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2월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한 소년이 분쟁으로 피란민이 된 팔레스타인인들이 거주하는 텐트를 바라보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3년 10월7일 개전 이후 2년 동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7만여 명이 희생됐다. 이스라엘군은 난민촌과 병원을 폭격하고 구호품 반입을 금지했으며 식량 배급을 받으려는 주민들에게 기관총을 쐈다.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의 소행을 ‘집단살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런 고통 속에서도 가자 주민들은 식민지배에 맞서 싸운다. 이 멀고도 가까운 가자의 이야기를 한국의 장르소설 작가들이 엽편소설로 연재한다. -편집자 주
도망치는 게 아니야, 아와티프. 그건 신의 뜻이야.
어머니가 말했다. 아와티프는 믿지 않았다. 여기 환자들이 있다. 지금도 죽어가고 있고 폭탄이 한 번 더 떨어지면 확실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환자들이지만 아직 살아 있다. 전기가 끊겨 아무 장비도 쓸 수 없지만 손가락을 가져다 대면 맥박은 확인할 수 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의료진마저 없게 할 수는 없다. 아와티프가 제아무리 풋내기 의대생에 불과하더라도.
“게다가 아드함 할아버지가 여기서 왜 나와요?”
아드함. 아와티프의 막내 작은할아버지였다. 아와티프의 조부에게는 이복동생이었고, 증조부에게는 가장 아끼는 막내아들이었다. ‘아랍 대반란’ 때 영국에 대항하는 반란을 주동한 사람 중 하나로 꼽혀 잡혀갔다. ‘주동’까진 아니지만 영국의 철도에 폭탄을 던진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1936년에.
작은할아버지는 그 뒤로 가족과 소식이 끊겼다. 정치범 수용소에 재판도 없이 갇혔다 탈출해 무장조직에 가입했다 따위의 소문만 무성했다. 뭐가 사실인지 알 수 없었고 집으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드함 할아버지가 기차에 폭탄을 던졌단 말은 들어봤지만 기차를 탔다는 말은 처음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 기차를 타고 떠나라 한다.
“네가 그분을 가장 많이 닮았으니까. 그러니까 네가 타야 하는 거야.”
아와티프를 두고 ‘가장 아드함을 닮은 아이’라고 하는 것은 이 집안 어른들의 입버릇이었다. 아드함에게는 세상에 스스로 남긴 핏줄이 없으니, 어른들은 집안 아이들 얼굴에서 아드함을 찾으려고 들었다. 그게 아와티프였다. 아와티프가 제 고집으로 부모를 꺾고 의대에 진학하자 큰할아버지는 아와티프의 얼굴을 한참 빤히 들여다보았다. 어쩜 이렇게 닮았느냐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난 평생 달리는 기차를 직접 본 적이 없다고요.”
“사람의 기차가 아니야, 신의 기차야. 주님의 뜻이지.”
가자엔 기차가 달리지 않는다. 가자에서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 땅으로도 바다로도 막혀 있다. 한때 팔레스타인의 철도였던 길들은 이제 이스라엘의 철도가 되었다. 가자에 남겨진 것은 모두 고철과 폐건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기차는 무슨 기차인가.
*
“이봐, 눈 뜨게.”
아와티프의 짧은 생애 중 마지막으로 목격한 폭격. 살면서 가장 가까이 떨어진 폭격이기도 했다. 굉음보다 빠르게 전달된 폭발의 충격과 열기 이후로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와티프에게 눈을 뜨라고 말을 건 사람은 낯선 얼굴을 한 노년의 남자였다. 아니, 고생을 많이 해서 그렇지 사실은 중년일지도 모르겠다. 건조한 바람에 얼굴이 몹시 상한 꼴이었다.
“당신은 누구죠?”
“길 안내.”
아와티프는 제 팔과 다리와 손을 차례로 확인하고, 이어서 자신이 누워 있는 바닥이 철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서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철로였다. 여기서 길 안내라니. 게다가 주님의 나라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야 한다는 말은 못 들었다.
아, 비슷한 게 하나 있긴 하다. 어머니의 말. ‘신의 기차’를 타라고 하셨던. 그게 진짜 있다고?
“지금부터 기차를 타러 가야 하니 서두르시오.”
아와티프는 폭발의 충격으로 자신의 몸만큼이나 너덜너덜해진 쿠피야1를 다시 목에 감았다. 남자의 검고 거칠고 메마르고 굳은살이 딱딱한 손을 붙잡고 천천히 일어섰다.
“길잡이가 왜 필요한 거죠?”
“당신이 타야 할 기차는 기차역에서 타는 게 아니거든.”
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남자의 이름은 신관수2라고 했다. 발음이 낯설다. 불쾌한 남자였다. 외양이 지저분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가 떠드는 얘기가 불쾌했다. 뇌관, 폭발력, 기차에서 폭약이 습기를 먹지 않게 관리하는 법. 방금 폭탄 맞고 죽은 사람 앞에서 폭탄에 대해 잘 안다고 떠벌리는 사람과 왜 동행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거 없이도 아무 데서나 잘 터져요, 폭탄은. 하늘에서 비행기가 아무렇게나 내던져도, 껍데기만 남은 난민촌 병원에서 아픈 아기를 안고 잠든 사람들 머리통 위로 떨어져서 터진다고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와티프의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신관수를 한마디 한마디 찔렀다.
“나도 갖고 싶군. 아무렇게나 던져도 쾅, 잘 터지는 폭탄 말일세. 내 건 매번 잘 안 터졌어서. 어디서 습기를 먹어서 그랬나. 아니, 어쩌면 내가 좀 못 던지는 거였는지도 몰라. 난 총도 빗맞혔거든.”
혈색 없이 거뭇하고 핼쑥한 얼굴을 한 신관수가 노려보는 아와티프의 시선을 슬쩍 피하면서 웃었다.
“엉뚱하게 미국 여자가 죽었어. 내가 노린 것은 일군 대장이었는데 말이야. 내가 총을 잘못 쏜 거지.”
멀리서 다시 공습 경보음과 포성이 울렸다. 펑, 펑, 폭죽놀이 불꽃처럼 폭탄의 화염이 터진다. 땅에서, 하늘에서. 아와티프는 걸음을 멈추었다.
“죽이려던 게 누구라고요?”
“일본 육군 대장 다나카 기이치.”
*
1936년에 아드함 할아버지가 던진 폭탄은 터지지 않았다. 당시 영국 당국의 발표를 받아쓴 신문 기사에서 ‘폭탄은 터지지 않았다’고 했다. 신관수의 폭탄처럼.
“내가 처음으로 폭탄을 던진 게 압록강 다리였는데.”
신관수가 말했다.
“그게 언제인데요?”
“서기 일천구백십구 년.”
그해에 신관수의 땅에서는 ‘만세운동’이란 게 벌어졌다고 했다. 이듬해에 조선인 군대가 일본군과 싸워 이겼다. 그리고 재앙이 왔다. 신관수가 살던 만주에서. 일본인들이 조선인 마을을 색출하여 조선인들을 죽였다. 조선인 군대를 없애려면 조선인을 없애면 된다. 사람들이 죽었다. 수도 없이, 수도 없이.
“…나크바(민족 청소)가 왔군요.”
그게 신관수가 폭탄을 던지기로 한 이유였다.
이스라엘인들이 자기들의 나라를 세우겠다고 선언하더니,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냈다. 영국이 지원하고 미국이 가르친 유대인 민병대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이고 몰아냈다. 아와티프의 아버지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었지만 누구든지 어제 자신이 겪은 것처럼 생생하게 알고 있다.
나크바 전에 아와티프의 가족에게는 칸유니스의 북쪽,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집이 있었다. 아니, 그랬다고 하는데 아와티프는 모른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살았던 흙과 돌로 만든 집이었다. 언덕 아래 푸른 바다서부터 소금 냄새 섞인 바람이 불어 올라오면, 올리브나무가 초록 가지를 흔드는 집. 태어난 곳도 아니고 돌아갈 수도 없는 아와티프의 고향. 우리는 대지를 빼앗긴 민족이다.
“그 다리가 끊어지면 다리 건너 조선 사람을 죽이러 오는 군대를 막을까 했지. 근데 폭탄이 안 터졌어.”
신관수가 낄낄 웃었다. 아와티프는 그가 웃는 게 아니라 우는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죽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 나라 사람이 죽어가는데 내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아드함 할아버지도 그래서 폭탄을 던지고 총을 쥐었겠지, 신관수처럼.
아버지도, 어머니도, 할아버지도, 큰할아버지도, 아드함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이 아와티프가 언젠가 아드함처럼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두려워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가장 못 견디는 아이가 아와티프였기 때문이다.
지나온 철길의 어둠 뒤편에서 다시 한번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멀리 울렸다. 불공정한, 미국이 이스라엘에 내어준 불공정한 폭탄이 가자 사람의 목숨 위로 터진다. 신관수가 낄낄거리듯 아와티프도 웃었다.
“애초에 그러게 왜 폭탄을 던졌어요. 다른 걸 했어야지. 폭탄은 불공정하잖아요.”
팔레스타인은 가난했고, 영국인과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이 ‘사람 사는 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폭탄도 불량품밖에 없다. 부유한 자들에게는 미국과 영국의 군수공장에서 실어온 진짜 폭탄이 있지만, 아드함과 신관수에겐 없다.
우리가 던진 폭탄은 터지지 않는데 저들이 항공기에서 쏟아내는 폭탄은 반드시 터진다. 아드함의 폭탄도 신관수의 폭탄과 비슷했겠지. 제대로 터지면? 욕먹는 거지, 테러라고. 죄 없는 사람이 죽질 않나. 신관수의 손에 죽은 미국 여자처럼. 그렇게 말하자 신관수가 미친 듯 껄껄 웃었다.
“그러면 자네는 이 기차를 왜 타러 가나? 그만 아무 데서나 주저앉지 그러나?”
*
다나카 기이치를 죽이는 데 실패한 뒤, 신관수는 붙잡혔다. 일본으로 끌려가기 직전에 탈출했고,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폭탄공장을 세울 돈을 코민테른이 주었기 때문이다. 레닌이 죽고 스탈린이 권력을 잡았다. 조국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는데 코민테른은, 소련과 중국의 공산당은 변하기 시작했다.
일본과 싸우지 말고 부자들하고만 싸우라고 했다. 신관수는 거절했다. 비적 떼와 손잡고서라도 일본과 싸웠다. 당에서 쫓겨났다. 비적 떼하고도 손잡는 테러리스트는 필요 없다는 이유였다. 독자적으로 항일 독립군 연합부대를 만들었지만, 도대체가 공산당도 덤비지 않는 만주 땅에서 자기들끼리 아예 나라를 세우고 개척촌을 만들고 사람을 옮겨 심은 일본놈들이 못할 게 뭔가. 1941년, 신관수의 부대는 완전히 고립되고 일본군에 포위당했다. 그래서 신관수는 죽었다. 죽기로 했다. 변절했다.
“그러니까 아가씨도 그만, 죽는 게 어떤가. 지금 죽는 게 나중 죽는 것보다 편해. 욕되기도 덜하고.”
먼 곳에서 폭탄이 쉴 새 없이 터질 때와 비슷한 땅울림이 천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쿵, 쿵, 두쿵두쿵, 덜컹덜컹. 신관수의 등 뒤 새카만 어둠 사이로 노란 불빛 두 개가 보였다.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것처럼 아주 멀리. 신관수가 검은 손을 들어 기차를 가리켰다.

‘팔레스타인 아랍 대봉기’(1936~1939) 때 영국 군인들이 팔레스타인 인질 두 명을 인간 방패로 세우고 장갑열차 안에 있는 모습. 위키피디아
“타지 마. 타봐야 소용없어. 어디로도 못 가네. 저거 가까이 오는 거 같나? 안 와. 계속 저기 있을 거야. 평생.”
신관수의 손은 그냥 볕에 그을려 검은 게 아니라 썩어 있었다. 동상의 흔적이 완연했다. 그가 죽음을 선택한 대가이기라도 한 것처럼. 아와티프는 어머니의 말을 생각했다.
“네가 그분을 가장 많이 닮았으니까. 그러니까 네가 타야 하는 거야.”
그리고 대답했다.
“아니요.”
기차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처럼 저만치 있다. 아와티프는 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앞을 가로막는 신관수의 동상 걸린 검은 손을 붙잡아 내리고, 기차를 향해 걸어갔다. 신관수의 몸이 가볍게 철로 밖으로 떠밀렸다. 아와티프는 앞으로 걸었다. 오지 않으면 내가 가면 된다.
“저 기차는 내가 타야 하니까.”
가장 아드함을 닮은, 가장 참지 못하는, 가자를 떠날 수 없는, 내가 타야 할 기차니까.
김서정 웹소설·장르소설 작가
1. 아랍권 사람들이 머리에 쓰는 전통 격자무늬 스카프.
2. 등장인물 ‘신관수’는 독립운동가 오성륜(1898~1947)에게서 모티프를 따왔다. 오성륜은 의열단 출신으로 황포탄으로 다나카 기이치 암살을 시도한 사회주의 계열 무장 독립운동가다. 만주에서 사회주의 항일 활동 중 중국공산당·코민테른이 일본 타격보다 중국 내부 계급투쟁과 당 통제를 중시하자 충돌 끝에 축출돼 독자적인 부대를 조직했다. 1941년 부대가 포위되자 관동군에 투항, 만주국 치안부 고문으로 항일 세력 탄압에 협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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