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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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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프린터로 혁명을? 글쎄…

생산수단 소유의 민주화 그리고 노동 분산화
등록 2015-01-24 18:02 수정 2020-05-03 04:27

수공예 상품이 주를 이루는 홍익대 앞 플리마켓을 진행하는 지인의 전언으로는 드디어 3D프린터로 단추를 만들어 파는 창작자가 등장했다는 소식이다. 3D프린터로 대표되는 개인 제조 장비가 독립적 경제활동의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퍼지고 있는 탓인지, ‘청년’ 일자리 문제나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도 다루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최근에 관찰하고 있다. 거기에 대량 생산과 소비를 지양하는 ‘착한’ 가치로 포장되는 것은 덤이다.
여전히 그 현실적 출력 모습은 안습인 3D프린터이건만 그에 따른 제조업의 재편, 그리고 그 제조업이 구성하는 노동 구조의 해체 혹은 변화는 더 이상 의심하기 어려운 시기로 접어든 걸로 보인다. 사실 꼭 3D프린터라는 대상의 문제라기보다 그 근간을 관통하는 ‘개인 분산적 생산 시스템’이라는 관점이 더 적절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3D프린터로 퉁치자.) 3D프린터의 대표적 흑역사로 거론되는 3D프린팅 권총 정도는 사실 이런 변화가 불러올 충격에 비하면 가벼운 해프닝 정도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머리에 계속 맴도는 질문 하나를 꺼내보자. 3D프린터로 대표되는 개인 제조 장비들의 보급은 ‘개인이(노동자가) 생산도구를 가지게 되는 시대’라며 환영할 수 있을까? 3D프린터를 만드는 한 페친이 올린, 젊은 날의 선배에게 보내는 편지체의 글에는 ‘자기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다’며 ‘생산도구의 민주화를 통해 계급적 질서를 흔들어놓을 수 있다’라는 일말이 신념이 보였다.
사실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가 계급적 기반을 이루던 산업자본사회라면 모르지만 이미 정보자본사회로 이동하고 있는 지금의 상태를 보자면 생산도구를 가지는 것이 예전처럼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오히려 3D프린터를 다룰 수 있을 정도의 디지털 스킬을 갖춘 이들이 그냥 새로운 유형의 분산적 디지털 지식노동자가 되는 것이겠지. 이제 사회적 공장은 분산화 기술과 네트워킹이 전면화되고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의 기술이 민주화되는 시대에 분산화는 이제 곳곳에 스며 있는 실제적 삶의 형태다. 그리고 그것은 ‘니 알아서 사세요’와 ‘자기 기반의 자립경제’에 대한 요구를 동시에 하는 듯하다. (아놔.) 과연 노동하다 죽는 노동자를 넘어서는 노동을 할 수 있을까 혹은 아무런 안전망 없이 D.I.Y 노동자가 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산뜻하게 구글링을 하며 오픈소스 도면을 찾을 때 새로운 시대의 디지털 노동자들이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온라인을 지탱하는 오프라인 노동의 세계가 아닌가 싶다. 어쨌던 노동은 점점 투명해지고 3D프린터는 점점 팬시해져간다.
최빛나 청개구리제작소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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