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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 ‘전멸의 경고등’  깜박깜박

박 대통령 지지율은 높아만 가는데 지방선거에서 핵심 친박마저 부산과 대구서 고전

‘정치력 부재’ 뒤에는 견고한 조직문화가
등록 2014-04-23 17:43 수정 2020-05-03 04:27

“전멸이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가 6·4 지방선거에 나선 친박 후보들을 두고 한 말이다. 실제로 새누리당 안에서 ‘핵심 친박’으로 분류되는 현직 의원들 가운데 이번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예비후보로 출마해 지금까지 경선에서 승리한 인물은 단 한 명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연일 고공 행진을 이어가는 데 반해 친박 의원들은 참담한 성적을 내고 있는 이유는 뭘까?

부산, 4선 서병수 의원 비박에 밀려

이번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광역단체장 후보로 나선 이들 가운데 ‘친박’으로 분류되는 현직 국회의원은 유정복·이학재(인천), 서상기·조원진(대구), 서병수·박민식(부산), 강길부(울산) 의원 등 모두 7명이다. 현직 국회의원은 아니지만 친박으로 분류되는 인물은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김황식 전 총리를 비롯해, 김영선(경기) 전 의원, 정진석(충남) 전 국회 사무총장, 김관용(경북) 경북지사, 박완수(경남) 전 창원시장 등 5명을 꼽아볼 수 있다. 이들 12명 가운데 현재까지 경선에서 승리한 인물은 ‘현직 프리미엄’을 가진 김관용 경북지사가 유일하다. 아직 경선이 끝나지 않은 지역에서도 친박 후보들은 뒤로 처지거나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다.

현역 의원이 출마한 지역 가운데 특히 ‘핵심 친박’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지역은 부산과 대구다. 부산의 경우 4선 의원으로 당 사무총장을 지낸 서병수 의원이 비박인 권철현 전 주일대사와의 대결에서 밀리고 있다. 한국갤럽의 4월13일 조사에서 여당 후보 적합도는 권 전 대사가 29.7%로 서 의원(23.9%)을 오차범위 안에서 앞섰다. 대구의 경우도 국회 정보위원장이면서 3선인 서상기 의원이 고전하고 있다. 영남의 한 의원은 “경선에 나선 4명의 지지율이 비슷비슷해 아직 한 후보의 독점적 승리를 예상하기 쉽지 않다”고 전했다.

인천도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인 친박 핵심 의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이다. 지난 2월 인천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이학재 의원은 박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이라는 타이틀에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 의원은 결국 자신과 나란히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 장관에게 ‘친박 후보직’을 양보하고 떠났다. 그러나 차출되다시피 경선에 뛰어든 유 전 장관조차 비박인 안상수 전 인천시장과의 경선에서 박빙의 지지율 싸움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울산의 경우 친박으로 분류되는 강길부 의원이 친이계였다가 범친박으로 돌아선 김기현 의원에게 경선에서 패했다. 경남도 친박인 박완수 전 창원시장이 비박인 홍준표 현 경남지사와의 경선에서 탈락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야의 승패를 가를 분수령인 서울도 예외는 아니다. ‘박심’을 등에 업고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김황식 전 총리의 지지율은 정몽준 의원에게 한참 뒤처져 있다. 김 전 총리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의 막역한 관계를 강조해 구설에 오르는 등 ‘박심 노이즈마케팅’을 적극 활용하기도 했으나 지지율은 좀체 오르지 않는 상황이다. 반면 그동안 대표적인 비박계 인물로 당내에서 뚜렷한 역할을 하지 못했던 정몽준 의원이 지지율 고공 행진을 벌이며 김 전 총리를 넘어 새정치민주연합의 박원순 서울시장마저 위협하고 있다.

‘박근혜 마케팅’만 하던 이들

이 정도면 친박의 몰락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60%대를 견고하게 유지하는 상황에서 이 지지율을 어느 정도 흡수할 줄 알았던 친박 후보들이 무너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는 개별 후보들의 ‘정치력 부재’가 꼽힌다. 한 친박 의원은 “다들 대통령한테 너무 의지하는 정치만 해왔다. 선거 때도 박근혜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내걸며 ‘박근혜 마케팅’만 하던 이들이 아닌가. 정치를 해온 기간이 제법 되는 사람들도 그 사이에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유권자에게 제대로 심어주지 못했다. 그러니 당연히 대중적 지지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 초선 의원도 “선수만 높지 그동안 뭔가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대통령과의 관계는 좋지만 대중 입장에서는 누군지 잘 모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친박의 ‘정치력 부재’ 뒤에는 충성심을 바탕으로 똘똘 뭉친 친박의 견고한 조직문화가 버티고 있다. 친박 의원들 사이에는 ‘튀면 찍힌다’는 공포가 내재돼 있다. 실제로 핵심 친박이던 유승민 의원은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비대위원장을 맡았을 때 당명 개정에 반대하는 등 다른 목소리를 냈다가 친박 주류에서 밀려났다.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쓴소리를 했다가 친박에서 멀어졌다. 이러한 학습효과를 겪다보니 친박 그룹 안에서는 박 대통령의 의중을 거스르는 의견을 찾아보기 힘들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이들이) 정치적 이념과 노선이 달랐던 게 아니다. 실행 방식이나 정책적인 부분에 대한 쓴소리를 한 것인데 이것으로 파문을 당했으니 이를 보는 친박들 사이에서 그 효과가 학습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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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의 당내 장악력이 여전히 강한 것도 문제다. 박 대통령은 겉으로는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하면 따르겠다”며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친박 세력과 관계없이 당을 통틀어 청와대를 향한 쓴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한 의원은 “쓴소리가 나오면 청와대에서 바로 난리를 친다. 그러니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고 털어놨다. 새누리당 당직자는 “현안이 생길 때마다 청와대에서 야당을 비판하는 논평을 내라는 요구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당내 상황을 여전히 청와대가 장악하고 있는 처지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틈은 존재하지 않는다.

“친박에 좌장은 없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대체로 비슷하다. 윤희웅 민정치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은 “이명박 정권 시절 친박이 소수 계파였을 때부터 친박은 박근혜를 중심으로 견고하게 뭉쳐 있다. 그 안에서 누가 대중적으로 부각되는 발언이나 쓴소리를 하게 되면 충성도가 약한 것으로 비치면서 친박 내부의 핵심으로부터 멀어지고 결국은 친박의 울타리 안에서 배제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친박 내부에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도 “친박 안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면 매장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친박 세력의 신임을 잃으면 다음 공천도 불가능하다는 두려움이 강하다”고 말했다.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에서 정치력은 생성될 수 없다.

2인자를 두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의 독특한 리더십도 당내에서 정치력 있는 인재를 키워내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박 대통령은 의원 시절인 2010년 당시 친박의 좌장 격이던 김무성 의원과 세종시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친박에 좌장은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김 의원이 박 대통령과 틀어진 이후 ‘친박 좌장 격’을 내세우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대신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처럼 ‘박근혜의 대변인 격’만 여전히 살아 있다.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자신의 정치력을 발휘하는 인물은 사라지고,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해 전달하는 ‘메신저’만 남은 셈이다.

이에 대해 이상돈 교수는 “대통령이 지방선거나 재·보궐 선거에 나올 자기 사람을 키웠어야 한다. 정치적 잠재력이 있는 사람은 당료로 과감하게 기용해야 하는데 대통령은 그런 것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도 최근 칼럼에서 “현직 대통령과 생각이 다르고 때론 맞설 수 있는 독자성과 국민적 기대를 받는 대중성을 겸비한 인물의 존재는 정권 재창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조건”이라며 “대통령의 높은 인기가 (계속) 유지된다면 새누리당으로선 ‘다르고 새로운’ 대권주자를 키워낼 시간과 공간이 부족하다. 따라서 지금 여권이 누리는 강세가 다가올 절대 위기를 몰래 잉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시효가 다한 정치집단… 정치적 사망”

중앙정치와 지역정치는 다르다. 그럼에도 친박 의원들이 이를 간과한 채 지역정치에 나선 것도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다. 중앙정치에서 발휘되는 ‘박심’은 지역정치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지역 유권자가 원하는 건 박근혜 대통령과 친한 사람이 아니라 지역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자생력 있는 일꾼이다. 최창렬 교수는 “중앙정치 대 지역정치라는 이분법적인 구도로 본다면, 친박은 중앙정치의 이미지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그것이 지역 유권자에게 와닿지 않고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윤희웅 센터장도 “지방선거는 지역의 지도자를 뽑는 것인데 어느 계파, 누구의 후광 효과에 기대서 나온 사람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수 있다. 독립성을 가진 정치인으로서 역량을 갖춘 인물이어야 대중이 호감을 갖고 인정해주는 흐름이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석은 대표적인 ‘비박 소장파’로 분류되는 남경필 의원과 원희룡 전 의원의 약진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각각 경기도지사와 제주도지사 선거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두 후보는 지방선거 후보난에 허덕이던 새누리당 지도부가 차출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그동안 새누리당에서 ‘개혁파’ 이미지를 차곡차곡 쌓아왔다. 2003년 한나라당 개혁파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으로 불리며 대중적인 정치력을 키웠고, 당내 소장파 모임을 구성하는 등 경쟁적으로 당내 개혁을 주도했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 친박 주류를 중심으로 “너무 튄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원희룡 전 의원은 지방선거 차출론이 불거지던 지난 2월7일 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새누리당이 지방선거 인물난에 허덕이는 것은 당내 ‘자기 정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자기 정치’에 대한 진정성은 뒤로하더라도 대중은 당내에서 소신 있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어느 정도의 반열에 올려놓게 된다. 지금 당장은 지도부가 말 잘 듣는 의원들을 좋아하는데 그것은 결코 새누리당에 좋지 않다. 지방선거에서부터 이렇게 인물난에 허덕이는데 앞으로는 더 심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친박은 언제까지 건재할 수 있을까? 당 안팎의 의견이 모두 부정적이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친박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시효가 다한 정치집단이다. 그런데 아직 당내 권력이라는 먹을거리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보면 사망이다”라고 말했다. 이철희 소장은 “지금도 거의 해체되는 과정인데 이후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남을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명확한 비전과 노선을 가진 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 남아 있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1008호 주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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