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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의 추억 한 조각 한 조각

비틀스의 노래 <옐로 서브머린>을 들으며 레고 ‘비틀스 옐로 서브머린’을 조립하다
등록 2017-03-09 14:22 수정 2022-12-15 06:58
서정민 제공

서정민 제공

난 레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레고로 만든 타워브리지나 <스타워즈> 우주선을 보며 감탄한 적은 있지만, 나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적어도 내게 레고는 아이들 장난감이거나 별난 취미를 가진 어른들의 값비싼 호사품이었다.

그날 내가 왜 대형마트의 레고 코너에서 서성였는지 모르겠다. 아마 다른 곳에 가려고 지나치던 중이었을 것이다. <스타워즈>에 나오는 전투용 인공위성 데스스타의 레고 버전이 눈에 띄었다. 상자 크기부터 어마어마한 그 제품의 가격은 무려 70만원.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나왔다.

얼른 그곳을 벗어나려던 순간 알록달록 화려한 색감의 작은 상자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새파란 바탕에 레고로 만든 노란 잠수함이 있었고, 그 위에 ‘비틀스 옐로 서브머린’(The Beatles Yellow Submarine)이라 적혀 있었다. 그걸 본 순간 파블로프의 개처럼 내 머릿속에선 비틀스의 노래 <옐로 서브머린>이 자동 재생되기 시작했다.

비틀스 사이키델릭의 영상 버전

<옐로 서브머린>은 비틀스의 1966년작 앨범 <리볼버>(Revolver) 수록곡이다. 비틀스의 다른 대부분의 곡처럼 폴 매카트니와 존 레넌이 만들고, 드물게도 드러머 링고 스타가 메인 보컬을 맡았다. 동요처럼 단순하고 반복적인 후렴구의 중독성이 강하고 파도, 물방울, 무전 교신 소리 등 효과음이 곳곳에 들어가 아기자기한 재미를 준다. 링고 스타를 위한 노래를 구상하던 폴 매카트니는 부르기에 까다롭지 않은 멜로디에 아이들에게 옛날 얘기를 해주는 내용의 노랫말을 얹었다. 이 곡은 영국 싱글 차트 1위,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2위까지 올랐다.

이에 그치지 않았다. 2년 뒤인 1968년 조지 더닝 감독의 애니메이션 <옐로 서브머린>으로까지 이어졌다. 폴 매카트니, 존 레넌,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등 비틀스 멤버 4명이 캐릭터로 등장하고 목소리 연기도 맡았다.

줄거리는 이렇다. 옛날 옛적 바닷속에 ‘페퍼랜드’라는 평화로운 마을이 있었다. 음악을 사랑하며 마을을 지키는 이들은 최고 인기 밴드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비틀스가 1967년 발표한 앨범 제목이기도 하다)다. 어느 날 음악이라면 질색하는 ‘블루 미니’가 군대를 이끌고 미사일 공격을 한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음악, 사랑, 행복을 영원히 없애버리기 위해 페퍼랜드를 침공했다. 위기에 처한 마을 사람들은 노란 잠수함을 타고 비틀스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사정을 들은 비틀스는 노란 잠수함을 타고 온갖 모험을 하며 기지를 발휘한 끝에 마을의 평화를 되찾는다.

‘이건 언젠가 희귀해질 거야’

비틀스의 <옐로 서브머린>은 동요처럼 단순하고 반복적인 후렴구의 중독성이 강한 노래다. 어린이들에게 반응이 좋아 동명의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됐다. 워너뮤직 제공

비틀스의 <옐로 서브머린>은 동요처럼 단순하고 반복적인 후렴구의 중독성이 강한 노래다. 어린이들에게 반응이 좋아 동명의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됐다. 워너뮤직 제공

이야기는 단순해도 이 영화의 매력은 50년 전에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감각적인 영상에 있다. 팝아트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체로 환상적인 바닷속 세상을 표현한 걸 보고 있으면,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앨범으로 상징되는 비틀스의 사이키델릭 음악을 듣는 것처럼 몽환적 느낌에 빠진다. 비틀스 사이키델릭의 영상 버전인 셈이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악일 터. <옐로 서브머린>은 물론 1967년작 앨범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Magical Mystery Tour) 수록곡 <올 유 니드 이즈 러브>(All You Need Is Love)가 흐르고, 그 밖에 비틀스의 여러 곡을 들을 수 있다. 폴 매카트니는 “<올 유 니드 이즈 러브>가 바로 이 영화의 주제”라고 말했다. 영화가 궁극적으로 전하려는 메시지는 ‘사랑’이란 점을 강조한 것이다.

비틀스는 영화가 나온 지 여섯 달 뒤인 1969년 1월 <옐로 서브머린> OST를 열 번째 정규 앨범으로 발표했다. 앨범의 앞면(LP 시대에는 앞면과 뒷면이 존재했다)에는 비틀스의 곡 6개를 담았고, 뒷면에는 비틀스의 프로듀서 조지 마틴이 작곡해 영화에 넣은 오케스트라 스코어를 담았다. 이후 노란 잠수함은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고 다양한 상품으로 만들어졌다.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아마추어 음악가 케빈 제토는 비틀스의 열렬한 팬이다. 레고 또한 좋아하는 그는 비틀스의 <옐로 서브머린>을 레고로 만드는 도전에 나섰다. 주말 이틀 동안 잠수함의 뼈대를 만들고, 이후 6주 동안 세부 부속을 다듬어나갔다. 그렇게 해서 완성한 노란 잠수함 사진을 레고 아이디어 누리집(https://ideas.lego.com)에 올렸다. 레고는 일반인들이 디자인한 모델 가운데 많은 지지를 받은 것을 골라 ‘레고 아이디어’라는 이름의 시리즈로 제품화해왔다. 케빈 제토의 노란 잠수함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1만 명을 넘어섰고, 결국 열다섯 번째 레고 아이디어 제품으로 채택됐다.

마트에 진열된 레고 옐로 서브머린의 가격은 9만4900원이었다. 집어들었다가 만만찮은 가격표를 보고 돌아섰는데 집에 와서 자꾸 생각났다. 아쉬움을 달래려 <옐로 서브머린>을 들었더니 레고가 더더욱 갖고 싶었다. 결국 온라인 최저가를 검색해 8만원대 초반에 질러버렸다. ‘이건 언젠가 희귀해질 거야’라고 지름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말이다.

박물관 전시품 같았다

며칠 뒤 도착한 상자를 열어보니 레고 조각들을 나눠 담은 비닐봉지가 다섯 개나 들어 있었다. 모두 553조각. 오디오에 <옐로 서브머린> CD를 걸어놓고, 두툼한 설명서를 펼쳐 보며 조립을 시작했다. 잠수함도 잠수함이지만, 비닐봉지마다 하나씩 담긴 비틀스 멤버들을 조립해나갈 때 특히 흥분됐다. 1번 봉지의 폴 매카트니, 2번 봉지의 존 레넌, 3번 봉지의 조지 해리슨, 4번 봉지의 링고 스타, 5번 봉지의 제레미(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모습을 드러낼수록 잠수함 또한 꼴을 갖춰나갔다. 두 시간 뒤 모든 게 완성됐다. 성취감과 카타르시스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레고 옐로 서브머린 관련 포스팅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페친(페이스북 친구)이 완성품을 보관하는 아크릴 케이스 판매 사이트 링크를 댓글로 달았다. 들어가보니 맞춤형 주문 제작 케이스의 자태가 근사했다. 그런데 가격이 후덜덜했다. 무려 7만원. 잠시 고민하다 눈 딱 감고 질렀다. 드디어 케이스 도착. 나는 성스러운 의식이라도 치르듯 완성된 노란 잠수함과 비틀스 멤버들을 조심스레 케이스에 넣었다. 박물관 전시품 같았다. 뿌듯했다.

이렇게 레고 덕후의 세계로 입문하는 건가? ‘더 이상의 레고는 없다. 이건 비틀스여서 산 거다.’ 요즘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이다.

서정민 씨네플레이 대표·전 <한겨레> 대중음악 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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