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를 새롭게 파악하자는 진전된 논의가 나왔다. ‘다시, 제노사이드란 무엇인가’(강성현 지음, 푸른역사 펴냄)는 제노사이드의 정의와 범위를 사회학적으로 재구성한다. 제노사이드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정의한 폴란드 출신 유대인 법률가 라파엘 렘킨의 연구, 유엔 제노사이드 협약 탄생 과정과 한계를 설명한다.
학술논문에서 선행 연구를 검토하듯, 사실 이 부분은 도입부에 해당한다. 저자는 학자들이 제노사이드의 정의에 관한 논쟁을 거듭할수록 물리적인 대량 학살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그 의미가 축소된다고 우려한다. 제노사이드는 집단 폭력의 규모뿐만 아니라 파급 효과와 공동체 변화도 중요하게 살펴야 하는데, 여기서 폭력의 본질적인 측면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제노사이드를 법적으로 정의해온 주도적 학술 분야는 법학이었고, 국제법상 금지하고 처벌할 수 있는 범죄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잣대도 법적인 해석만이 유효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제노사이드냐 아니냐’라는 논쟁만 거듭하고 폭력의 과정과 결과가 망각될 우려가 큰 것이다.
제노사이드 의미 논쟁의 역사를 살피고 사회학적 개입을 시도하는 1~4장의 논리적 설계는 마지막 장인 제5장 ‘제노사이드와 한국전쟁 전후 대량 학살’을 검토하려는 빌드업이다. 한국 정부는 1950년 한국전쟁 중 제노사이드 협약에 가입했으나 이승만 정권은 극단적 대량 폭력에 개입돼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들을 표적으로 한 작전, 처형, 보복의 성격을 갖는 대량 학살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벌어졌다. 제주 4·3과 여순사건, 예비검속 사건, 국민보도연맹 사건 등은 ‘국가폭력에 의한 대량 학살’이라는 프레임만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심층적인 사건들이다. 저자는 국지적 학살, 미군의 폭력, 부역자 처리 등이 맞물린 여러 사건 중 특정 사건만 제노사이드로 인정한다면 의도치 않게 죽음의 위계를 승인하는 꼴이라고 본다. 저자의 전작 제목처럼 ‘작은 ‘한국전쟁’들’(2021)을 연속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의 ‘수’는 정치적이기에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사회학 연구에서 양적방법론만으론 한계가 있듯이 제노사이드 연구에서도 물리적 파괴뿐 아니라 집단적인 삶의 방식, 문화, 제도의 파괴까지 함께 규명돼야 한다. 이 문제는 파괴되는 몸과 분리되지 않는 제노사이드의 핵심 영역이다. 저자는 제노사이드에 관한 진전된 논의를 펼치지만, 공공 영역의 진실 규명은 역행한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가지 못하고 거꾸로 물러서는 현실을 절규하듯 비판했다. 윤석열 정부는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으로 “‘뉴라이트’ 김광동”을 적극 밀었다. “그(김 위원장)는 진화위에서 공안의 시각을 가지고 뉴라이트 역사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문장에서 역사사회학자의 격정과 떨림이 느껴진다.
저자인 강성현은 ‘위안부’ 연구를 하다 극우와 뉴라이트 역사관을 분석하게 된 학자다. ‘탈진실의 시대, 역사부정을 묻는다’(2020)로 임종국상을 받았다. 한일 양국에서 화제가 된 ‘반일 종족주의’의 허구와 논리적 모순을 파헤친 비판서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2020)에도 공저자로 참여했다. 368쪽, 2만5천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도플갱어
나오미 클라인 지음, 류진오 옮김, 글항아리 펴냄, 2만8천원
슈퍼 브랜드로 자본주의의 이면을 파헤친 ‘노 로고’, 재난자본주의의 문제를 폭로한 ‘쇼크 독트린’을 쓴 나오미 클라인의 역작. 자신과 비슷한 이름으로 늘 쌍둥이처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만 영 다른 길을 걸었던 나오미 울프를 비판하면서 다소 억울한 심정으로 책을 시작하지만 점점 극우파, 웰니스산업, 장애인 소거 전략, 좌파에 대한 비판 등으로 범주를 넓혀가며 사회를 비평하는 확실한 솜씨를 보여준다. 다신 헷갈리지 않으리라. 클라인과 울프!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김도미 지음, 동아시아 펴냄, 1만7천원
암에 걸렸다. 곧바로 포위되었다. 온갖 항암식단과 위험한 치료법에. 자유가 필요했다.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자유, 가고 싶은 곳에 갈 자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자유, 에로틱한 사랑과 일을 포기하지 않을 자유, 그러면서도 쉴 자유, 치료할 자유, 치료하지 않을 자유, 이 모든 결정을 할 자유. 한마디로 ‘쪼대로 아프고 싶다’는 불온한 환자의 질병 서사. ‘환자’ ‘병자’ 취급에 대해 함께 생각해볼 것을 권유한다. 그래도 돼? 왜 안 돼?
무지의 즐거움
우치다 다쓰루 지음, 박동섭 옮김, 유유 펴냄, 1만8천원
‘거리의 사상가’라 불리는 우치다 다쓰루가 한국의 편집자와 번역가의 질문을 받아 쓴 한국 독자들을 위한 책. 어떤 방식으로 지식을 받아들이고 읽고 쓰는 능력은 어떻게 다져야 하는지 답한다. “전부 일본 대중이나 미디어로부터 받아본 적 없는 생소한 질문”이라며 유쾌한 답변을 내놓는데…. “지적으로 흥분하면 신체가 살아 움직입니다. 지성이란 본래 이런 겁니다.” 아하! 깨달음을 준다.
이태원으로 연결합니다
김혜영 등 지음, 공동체미디어 용산FM 기획, 플레이아데스 펴냄, 2만원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를 맞으며 이태원을 사랑하는 이들이 전하는 참사에 대한 기억과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 퇴직 교사, 기록 활동가, 스타트업 대표, 사진작가 등 7명의 기록단이 이태원 주민이자 상인이며 노동자 등을 만났다. ‘세월호 세대’인 인터뷰이는 피해자를 향한 비난에 분노가 차올랐던 기억을 털어놓고, 클럽 디제이 에이치(H)는 “희생자들이 원했던 모습으로 되돌려놓는 게 추모”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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