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퐁 호 지음, 최재경 옮김, 2009년 4월, 달리 펴냄, 1만2천원
그들에겐 “아기를 먹일 고기도, 생선도, 우유도” 없었다. ‘굶주림에 지쳐 죽어가는 아기에게 왜 단백질을 주지 않았느냐’고 채근하는 도시에서 온 대학생에게 가난한 촌로는 찬찬히 설명을 이어간다.
“벼가 빗물에 무릎 높이까지는 잠겨야 달팽이나 껍질이 보드라운 게, 심지어는 메기까지 잡을 수 있어. …아니면 겨울에, 숲에 들어가서 촉촉한 고사리들 아래에서 분홍색이나 흰색 버섯을 발견할 수도 있고, 덤불 속에서 새로 싹이 튼 죽순을 베어올 수도 있지. …하지만 논밭이 마르다 못해 갈라 터져 단단해지고, 산들이 헐벗은 지금에야 거기 뭐가 남아 있겠어? 우리 앞에서 고기니 생선이니 하는 어린애 같은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마. 우리는 다 배가 고파. 어린 것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고.”
“당연한 말씀”이었다. “진작 알았어야” 했다. 방콕에서 온 혁명전사, 아니 대학생들은 그걸 몰랐다. 난생처음 안경을 써보곤 ‘마법’이라고 생각했던 노인이 이렇게 말을 이었다. “너의 그 ‘눈 고리들’(안경) 말이야. 아마도 책을 읽는 데는 아주 좋을지 모르겠다만, 바로 네 눈앞에 있는 것들을 보는 데도 그렇게 좋은 줄 알았어?”
소설의 미덕은 ‘공감’일 게다. 낯선 땅,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름을 한 주인공들의 사연에 고개를 주억거리거나 눈시울을 붉힐 수 있는 것도 결국 ‘서사’의 힘이다. 중국계 미국인 작가 민퐁 호가 쓴 이 딱 그렇다. 1970년대 중반 타이 북부 농촌을 무대로 한 ‘운동권’ 대학생과 소작쟁의에 나선 농민들의 사연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공감의 한숨과 탄식이 절로 새어나온다. ‘관광의 나라’로만 알려진 타이의 현대사에도 혁명의 달뜬 열기와 학살의 광기, 밀림의 무장투쟁과 허망하고도 쓰라린 패배가 아롱져 있다. 은 그 낯선 역사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길라잡이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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