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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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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자연은 만들어진다

4대강 방랑 중 마주친 ‘일반자연’
등록 2015-02-17 15:50 수정 2020-05-03 04:27

요즘은 책을 준비하고 있다. ‘일반 자연을 위한 매뉴얼’이란 제목을 붙인 책이다. 제작자로서 인간이 가장 위대하게(?) 성취한 기술- ‘자연스러운 자연을 만드는 기술’을 묶은 책이다. 개인적 기록과 글, 시각 작업물들이 산만하게 엮인 이 책은 2010년 10여 명의 작업자와 함께 한 ‘4대강 대방랑’이란 여행을 기점으로 시작된 것이다. 자연이 스스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수많은 이 시대의 생태 기술은 이제 색깔, 라인, 빛, 기호 등의 요소로 생태감을 판단하는 우리의 감각과 이어지는 기술이기도 하다.

최빛나 제공

최빛나 제공

4대강을 여행하며 참 기묘한 것들을 많이도 관찰했다. ‘생태공원’을 만들기 위해 자연 형성된 하중도의 숲을 뒤엎는 기술은 전 지역에서 시연되었고, 이는 한강 수변공원을 그대로 복제해낸 듯한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4대강변의 친환경 공원은 전 지역의 도시화라는 목표를 먼저 실현하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마치 이제 세계를 구성하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도시임을, 자연은 그것의 요소가 되는 역전의 순간을 관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자연보다 더 야수 같은 것이 도시’라는 문장이 절절했다. ‘YOU DREAM, WE BUILD’라는 문구가 어딜 가든 환영처럼 어른거렸다. 이후 모든 사회현상이 생태와 자연이라는 ‘깔때기’로 통과되는 심각한 트라우마를 2년 정도 겪었다. 조경과 건축, 생태에 대한 책을 파고들었고, 충북 제천 산마을 폐교에서 농사를 지으며 뭔가 놓치고 있던 것들을 감각적으로 익히려고 했다. ‘공원 덕후’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서울의 온갖 공원을 돌아다니며 기록했고. (그런데 그거 아는가? 엇비슷해 보이는 도시 공원이라도 관찰해보면 조성된 시기에 따라 그 시기에 강조되던 사회적 프로그램들이 고스란히 이식되어 있다.)

4대강 사업과 2000년대 이후 사회간접자본으로의 자연은 이제 사회적 프로그램과 생태적 프로그램, 개발적 프로그램이 구별되지 않는다. 일반 자연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도시가 지역성을 잃고 표준화되어가는 것에 대한 건축가 렘 쿨하스의 지칭, ‘일반 도시’라는 표현을 이 책에서는 자연에 대입시킨다.) 청계천의 일반적 기묘함을 우리는 이제 알아채지 못한다. 그렇게 자연 재화는 인스톨되고 있고 소원폭포로, 황동 호랑이로, 최대 인공암벽으로, 생태공원이란 이름으로 기념비가 되어가고 있다. 그나저나 모든 지속 가능한 발전의 논리를 떠나 아파트, 마트, 근린공원으로 이어지는 근래의 전형적 도시 풍수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적 즐김을 누리고 있을까.

최빛나 청개구리제작소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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