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오브 더 북>
제럴딘 브룩스 지음, 이나경 옮김, 2009년 7월 문학동네(031-955-8888) 펴냄, 1만3천원
스위스에서 기이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래, ‘사건’이라 해야 옳다. 법으로 이슬람 사원의 첨탑 건설을 금하겠다는 발상도 그렇거니와, 그걸 투표를 통해 압도적으로 승인까지 해줬으니 더는 할 말도 없다. 돔형으로 짓는 이슬람 사원에 굳이 첨탑을 두는 것은, 이맘(성직자)이 그 첨탑에 올라 무슬림의 의무인 하루 다섯 차례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독경)을 읊기 때문이다. ‘중립’의 가면을 걷어내고 마주하게 된 ‘야만’의 맨얼굴을 바라보며, 문득 <피플 오브 더 북>을 떠올린다.
‘라 콘비벤시아.’ 공존의 시대, 약속의 땅이다. 서기 711년부터 1492년까지, 유대인과 무슬림과 기독교인들은 지금의 스페인 땅에서 평화롭게 이웃으로 살아갔다. 정치와 종교가 관용으로 어우러졌고, 사상과 문화가 예술로 꽃을 피웠다. 소설은 그 시절의 막바지에 만들어진 책 한 권을 모티브로 한다. 이른바 ‘사라예보의 하가다’다.
<하가다>는 유대인 가정에서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의 시작을 알리는 저녁 식사(세데르) 때 행하는 제례의식을 그림과 함께 담은 책이다. 유대인들의 삶에서 중요한 책이면서도, 여염집 가정에도 한 권씩은 있을 만큼 흔하단다. 소설 속 <하가다>에 등장하는 그림은 콘비벤시아가 막바지로 치닫던 1480년 아프리카 출신 무슬림 여성 노예가 세비야에서 그렸고, 유대인 추방령과 함께 공존의 시대가 막을 내린 1492년 타라고나의 유대인 남성이 글을 써 묶어냈다.
고서적 복원 전문가인 주인공 해나 히스가 <하가다>의 이동 경로를 역추적해가는 과정은 말 그대로 시간과 공간을 훌쩍 뛰어넘는다. 책에 남겨진 미세한 흔적을 따라 나치가 발호하던 1940년의 사라예보를 시작으로, 퇴폐와 향략에 취해 있던 1894년의 빈과 종교재판의 광기가 번득이던 1609년의 베네치아까지 숨가쁘게 내달린다. 그 사이사이, 주인공의 시대가 격자로 끼어들며 시공을 확장한다. 시대를 거슬러 유대인의 책을 지켜낸 것은 가톨릭 주교와 무슬림 사서들이었으니, ‘사라예보의 하가다’는 잃어버린 ‘콘비벤시아’에 대한 그리움의 현현일 터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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