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산행기>
김서정 지음, 지만 그림, 부키(02-325-0846) 2009년 1월8일 펴냄, 1만1천원
어느 날 갑자기 한 남자가 북한산을 향해 걸어갔다. 직장에서 산행을 하더라도 산 밑에서 기다리다 정상에서 내려온 사람을 거나하게 취한 얼굴로 바라보던 남자. 닭싸움을 하기 위해 한 발로 서는 것도 불가능한 뚱뚱한 남자. 직장에 손해를 입히고 일 없이 지내는 불혹의 ‘백수’ 남자. 그가 생수 한 병과 김밥과 오이를 담은 검정 비닐 봉다리를 들고 북한산성 입구로 걸어 들어갔다. 남들이 40분 걸리는 길이 2시간 걸렸다. 지나는 등산객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느 길이 더 쉽나요?” 대남문에 도착했을 때는 출발한 지 4시간이 지나 있었다. 왕복 7시간이 걸렸다.
남는 건 시간이었던 이 뚱뚱한 백수 남자의 재능은 ‘모험심’이었다. 한 번 간 길은 또 가기가 싫었다. 두 번째는 첫 산행을 거꾸로 짚어 걷고, 다음은 북한산의 문화유산을 답사하는 길을 계획하고, 처가가 있던 곳이 들머리가 됐다는 기억을 되살려 찾아간다. 커다란 화강암 덩어리는 몸이 둔한 남자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번번이 비봉을 올려다보기만 했고, 미끄러지는 등산화 때문에 오봉은 힘들었다. 그래도 5년, 몸무게는 83kg에서 18kg 줄어들고 입에 달고 다니던 담배도 끊었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 “우리 동네 어디든지 서울 어디든지, 나는 내가 서 있는 지점에서 먼저 북한산이 보이는지 보이지 않는지 그것부터 확인한다. 북한산을 보고 있으면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책은 북한산의 매력을 조금 엿본 ‘초심자’에게 안성맞춤이다. 산행기 끝에 붙인 얼기설기 지도는 ‘산성 입구∼대남문∼구기동’식의 판에 박힌 코스를 몇십 개로 업그레이드해준다. 무엇보다, 북한산에 출몰하는 전문산악인의 포스에 기가 질린 (나름 히말라야를 갔다 온 ‘산악인’) 기자는 찌질한 고소공포와 네 발로 걷는 산행 묘사에 큰 용기를 얻었다. 감량에 성공한 ‘해피엔딩’도 얼마나 감동적인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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