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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수’만 중요한 게 아니다

제노사이드에 관한 진전된 논의 ‘다시, 제노사이드란 무엇인가’
등록 2024-11-01 18:32 수정 2024-11-07 16:57


‘제노사이드’를 새롭게 파악하자는 진전된 논의가 나왔다. ‘다시, 제노사이드란 무엇인가’(강성현 지음, 푸른역사 펴냄)는 제노사이드의 정의와 범위를 사회학적으로 재구성한다. 제노사이드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정의한 폴란드 출신 유대인 법률가 라파엘 렘킨의 연구, 유엔 제노사이드 협약 탄생 과정과 한계를 설명한다.

학술논문에서 선행 연구를 검토하듯, 사실 이 부분은 도입부에 해당한다. 저자는 학자들이 제노사이드의 정의에 관한 논쟁을 거듭할수록 물리적인 대량 학살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그 의미가 축소된다고 우려한다. 제노사이드는 집단 폭력의 규모뿐만 아니라 파급 효과와 공동체 변화도 중요하게 살펴야 하는데, 여기서 폭력의 본질적인 측면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제노사이드를 법적으로 정의해온 주도적 학술 분야는 법학이었고, 국제법상 금지하고 처벌할 수 있는 범죄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잣대도 법적인 해석만이 유효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제노사이드냐 아니냐’라는 논쟁만 거듭하고 폭력의 과정과 결과가 망각될 우려가 큰 것이다.

제노사이드 의미 논쟁의 역사를 살피고 사회학적 개입을 시도하는 1~4장의 논리적 설계는 마지막 장인 제5장 ‘제노사이드와 한국전쟁 전후 대량 학살’을 검토하려는 빌드업이다. 한국 정부는 1950년 한국전쟁 중 제노사이드 협약에 가입했으나 이승만 정권은 극단적 대량 폭력에 개입돼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들을 표적으로 한 작전, 처형, 보복의 성격을 갖는 대량 학살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벌어졌다. 제주 4·3과 여순사건, 예비검속 사건, 국민보도연맹 사건 등은 ‘국가폭력에 의한 대량 학살’이라는 프레임만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심층적인 사건들이다. 저자는 국지적 학살, 미군의 폭력, 부역자 처리 등이 맞물린 여러 사건 중 특정 사건만 제노사이드로 인정한다면 의도치 않게 죽음의 위계를 승인하는 꼴이라고 본다. 저자의 전작 제목처럼 ‘작은 ‘한국전쟁’들’(2021)을 연속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의 ‘수’는 정치적이기에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사회학 연구에서 양적방법론만으론 한계가 있듯이 제노사이드 연구에서도 물리적 파괴뿐 아니라 집단적인 삶의 방식, 문화, 제도의 파괴까지 함께 규명돼야 한다. 이 문제는 파괴되는 몸과 분리되지 않는 제노사이드의 핵심 영역이다. 저자는 제노사이드에 관한 진전된 논의를 펼치지만, 공공 영역의 진실 규명은 역행한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가지 못하고 거꾸로 물러서는 현실을 절규하듯 비판했다. 윤석열 정부는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으로 “‘뉴라이트’ 김광동”을 적극 밀었다. “그(김 위원장)는 진화위에서 공안의 시각을 가지고 뉴라이트 역사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문장에서 역사사회학자의 격정과 떨림이 느껴진다.

저자인 강성현은 ‘위안부’ 연구를 하다 극우와 뉴라이트 역사관을 분석하게 된 학자다. ‘탈진실의 시대, 역사부정을 묻는다’(2020)로 임종국상을 받았다. 한일 양국에서 화제가 된 ‘반일 종족주의’의 허구와 논리적 모순을 파헤친 비판서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2020)에도 공저자로 참여했다. 368쪽, 2만5천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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