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은 개념이 움직이는 것 같아요. 한 문장 안에서도 시작과 끝에서 그 개념이 지칭하는 게 달라요. 개념이 문장 안에서 진화하는 걸까요?” 대학교 3학년 때였던가.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어가는 모임에서 헤겔의 책을 앞에 놓고 내가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외쳤다. 이후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내 말을 딱히 부정한 이는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 것도 같다. “흠…, 제대로 읽었군!”
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저 헤겔이 무슨 얘길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뿐이고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싶다. 헤겔만이 아니었다. 철학과 학생이면 알아야 할 것 같고, 그래서 책을 읽기는 했는데, 말 그대로 ‘검은 것은 글자요 흰 것은 종이로구나’에서 한 발짝도 못 나아가는 경험이 반복됐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함께 쓴 도 그런 책 중 하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군데 직장을 거쳐 경기도 파주의 한 출판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입사 뒤 창고 정리를 하러 나갔는데, 거기에 쌓인 책들을 보고 ‘이 출판사 책만 다 읽어도 엄청 똑똑해지겠다’고 생각한 게 기억난다. 특히 ‘e시대의 절대사상’ 시리즈가 눈에 들어왔다. 동서양 고전에 더 친근하게 다가가도록 돕는다는 게 시리즈의 모토였는데, 마침 이 눈에 띄어 집었다.
저자는 노명우. 지금은 등으로 유명한! 책에서 만난 저자의 첫 문장은 이랬다. “철학은 요약될 수 없다고 아도르노는 말했다.” 아! 무릎을 쳤다. 곧이어 “해설자가 한 사상가에 대한 정통적 해석자임을 내세우며, 은밀히 텍스트 저자의 지위를 자신의 지위로 바꿔치기할 경우 해석은 독이다. 해설로 인한 독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해설자가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지위를 주장하지 않고, 자신의 지위를 독자로 낮출 때 생겨난다”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벌써 저자의 편이 되어 있었다.
저자가 자신의 지위를 독자로 낮췄음이 잘 드러난 곳이 이 자기 ‘인생의 책’이었다고 고백하는 부분이다. 고등학교 시절 교련 시간에 집총교육을 받은 기억을 안고 대학교에 들어가 1980년 5월 총을 앞세운 ‘야만’을 확인한 얘기부터, 독일 유학 중 을 만나고 박사논문을 다시 쓰기까지의 드라마를 따라가니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에서 노명우까지 이어지는 문제의식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성의 힘을 낙관하다가 야만의 벽에 부딪혀 느낀 막막함, 그곳이 출발점 아니었을까. 그리고 몇 년 만에 다시 을 집어들었다. 여전히 미로 같은 책이었지만 그 출발점을 확인하고 나니 제법 읽을 수 있었다.
너무 뻔한 말이겠지만, 고전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안내자와 함께하는 것이다. 그 안내자는 언제나 서가 구석에 숨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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