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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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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박스가 되어가는 인간

일상을 추적·기록하는 웨어러블 기기가 가져올 미래는?
등록 2014-12-13 15:08 수정 2020-05-03 04:27
〈블럭미러〉 영상 갈무리

〈블럭미러〉 영상 갈무리

연구자 고규흔은 언메이크 랩에서 열었던 ‘제작의 정치’ 토크에서 인터페이스에 대해 아주 간명한 정의를 내려주었다. 안경의 인터페이스는 무얼까? 안경다리다. 이처럼 사물 간 혹은 인간과 사물을 매개하는 어떤 것이 인터페이스다. 인간과 컴퓨터의 인터페이스는 점점 그 거리를 좁혀왔다. 물론 터치 인식뿐 아니라 동작, 음성(여전히 시리(Siri)는 놀림 대상이지만), 안면, 시선 등 각종 물리적 인식 기술이 더해진 ‘웨어러블’(wearable) 기기가 점점 그 인터페이스의 역할을 넘겨받고 있다. 아직은 구글 글래스나 스마트 밴드 같은 우스꽝스런 액세서리의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머지않아 피부를 덮칠 기세다.

웨어러블 기기가 피부를 덮으며 일상을 추적하고 기록해가는 시나리오는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시장도 군침을 흘리고 있고 수많은 재능 있는 미디어아티스트, 개발자, 제작자들도 몰려들고 있다. 이른바 라이프 트래킹(추적)이란 그럴듯한 용어로도 소개되는 이러한 흐름은 인간이라는 블랙박스를 기록해 자기개량하는 것에 목표를 두는 듯하다. ‘행동분석형 자기관리’ ‘자기정량화 운동’ ‘즐거운 게임형 자기혁신’ ‘행동분석형 자녀 관리’ ‘건강 관리’. 최근 들여다본 한 대기업의 웨어러블 관련 보고서는 흥미로운 단어로 가득하다. 인간을 기계 취급하며 노동의 과학화를 일군 테일러의 시대는 이제 간 거다. 인간이란 심리적 블랙박스를 이런 웨어러블 기기가 측정하고 데이터를 모아내 개인 비서(인공지능)의 역할을 하며 우리가 스스로 혁신과 개선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시대를 그리고 있는 거다. 아아 이 작디작은 나의 추적자, 개인 비서들은 어디까지 진화할까. 나를 진정 알아주는 유일한 존재. 아아 정말 사랑스러울 거 같다.

스마트폰 시대 이후의 파국에 대한 상상은 이제 피부가 돼가는 기기, 일상의 트래킹, 그리고 그것에서 발생하는 데이터,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인공지능에서 나오는 것 같다. 결국 모든 공상과학(SF)은 파국에 대한 상상이니 말 나온 김에 짧은 SF 영화와 드라마까지 추천해보자. 일개 닝겐(사람)일 뿐이니 왓챠(영화앱)의 추천을 따라가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2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여전히 절찬 상영 중인 라는 이스라엘 제작자들이 만든 단편영화를 우선 추천한다. 영화는 스마트 기기가 드디어 콘택트렌즈처럼 인간의 각막에 안착한 시대를 보여준다. 스마트폰 시대 이후 파국의 상상을 즐기고 싶은 분에겐 이 짧은 영화와 함께 영드 도 추천한다. 멋진 신세계를 볼 수 있다. 근심을 멈추고 핵폭탄 데이터를 사랑해야 할 거 같다.

최빛나 청개구리제작소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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