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지인의 말마따나 ‘왜 공장 생산 설비에서 쓰이던 혁신이란 단어가 온갖 것들 앞에 붙기 시작했을까?’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일자리도 혁신이고, 생산도 혁신이고, 활동도 혁신이네? 이 창조 저 창조가 트라우마가 되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단어로 사람을 괴롭히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기묘하게 떠오르는 것은 어릴 때 귀에 딱지 앉게 들었던 규범적 표어들이다.
‘자조·근면·협동’ 뭐 이런.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이런 행정 계몽 표어들 때문에 최근 몇 년간 지하철만 타면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사라진다. 거기에서 나는 디자인 도시를 오른쪽으로 걷는 시민 고객이 되었다가 이제는 공유하고 혁신하는 시민님이 되었다. 아흥, 얄라리얄라. 그냥 오늘도 이런 행정 유모아(유머)를 즐겨야지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데 ‘혁신도시’라는 표현은 마음만 가다듬어서는 안 되는 좀더 깊은 배후가 느껴진다(지방분권 문제와 연결되던 그 혁신도시와는 다르다). 이노베이션이 이제 기업의 수식어를 넘어 이 시대의 동네북 ‘소셜’한 것이 되어버린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기 때문.
최근의 도시 담론을 관찰하면 흥미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픽스’(fix), ‘리페어’(repair), ‘핸드메이드’(handmade) 같은 만들기 문화와 연관된 단어들이 도시 재생과 연결돼 쓰이기 시작한다는 것. 구체적으로는 한 도시의 퇴락한 제조업을 되살리는 활동과도 연결되는데 이런 맥락에서도 혁신이라는 단어가 별 위화감 없이 도시 전체를 싸안고 있는 모양새다. 얼마 전 중국 선전에서 열린 ‘메이커 페어’(Maker Fair·(MAKE) 잡지에서 개최하는 DIY 페어로 전세계적으로 열리고 있다)의 소식을 훑어봐도 이러한 변화를 뚜렷하게 감지할 수 있다. 이제껏 ‘세계의 공장’ 역할을 자임해온 중국의 제조 능력은 실리콘밸리의 ‘상상력 없는 카운터파트너’의 역할을 충실히 맡아왔으나 올해 선전 메이커 페어의 슬로건을 보면 그 역할을 벗어던지겠다는 의지가 확연히 보인다. “중국과 함께 혁신을”(Innovate with China)이란 슬로건이 보여주듯 중국은 이미 디지털과 결합한 제조업이 해커 스페이스(Hacker Space) 등의 풀뿌리 제작 공간과 결합하며 흘러가고 있다. 중국의 짝퉁 문화도 이런 맥락에서는 자율·개방·민첩함을 가진 자유로운 오픈소스 정신으로 재해석된다.
전세계적으로 벌어지는 메이커 페어가 이제 개인 자작물의 전시장이 아닌 비즈니스 장의 역할도 하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혁신이 왜 소셜한 것으로 다루어지는지 짐작하게 한다. 어쨌든 기획되지 않은 자율과 느긋함을 찾아보기 힘든 이 도시에서 ‘혁신’을 남발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창조도 혁신도 시간을 들여 현실의 결들을 탐색해야 나오는 거다. 표어가 사어 되고 그러다가 혁신과 창조는 박제된다. 그러면 손은 우울해지고 스마트한 바보가 된다. 그나저나 이 시대를 잊지 않기 위한 기념으로 이 표어들 급훈처럼 하나 만들어서 디스코테크에 달아놓았다. 공들여 글씨 쓰고 나무 틀도 정성껏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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