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이어 등사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찾아낸 역사적 기록이 꽤나 재밌으니 얘기를 좀 풀어봐야겠다. (사담과 추측이 반이니 ‘엔하위키 미러’(인터넷 사용자 편집 백과사전) 읽는 기분으로 봐달라.) 등사기를 복원해보겠다는 삽질의 과정이란 이미 설정되고 안착된 기술적 인식을 되밟는 것이니 어렵다고 징징대봐야 쪼렙(초보 레벨)이다. 하지만 등사 원리를 만들어낸 인식이란 지금이야 뻔해 보이지 그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행위요, 넘사벽인 거다.
지금도 기술적 진화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우스꽝스러운 고아 기술들은 인쇄술이라고 별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 지금과 같은 등사기 모델의 창안자(라기보다는 특허권자)인 ‘발명왕’ 에디슨의 애초 아이디어는 종이에 미세한 타공을 해대는 전자펜이었다. 이미지를 찾아보니 빠르게 내려찍는 펜으로 글자를 뚫고 그 위에 잉크를 투과할 수 있게 설계한 듯하다. (우와 창의력 대장!) 철판 위에 왁스를 먹인 종이를 대고 철필로 긁는 지금의 등사 인쇄의 기술적 방식은 ‘사이클로 스타일’이란 이름으로 다른 이가 개발한 것이었다. (근데 특허는 왜 에디슨이 가지고 있지? 이것이 말로만 듣던 특허 도둑 에디슨?) 어쨌든 이 특허를 사들인 이가 1884년부터 판매를 시작한 ‘에디슨의 등사기’라는 제품은 1899년까지 20만 대가 넘는 판매를 올렸다고 한다. 여러 기술들의 포맷 전쟁에서 살아남아 나름 표준 기술이 된 것이다. 이 등사기의 1896년 광고를 보면 ‘펜보다 강하다’라는 문구를 통해 이 새로운 인쇄 방식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어필한다. 이 평판 등사기가 윤전식 등사기를 거치며 1959년 제록스914에 이르러 드디어 상업적으로 성공한 현대적 복사기가 나오게 된다. 15도 정도의 뇌쇄적 시선과 손끝의 각도가 인상적인 ‘오피스 레이디’가 등장하는 제록스914의 광고(사진)를 보며 히죽거리다 국내 상황이 궁금해진다.
신도리코에서 만든 ‘리카피555’ 복사기가 처음이었구나. ‘스피드 비지-네스 전자 복사기’란 현수막이 소박하다. 이렇게 집 한 채 가격의 복사기가 점점 대중화되며 개인 복사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펑크의 DIY 정신이 스민 자가 음반과 인쇄물이 제로그래피(Xerography)란 이름으로 불렸지. 어라? 제록스에서 만든 팰로앨토 연구소는 현대 컴퓨팅의 많은 요소를 만든 연구소인데, 복사기를 만들던 회사에서 컴퓨터를 만들게 된 건 어떤 이유였을까. 팰로앨토에서 개인용 컴퓨터 앨토를 보고 와서 스티븐 잡스가 애플컴퓨터의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만들었다던가? 이후 윈도에 들어간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보고 잡스가 빡치니 빌이 ‘너도 베낀 거잖아!’라고 했다던가? 어쨌든 등사기 하나에서 곁가지를 치며 뻗어나가는 인쇄와 미디어의 역사를 더듬고 있으니 이만저만 (혼자서만) 재밌는 게 아니다. 그러면서 진정한 맨땅 헤딩 선지자들 앞에서 겸허해진다. 오늘도 그 넘사벽을 하악거리며 훔쳐 만들고 있다.
최빛나 청개구리제작소 요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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