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은 국내 의류수거함에 버려진 옷들에 스마트태그와 지피에스(GPS·글로벌포지셔닝시스템) 추적기를 달아 이 옷들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살펴보고, 버려지는 헌 옷들이 일으키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보기로 했다.
티셔츠 한 장을 사고 버리는 일과 직장인이 1년 동안 출근할 때마다(247일로 계산) 매일 ‘테이크아웃’ 일회용 종이컵 세트(종이컵과 홀더, 플라스틱 덮개 포함)를 사고 버리는 일. 이 두 가지 중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행동은 뭘까?
정답은 전자다. 티셔츠 한 장을 사고 버릴 때 탄소가 더 많이 배출된다. 티셔츠를 사고 버리면 이 옷이 재사용되더라도 일회용 종이컵 306개를 쓰는 것과 같은 양의 탄소(7.55㎏CO₂-eq/ea)가 배출된다. 뿐만 아니다. 이 옷이 수출된 뒤 국외에서 불법 폐기되는 경우 종이컵 337개(8.33㎏CO₂-eq/ea)를 쓰고 버리는 만큼의 탄소가 배출된다. 반면 1년에 평균 근무일 기준 매일 하나씩 일회용 종이컵을 쓰면 종이컵은 247개가 사용되는데, 이를 감안하면 1년 4~5개월가량이 지나야 티셔츠 한 장을 소비할 때 배출하는 탄소량과 같아진다. 특히 티셔츠가 불법 폐기됐을 경우 한 벌이 배출하는 탄소는 30년생 소나무가 한 그루(강원도 소나무 기준 그루당 8.1㎏CO₂-eq 흡수) 이상 있어야 흡수 가능하다.
한겨레21이 이윤희 기후변화행동연구소 부소장에게 헌 옷과 잡화 150점에 대한 탄소발자국 계산을 의뢰한 결과 위와 같은 결과가 확인됐다. 탄소발자국이란 물품 생산부터 폐기까지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계산한 수치다. 단위는 ㎏CO₂다. 1㎏CO₂/ea는 해당 제품 1개가 생산될 때부터 폐기될 때까지 1㎏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뜻이다. 테이크아웃 종이컵의 탄소발자국은 24.7gCO₂/ea이다. 원료 채취 및 생산(제조 전 단계), 제품 생산(제조), 수송, 사용, 폐기 단계에서 제품 하나가 거치는 전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측정해 계산한다. 이번 연구에서는 데이터 수집이 불가능한 제품의 생산·사용 단계는 제외하고, 나머지 단계들로 탄소발자국을 계산했다.
이윤희 부소장과 한겨레21 취재팀은 이 연구를 위해 옷의 중량을 재고 상표에 적힌 소재를 파악했다. 중량·소재가 파악된 150점(추적기는 옷 153개를 달았으나, 3개는 소재·중량 측정 전에 보내 제외)에 추적기를 달아 헌 옷 수거함에 넣었다. 이후 추적기 경로를 파악하면서, 수출 과정의 이동과 재활용 여부에 따른 탄소배출량을 계산하기로 했다.
추적기를 부착한 150점은 니트(16벌), 티셔츠(22벌), 남방(14벌), 원피스(11벌), 패딩(9벌), 겨울코트(9벌), 스포츠의류(등산복 포함·10벌), 간절기 재킷(13벌), 바지(26벌), 신발(16켤레), 가방(2개), 특수복 등 기타 제품(모자, 인형, 한복, 기모노 등 5개) 등으로 나뉜다. 이 중 소재에 따라 탄소발자국 측정이 가능하고, 소재별 중량을 확인 가능한 것들을 중심으로 45점에 대한 분석을 진행했다. 측정 결과 의류의 탄소배출량을 결정하는 핵심 인자는 소재로, 소재가 무엇인지가 탄소배출량을 결정하는 데 90% 이상 영향을 미쳤다. 이윤희 부소장은 “소재가 미치는 탄소발자국의 영향이 90% 가까이 된다”며 “㎏당 탄소발자국이 적은 저탄소 원단을 쓰면 탄소발자국이 적다. 반대로 고탄소 원단, ㎏당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원단을 사용하는 경우 탄소발자국이 크다”고 했다.
1개당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한 것으로 파악되는 품목은 겨울코트다. 특히 서울의 헌 옷 수거함에서 인도로 간 겨울코트의 경우 생산만으로 21.56㎏CO₂-eq/ea의 탄소발자국이 생겼다. 또 인도로 수출된 뒤 불법 폐기된 것을 가정하면 22.43㎏CO₂-eq/ea의 탄소발자국이 생겼다. 이는 테이크아웃 종이컵 908잔에 해당하는 탄소의 양이다. 이 코트는 겉은 모로 돼 있고 안은 폴리에스테르로 만들어졌다. 코트의 탄소발자국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고탄소원단( 30㎏CO₂eq/㎏)인 모다. 또한, 티셔츠·원피스 등보다는 상대적으로 무거운 중량 탓에 조사 대상 겨울코트들의 평균 탄소발자국은 (불법 폐기 가정) 22.52㎏CO₂-eq/ea였다. 테이크아웃 커피잔 912개를 사고 버리는 것과 같은 수치다. 이윤희 부소장은 “모의 경우 가공과 제조 과정에서 에너지 사용량이 커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며 “양은 반추동물이라 사육하는 단계에서 배출량 비중이 크고, 양털은 기름기가 많아 섬유용으로 세척, 가공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수율(전체 투입 수에 대한 양품의 비율)도 70% 이하아고 에너지와 물 투입도 많다”고 했다.
두 번째로 많은 탄소를 배출한 품목은 신발이다. 서울에서 출발해 타이의 아라냐쁘라텟까지 갔던 신발의 경우, 불법 폐기시 14.69㎏CO₂-eq/ea의 탄소를 발생시킨다는 수치가 나왔다. 테이크아웃 종이컵 595잔을 마시고 버릴 때와 같은 양의 탄소의 양이다. 이 부소장은 “다양한 플라스틱 기반 복합소재를 사용하는 운동화의 탄소발자국이 컸다”고 설명했다. 신발이 고무 등 무거운 소재로 다른 옷보다 무겁다는 점도 작용했다. 원피스 한 벌의 평균 중량은 280g이었는데, 신발의 경우 800g이었다.
이 밖에도 불법 폐기된 것을 기준으로 합성섬유가 많이 쓰인 티셔츠(8.33㎏CO₂-eq/ea), 스포츠 의류( 7.31㎏CO₂-eq/ea), 바지( 5.33㎏CO₂-eq/ea) 등이 뒤를 이었다. 얇은 재킷(0.77㎏CO₂-eq/ea), 패딩(3.21㎏CO₂-eq/ea), 남방(3.34㎏CO₂-eq/ea) 등은 상대적으로 탄소배출량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헌 옷이 버려진 뒤 재사용됐는지, 불법 폐기됐는지에 따라 탄소배출량에도 차이가 생겼다. 실험 대상 한 벌의 평균 탄소발자국은 폐기 전 단계까지 6.68㎏CO₂-eq/ea이다. 불법 폐기를 하면 탄소배출량은 10.2%(7.44㎏CO₂-eq/ea) 증가한다. 반면 재사용 때는 더 이상 탄소발자국이 발생하지 않는다. 폐기 과정이 관리되면 상대적으로 탄소배출량이 줄어든다. “허가받은 시설에서 소각 매립하면 그 전 단계 대비 탄소량이 2~3%밖에 증가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게 불법으로 폐기되면 10%까지 증가해요.” 이윤희 부소장의 설명이다.
불법 매립의 경우 매립시설에서 처리할 때에 견줘 온실가스 배출량이 최대 3배에 이를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불법 소각시에도 혼합폐플라스틱 등이 타면서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이 때문에 폐기 과정이 보다 잘 관리되는 국내에서 처리하는 게 개발도상국에서 처리하는 경우보다 탄소배출이 더 적다. 이윤희 부소장은 “국내에서는 무단으로 폐기돼 불법 매립, 소각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면 탄소발자국이 적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헌 옷이 수출·이동하는 과정에서도 탄소가 배출된다. 국내외 선박, 차량, 항공기 등을 이용한 수송 과정에서 연료 등 에너지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통상 전체 의류 온실가스 발생량의 1% 내외이지만, 매년 수십만t의 의류가 수출된다면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대전시의 한 의류수거함에 넣은 스웨터의 경우 국내에서 수출업체를 거쳐 인천항으로 이동했고, 결국 인도의 파니파트에 도착했다. 이 수송 과정에 0.15㎏CO₂-eq/ea가 소요됐다. 테이크아웃 종이컵 6개를 마시고 버릴 때와 같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다.
연구는 헌 옷 수거함에 보낸 옷이 수출되는 과정에서 상당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결론 내렸다. 한겨레21 취재팀이 헌 옷 수거함에 넣은 150벌이 모두 수출돼 폐기된다고 가정하면, 총 110㎏CO₂-eq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0년생 강원도 소나무 한 그루가 8.1㎏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데, 이 나무 13.6그루가 있어야 상쇄할 수 있는 수치다.
국내에서 이렇게 버려진 뒤 수출되는 옷들을 모두 더하면 어떻게 될까. 국내 연간 폐의류 수출량은 약 30만t이다. 이 과정을 모든 수출 의류로 확대해보면 상당한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만약 국내에서 수출되는 폐의류의 20%가 불법 폐기된다고 가정하면, 이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9.1만t㎏CO₂-eq에 이른다. 이는 소나무 1126만9037그루가 있어야 흡수 가능한 이산화탄소 양이다. 한국인이 수출한 옷은 거대한 소나무 숲으로도 상쇄하기 힘들 정도의 양인 셈이다.
하지만 이윤희 부소장은 이런 측정 결과는 일부를 보여줄 뿐이라고 했다. 이번 실험으로 의류 소재당 상당한 탄소를 뿜어낸다는 걸 확인했지만, 문제의 심각성에 견줘 아직 밝혀진 점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다. “패스트패션 그리고 그 이후에 울트라 패스트패션까지 나오며 의류를 폐기하는 양과 속도도 같이 늘었어요. 이번 조사로 수출돼 불법 폐기되는 경우 추가로 어느 정도의 온실가스 배출이 일어나는지를 알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 작업(연구)을 하다 보니 (이 문제에 대한) 사전 연구가 너무 부족했어요. 패션 산업의 온실가스 문제는 계속 제기되는데, 그에 비해 실태 파악이 전혀 안 되고 있는 거죠.”
온실가스에는 이산화탄소, 메탄, 이산화질소, 수소불화탄소, 과불화탄소 등이 있다. 1997년 채택된 교토의정서가 삭감 대상으로 지정한 탄소들이다. 온실가스 중 80%가 이산화탄소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이산화탄소는 온실가스를 통칭하는 개념으로도 쓰이고 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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