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뱃전에서 밧줄을 잡아당기며 논다. 피부는 햇볕에 그을리고 물을 머금어 반질반질하다. 1863년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태어난 ‘빛의 대가’ 호아킨 소로야는 30대에 이미 유럽 화단에서 인정받았고 46살 때인 1909년 미국 뉴욕 전시에서 ‘현대의 위대한 거장’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그가 남긴 벨 에포크 시대의 초상화가 여러 영화나 예술에도 영향을 끼쳤지만, 사후 어째선지 스페인 바깥에선 크게 눈길을 끌지 못해 “놀랍게도 알려지지 않았다”(뮌헨미술관)는 평을 받는다. 그러나 뉴욕 전시 이후 100년이 흐른 2009년,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에 46만 명에 가까운 관람객이 몰리며 다시금 세계인의 열광적인 사랑을 얻게 된다. 찰나의 빛을 포착한 그의 그림은 사실적이었고, 도상학적 해석이 필요하지 않아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을 띠었다.
그는 실내 작업을 좋아하지 않았다. 31살 때 그린 ‘그래도 생선이 비싸다고 말하는가!’는 쓰러진 청년 어부를 노인들이 부축하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상처를 막아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소로야는 인상주의 화가이면서 사실주의 화풍을 지녀 야외에 나가 실제 모델을 보면서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는 바깥에 ‘진짜’가 있다고 믿었다. 그의 회화 스타일이 잡히기 시작한 1894년작 ‘돌아오는 고깃배’를 보면 바람에 펄럭이는 돛, 뭍으로 배를 이끄는 황소들, 찬란하게 부서지는 포말, 빛나는 수평선, 어부의 단단한 가슴 근육과 덤덤한 표정이 화면 가득 생동감 있고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발렌시아 출신의 이방인’으로 불렸지만 미술의 중심인 프랑스 파리와 뉴욕에서 환대받았고 베를린 세계박람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마드리드 전국전람회 등에서 승승장구했다.
소로야는 가족을 사랑했고 배우자와 딸들의 모습을 그린 대표작을 다수 남겼다. 소로야의 뮤즈였던 배우자 클로틸데는 소로야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모든 재산을 스페인 정부에 기증하면서 소로야미술관을 세우도록 했다. ‘호아킨 소로야 인생의 그림’(강경이 옮김, 에이치비프레스 펴냄) 저자 블랑카 폰스-소로야는 소로야의 큰딸인 마리아 클로틸데의 손녀, 호아킨 소로야의 증손녀다. 증조할아버지의 작품을 연구하는 주요 학자가 된 저자는 세계에 흩어진 소로야의 걸작을 한자리에 모아 이 책을 엮어냈다. 호아킨 소로야의 주요 작품 100여 점과 편지, 귀한 사진을 담은 이 책이 ‘공식 걸작선’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이다. 본문 240×280㎜ 대형 판형에 우아한 색감이 살아 있는 아트북은 원작의 감동을 전하는 데 손색없다. 224쪽. 5만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사바삼사라 서 1·2
J. 김보영 지음, 디플롯 펴냄, 각 권 2만2천원
‘한국을 대표하는 에스에프(SF) 작가 중 한 명’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작가 김보영이 ‘J. 김보영’이라는 필명으로 내놓은 판타지. 1688쪽에 이르는 2권짜리 대작이다. 작가 스스로 “후련하도록 썼고 가장 만족스러운 결말로 끝냈다”고 밝힌다. 서울 연남동에 내려앉은 뒤틀린 시공간. 절망한 소년에게 소원을 이뤄주겠다며 핏빛 날개의 사내가 찾아오는데….
다정한 거인
남종영 지음, 곰출판 펴냄, 2만9천원
환경저널리스트 남종영의 고래에 관한 개론서이자 고래 인문학.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던 고래는 인간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제국주의 열강이 포경산업에 뛰어들었고 바다는 핏빛으로 변했다. 그러나 돌고래는 자의식을 갖고 도덕적 판단을 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고래를 인격적으로 대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우리 모두는 어린이였다
공진하 등 지음, 교육공동체벗 펴냄, 1만9천원
어린 시절을 거치지 않은 어른은 없다. 어른이 된 ‘나’의 안팎에서 살아가는 어린이들과 손잡고 걸어 나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울 일과 안 울 일이 뭔지 모르겠던” 그 시절 추억, ‘천사 어린이’ 상을 깨뜨려야 너른 품의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주장, 어린 시절 촌지와 체벌과 소외의 경험을 통과한 어린이가 교실로 돌아와 교사가 된 이야기 등.
K-POP 원론
노마 히데키 지음, 연립서가 펴냄, 3만3천원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가 케이팝을 ‘통합적인 아트’로 자리매김하고자 썼다. 뮤직비디오 등 케이팝 작품을 언어학과 미학적 차원으로 검토하며 정당한 비판과 평가를 시행한다. 왜 한국어 랩이 다른 언어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복수 언어성의 양상은 어떤지 등. 일본어로 2022년 출간된 책을 대폭 가필, 수정, 보완해 저자가 한국어로 다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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