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달>
무코다 구니코 지음, 김윤수 옮김, 2007년 6월20일 마음산책 펴냄
에이코는 무를 잘못 썰면 자동적으로 손이 움직여서 먹어버린다. 그는 지금은 별거 중인 남편과 결혼반지를 맞추고 돌아가던 날 낮달을 보았다. “어머, 달이네.” 남편은 낮달이 뭔지도 모르는 남자였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대낮에 무슨 달이 보인다고 그래.” 정말 달이 떠 있는 것을 본 남자는 아등바등 밑만 보고 왔노라 이야기한다. 둘이 달을 보던 때가 돌이켜보면 가장 행복했다. 낮달은 무를 닮았다. “잘못 썬 무 같지 않아. 얇게 썰다가 잘못 썬 무 말이에요.”(‘무달’) 가쓰는 다쓰코의 집에서 기르는 개 가게토라에게 생선을 갖다주는 생선가게 남자다. 그는 가게토라를 산책시키면서 외국 영화 주제가 같은 곡을 흥얼거린다. 다쓰코가 들으라는 듯이. 그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큰 개집을 마당에 만든다.(‘개집’)
<수달>에 나오는 13개 단편 제목의 대부분은 사물이다. 이 사물들은 ‘모티브’란 무엇인가, 모티브가 얼마나 깊이 있게 소설 속에 자리잡을 수 있나를 보여준다. 에이코와 남편의 불화는 그의 ‘완벽주의’ 때문이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의 버릇과 ‘무달’ 일화는 그의 이런 성격을 잘 보여준다. 오갈 데 없는 가쓰는 ‘집’과 ‘가정’을 갖고 싶었다. 그가 만든 개집은 그래서 어처구니없이 커다랬다.
무니코는 1천여 편의 각본을 쓴 방송작가다. 아주 드물게 단편을 발표했는데, ‘수달’ ‘개집’ ‘꽃 이름’ 이 세 작품만으로 1980년 나오키상을 받았다. 이듬해 1981년 비행기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해설을 덧붙인 소설가 미즈카미 쓰토무는 단편소설을 쓰려는 사람이라면 <수달>의 한두 편을 베껴보라고 권한다. 대신 나는 술이 깨지 않는 날, 머리맡에 두고 복용하곤 한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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