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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보유국’인데 머리띠 매는 출판인의 심정

2024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참관기…한강 노벨문학상 축하 글귀도 리셉션도 없던 정부 공식 한국관
등록 2024-10-25 20:43 수정 2024-10-28 12:44
2019년 9월 스웨덴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디너파티에 초대된 한강 작가(왼쪽 넷째). 이날 만찬에선 39명의 페미니스트가 세모 테이블에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다.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제공

2019년 9월 스웨덴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디너파티에 초대된 한강 작가(왼쪽 넷째). 이날 만찬에선 39명의 페미니스트가 세모 테이블에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다.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제공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나자마자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감독이 감격스러운 축하 인사를 보내왔다. 우리는 2019년 예테보리 도서전에서 ‘한국 주빈국’ 기획을 함께 진행했다. 2017년 처음 만나 둘이 같이 이 행사를 의논할 때 그 친구가 “한국 작가를 예테보리 도서전에서 소개하면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노벨상 수상 기념 리셉션 하나 없는 한국

5년이 지나, 함께 예테보리 도서전에 갔던 한강이 진짜 노벨상을 받았다. 2024년 10월16~20일(현지시각) 열린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다시 만난 예테보리 도서전 감독과 그때 일을 되새기며 자축했다. 프랑크푸르트에 가면 매년 전세계의 도서전 감독들을 따로 만난다. 세계 20여 개 도시에서 도서전을 하는 친구들이다. 올해는 모두 함께 모인 자리에서도 한강의 수상에 대해 같이 축하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서전 감독은 2008년에 한강이 자신의 도서전에서 했던 낭독과 강연에 대해 이야기했다. 맨부커상도 타기 전인데 일찌감치 알아본 안목을 뽐냈다. 곁에 있던 멕시코 과달라하라 도서전 감독도 2012년 멕시코에서 만난 한강 이야기로 거들었다. 국가의 용의주도한 계획에 따라 세계의 독자가 한강을 만난 것이 아니다. 독자와 출판사, 도서전 등 다양한 민간 활동이 어우러지는 과정에서 한국문학이 세계 시민권을 획득한 것이다.

2024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는 목공으로 거창하게 지은, 문화체육관광부(문화부)의 로고가 선명하게 박힌 한국 저작권 상담관이 있었다. 그럴듯한 공간을 짓고 ‘한국’이라고 크게 박아놓았는데, 한국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글귀 하나 내걸지 않을 줄은 몰랐다. 문화부와 현지 대사관이 그를 기념하는 리셉션도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한출판문화협회(출판협회)가 마련한 협소한 공간에서라도 도서전을 방문한 독자와 함께 축하하는 자리를 만들었을 텐데. 한국에서 준비해 간 소박한 축하 펼침막을 거는 마음이 대학 시절 독재 타도라는 머리띠를 매던 심정이었다.

202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노르웨이 친구들과 전세계 독자가 함께 욘 포세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했던 자리가 계속 생각났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발표 뒤 열화와 같은 시민 반응과 달리 뜨뜻미지근했던 정부 반응도 떠올랐다. 내년엔 어떻게든 다시 한국문학과 한국출판을 소개하는 자리를 다시 만들 것이다.

2024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전경. 올해 75주년을 맞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해마다 수십만 명이 찾는 세계적 도서 축제 겸 세계 각국 도서 저작권 거래 시장이다. 이번 방문객은 21만 명가량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겨레 장예지 기자

2024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전경. 올해 75주년을 맞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해마다 수십만 명이 찾는 세계적 도서 축제 겸 세계 각국 도서 저작권 거래 시장이다. 이번 방문객은 21만 명가량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겨레 장예지 기자


저작권 거래 중심의 국제도서전

2024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이 시작되기 전, 영국에 사는 후배에게서 전자우편이 왔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십수 년을 들락거려도 꿈쩍도 하지 않던 녀석이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도서전에 대한 오해, 첫 번째. 도서전에 가면 책도 실컷 구경하고 마음에 들면 바로 살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세계에서 큰 규모를 자랑하는 국제도서전들은 저작권 거래가 중심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린이들의 잔치일 것 같은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는 정작 어린이들이 입장할 수 없다. 어린이책을 만드는 출판사의 저작권 담당자와 다른 나라의 책을 사려는 저작권 담당자, 그리고 이를 중개하는 에이전트만 가득하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일반인으로 입장해 도서전을 즐기는 방법을 물으면 대답이 옹색해진다.

물론 일반인이 즐길 수 있는 도서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에는 100만 명이 찾는다며 숫자를 자랑하는 도서전이 여럿 있다. 내가 가본 곳도 있다. 튀르키예의 이스탄불 도서전,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 도서전, 콜롬비아의 보고타 도서전 등에도 대략 100만 명에 가까운 인파가 모여든다고 한다. 참가 인원수가 정확하지 않지만, 남미와 중동에서 열리는 도서전이 그 나라 국민의 중요한 즐길거리라는 것만은 틀림없다.

2024년에도 많은 독자가 찾은 서울국제도서전 같은 경우는 기획 단계부터 독자가 책을 통해 세상을 읽는 것을 돕고 더 많은 작가를 직접 볼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 1년 내내, 지금 우리가 출판하는 책들이 세상의 어떤 흐름을 읽고 있는지 살피고 그 흐름을 보여주는 책들을 모은다. 그 결과를 방문하는 독자와 나눌 수 있는 전시와 강연, 세미나로 풀어 손님을 맞는다. 한국이 생산하는 책에 대해 세계적으로 커진 관심을 반영해 저작권센터 운영도 소홀히 다루지 않는다. 한국 책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커지고 있어, 저작권센터를 별도로 확장해 운영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2024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마련된 출판협회의 한국관 부스에 한강 작가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한겨레 장예지 기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2024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마련된 출판협회의 한국관 부스에 한강 작가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한겨레 장예지 기자


저작권 거래가 활발한 도서전은 봄에 열리는 영국 런던 도서전과 가을에 열리는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을 꼽을 수 있고, 어린이를 위한 책을 중심으로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스페인어권을 대상으로 하는 과달라하라 도서전 정도다. 아시아의 중심 도서전으로 발돋움할 기회를 잡은 서울국제도서전이 그다음 기회를 노린다 할 수 있다.

사흘간 짧게 저작권 거래만 하고 끝내는 런던 도서전과 달리 올해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은 사흘째 되던 날 오후부터 일반인 입장을 허락했고 입장권은 매진됐다. 올해 책을 전시하러 나온 회사 수만 4천 개가 넘어 볼거리가 없지 않았다. 물론 저작권 거래는 끝났다고 생각하고 사흘째부터 짐을 싸서 빼고 문을 닫는 회사가 많아, 중간중간 이빨이 빠져 쓸쓸한 장면도 곳곳에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다양한 색깔을 지닌 출판사들이 자리를 충분히 지켰고 일반인이 즐기기엔 충분했다.

저작권 거래를 마친 책들을 도로 들고 귀국하는 길은 힘들다. 물류회사에 맡겨도 비용은 거의 예외 없이 책값보다 비싸다. 그러니 팔린다면 현지에서 팔고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런 맥락에서 책을 파격적인 가격에 파는 곳이 많으니 여행가방을 들고 도서전에 책 사냥을 나가봐도 좋을 것이다. 한 가지 애매한 것은, 정식으로 판매 허가를 내주는지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현금으로만 거래하는 경우가 많아, 세금 문제는 없는지 확인해보지 않았다. 묵인하면서 크게 문제 삼지는 않는 분위기다. 한국의 많은 출판사는 가져간 책들을 현지 문화원이나 학교에 기증해 한글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마련한 수출상담관. 한겨레 장예지 기자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마련한 수출상담관. 한겨레 장예지 기자


출판 국제 교류 업무를 정부가 한다고?

출판협회는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50년 넘게 빠짐없이 참가한 최장기 근속 전시자 중 하나다. 지금으로 보면 국민총생산은 100분의 1, 수출은 150분의 1이었던 시절부터 열심히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나와 다른 나라와 책을 견주었다. 아마도, 처음에는 다른 나라의 책들을 구경하고 한국의 책을 자랑하려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 국제적으로 문학과 예술 저작물의 저작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발효된 베른 협약은 1886년 제정됐지만 우리나라가 이 협약에 가입한 것은 1996년이다. 베른 협약에 가입하기 이전에는 저작권 계약 없이 번역 출간된 책이 많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은 저작권 구매보다 번역할 책을 찾는 장소로서 역할을 했을 것이다. 28년 전부터는 한국도 베른 협약에 따라 저작권 구매에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최근 10여 년은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한국 출판 기업들이 저작권 구입이 아닌 판매에도 애쓰게 되었다. 이젠 한국의 매력이 세계인을 매료시키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봉준호의 영화, 조성진의 피아노, 방탄소년단(BTS)의 케이팝을 즐기는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한국 책 판권 판매도 호조를 띤다.

더구나 2024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참가하기 위해 떠나기 이틀 전에 도착한 낭보는 더 큰 기대를 갖게 했다.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오랫동안 국제 문학계에서 노벨문학상이라는 시민권을 얻기를 원했던 한국의 문학계와 출판계는 환호했다. 독자도 즉각 호응했다. 한강의 책들은 즉각 재고를 떨었고 재쇄에 돌입했다. 한강은 2019년 서울국제도서전의 얼굴이었고, 출판협회는 그때 만들었던 포스터를 끄집어내 축하하는 펼침막을 만들었다. 그런데 붙일 곳이 옹색했다.

출판협회가 50년 넘게 운영하던 한국관이 올해는 축소 운영됐기 때문이다. 문화부는 출판협회를 지원해 출판사들이 적은 비용으로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을 없앴다. 무허가로 장사해도 한자리에서 50년을 하면 쫓아내기 어려운데 출판협회가 지금까지 쌓아온 네트워크를 모두 하루아침에 포기하라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부에 물었지만 정확한 답은 없었다. 대신 문화부가 직접 국외 교류 사업을 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내놓은 설명을 보면, 문화와 예술의 창작 전 단계에 대한 지원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창작된 작품의 유통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그리고 국외 교류는 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맡는다고 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2024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한강 작가의 책을 출판한 독일 아우프바우 출판사가 마련한 서가에서 방문객들이 한강 작가의 책을 읽고 있다. 장예지 기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2024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한강 작가의 책을 출판한 독일 아우프바우 출판사가 마련한 서가에서 방문객들이 한강 작가의 책을 읽고 있다. 장예지 기자


국가의 통제와 표현의 자유라는 관계

민간의 창작과 유통, 교류를 지원하던 데서 벗어나 정부가 직접 예술가와 예술 작품을 관리하겠다는 생각인 걸까? 지원할 것과 지원하지 않을 것을 정부의 잣대로 나누면서 ‘블랙리스트 사태’가 벌어졌고 이 일이 한국의 문화예술계에 큰 상처를 남겼는데, 이대로라면 예술가와 예술 작품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문제가 더 강화되고 정교한 형태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봉준호의 아카데미상도, 한강의 노벨상도 정부 주도의 기획이 있어 가능했다는 착각을 하는 걸까. 나아가 제2의 봉준호, 제2의 한강을 만들겠다는 엉뚱한 야심까지 엿보인다. 개발독재 시대를 벗어난 지 오래됐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후진국적인 발상을 거리낌 없이 실행하려는 관료들은 어디에 숨어 있었나?

사실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민간이 아니면 서로 교류할 수 없는 분야도 많다. 예를 들어, 국제출판협회는 국가의 영향력 아래 놓인 개별 국가의 협회를 회원으로 받지 않는다. 국가의 영향력은 출판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에서도 정부는 정권을 잡은 사람들의 편향을 반영해 일하기 마련이라, 표현과 생각과 창작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여긴다. 자유가 일그러질 때 예술은 고통을 겪기 십상이다. 그런데 정부의 통제가 가능한 부분을 특정해 정부기관이 직접 관리하는 방식으로, 정부 대 정부 교류 중심으로 모든 문화예술 분야를 몰고 가다니. 이런 전체주의적 발상에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하는 시대가, 그리고 신세가 서럽다.

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 대표

한국문학번역원 부스 위에 작게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인쇄돼 붙어 있다. 한겨레 장예지 기자

한국문학번역원 부스 위에 작게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인쇄돼 붙어 있다. 한겨레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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