리학을 동원해 설명한다. 기억력 감퇴, 폭력성 촉발, 신경퇴행 질환 증가, 감염병의 역습과 트라우마 및 우울증에 이르기까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