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많이 읽지도 못하지만, 읽는 책도 다양하지 못한 편이다. 주로 인문·사회로 분류되는 책에 관심이 많았고, 시와 소설 같은 문학 분야에는 손이 잘 가지 않았다. 막상 추천받아 문학서를 읽고 있다가도 이걸 왜 읽어야 하나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책을 읽는데, 딱히 요약이 되는 것도 아니고 주제가 명확히 잡히는 것도 아닌 경우가 많았다. 결국 재미있더라, 재미없더라 정도의 느낌만 남곤 했다.
그러다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양윤옥 옮김, 현대문학 펴냄) 한 대목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왜 그랬는지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하루키는 소설을 쓴다(혹은 스토리를 풀어간다)는 것은 상당히 저속의 기어로 이루어지는 작업이며, 상당히 에둘러 가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고 이야기한다. 머릿속에 선명한 메시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스토리로 치환하지 않고 곧장 언어화하는 것이 훨씬 더 빠르고 일반인이 받아들이기도 쉬울 거라고, 소설 형태로 치환하자면 반년씩 걸리는 메시지나 개념도 직접 표현한다면 사흘 만에, 경우에 따라 10분 만에 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또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일부러 제로(0)에서부터 스토리를 만들어낼 필요 없이, 자신이 가진 지식을 논리적으로 조합해 언어화하면 된다고 말이다. 느리고 중층적이고 복합적으로 태어나는 텍스트(글). 효율성은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는 텍스트.
그는 극단적으로 ‘소설가란 불필요한 것을 일부러 필요로 하는 인종’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는 소설 따위는 없어도 상관없다’라는 의견이 있는 것도 당연하고 그와 동시에 ‘이 세상에는 반드시 소설이 필요하다’라는 의견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건 각자 염두에 둔 시간의 폭을, 또 세상을 보는 시야의 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다를 뿐이라고. 효율성 떨어지는 우회하기와 효율성 뛰어난 기민함이 앞면과 뒷면이 되어서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성립하는 것이라고.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동안 나는 ‘이 세상에는 소설 따위 없어도 상관없다’는 쪽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10분 만에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왜 그 긴 이야기로 풀어내야 하냐며 다그치는 사람이었던 셈이다. 를 읽은 뒤 그런 나도 조금은 바뀐 것 같다. 이후 예니 에르펜베크의 장편소설 (배수아 옮김, 한길사 펴냄)를 읽었는데, 예전 같았으면 엄청나게 답답해하며 읽다가 이내 뒤로 물렸을지도 모를 책이다. 굳이 요약하자면, 옮긴이의 말에 언급된 “모든 길은 무덤으로 통한다”는 한 문장으로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대한 느리게, 책 속에서 펼쳐지는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이야기를 굳이 압축하려 들지 않고 되도록 그대로 두면서 읽어나가려고 해보았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는 순간 전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어떤 충만함이 찾아들곤 했다. 이제야 소설 읽는 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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