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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 성인남성의 말기암 아버지, 어쩌다 ‘독박 돌봄’까지 내몰렸나

탈시설 과도기에 시설들조차 ‘선택적’ 손사래… 맞춤형 지원커녕 활동지원도 ‘해당 없음’
등록 2026-03-19 21:08 수정 2026-03-21 14:37
2026년 3월11일 말기 간암 환자인 전경철씨가 자신의 아들이 1년간 장애인거주시설 입소를 거부당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손고운 기자

2026년 3월11일 말기 간암 환자인 전경철씨가 자신의 아들이 1년간 장애인거주시설 입소를 거부당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손고운 기자


“저희가 계속 발품은 팔고 있습니다.”

2026년 3월11일 서울 강동구의 작은 시장에 위치한 다세대주택 2층 월셋집. 공무원 2명이 낡은 집에 찾아와 전경철(64)씨에게 1급 중증장애인(자폐)인 아들 제원씨가 머물 장애인 장기거주시설을 찾는 게 쉽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2025년 4월 전씨는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20여 년 전 이혼한 뒤 혼자 키워온 아들은 어느덧 27살 청년이 됐다. 전씨는 삶을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들이 살 시설을 찾아다녔지만, 지난 1년간 한 곳도 받아주는 시설이 없었다. ‘자식이 나보다 하루만 먼저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다른 발달장애인 부모들처럼, 전씨 역시 극단적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들을 살리고 싶었고, 결국 2월24일 강동구에 ‘시한부 유일보호자 유고 대비 중증장애인 긴급입소 및 공적보호조치 이행촉구서’를 보내 도움을 호소했다. 다행히 서울시와 강동구가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이들도 제원씨가 살아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시설협회장 “‘원 스트라이크 아웃’ 무서워서”

제원씨의 입소를 거절한 적이 있는, 경기도 파주 장애인거주시설 주보라의집 김광식 원장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김 원장은 시설장의 장애인 성폭력이 있었던 ‘색동원 사건’ 이후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장이 책임지고 물러나자 2026년 1월부터 새로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장을 맡고 있다.

“예전엔 서로(시설과 입소 장애인 및 가족) 양해해주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문제가 생기면 가족들이 용납하지 않을뿐더러, 서울시가 색동원 사건 뒤 인권침해가 발생하면 즉시 폐쇄하는 ‘원스트라이크아웃제’를 시행하겠다고 했어요. 시설 입장에선 (도전행동이 심한 덩치 큰) 장애인을 받아줬다가 다른 입소자들이 다치면 ‘인권침해’가 돼서 시설을 폐쇄하게 되잖아요. 문제의 소지가 있으면 안 받고 싶은 거죠. 장애인 4.7명당 생활교사 2명인데, 이 인력으로 최중증장애인을 보기도 힘들고요.”

제원씨는 몸무게 90㎏이 넘는 건장한 청년인데, “아빠” 등 단순한 단어도 전혀 말하지 못하는 최중증이다. 소리에 민감해 할퀴거나 물건을 부수는 등 도전행동을 보일 때도 있다. 시설 관리자의 폭행으로 장애인들이 사망한 사건(2015년 해바라기 장애인거주시설), 시설장이 거주 여성 장애인들을 성폭행한 사건(2025년 색동원 장애인거주시설) 등 장애인 학대 사건이 끊이지 않으면서 ‘시설 원스트라이크아웃제’의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제원씨 같은 최중증 발달장애인에겐 이 제도가 되레 악재로 작용했다.

전씨는 “왜 하필 이때 색동원 사건이 터져서 더 구하기 어려워졌을까,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면서도 “여러 시설에 입소를 문의하던 중 어떤 시설장은 ‘색동원 사태로 사람들이 너무 요란 떤다’는 식으로 말했다. 저런 말을 하는 시설인데, 그래도 저 시설이 아들을 받아준다면 감지덕지해야 하는, 내 팔자가 한스러울 뿐이었다”고 말했다.

아버지 “시설이 받아주면 감지덕지할 판”

지방자치단체와 보건복지부 누리집에 들어가면 ‘최중증 발달장애인 24시간 돌봄’ ‘최중증장애인 월 최대 480시간의 활동지원서비스’ 등의 지원 문구가 있다. 그럼에도 제원씨는 왜 사각지대에 놓인 것일까. 서울시와 강동구, 보건복지부에 물었다.

“서울에 장애인거주시설이 245개 있는데 주말까지 거주 가능한 곳은 40개, 여기서 또 영유아가 있는 곳은 안 되고, 시각장애인 시설을 제외해야 하고, (도전행동이 있어서) 1인실을 찾아봐야 하는데 그럼 몇 곳 남지 않아요. 현장에서 느끼기엔 탈시설 정책의 와중에도 (특수한 경우엔) 맞춤형 시설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이 들고요.”(서울시 장애인복지과 관계자)

“장애인거주시설이 강동구에 3개 있는데 그중 2개는 영유아 시설, 1개는 노인 시설이에요. 아무 시설에나 보내면 안 되잖아요. 서로 다칠 수도 있으니 1인실이 있어야 하고, 별도 관리 인력도 있어야 하고. 저희도 지금 15개 시설에 전화해보고 여러 곳에 다니고 있는데, 다들 어렵다는 거예요.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 것도 정말 어려워요. 월 최대 480시간인데 그마저도 현재 제도에선 아예 움직일 수 없어야 그 정도 지원받을 수 있어요. 제원씨는 움직일 수 있으니 지원을 못 받는 거죠.”(강동구 장애인복지과 관계자)

보건복지부가 2025년 의료집중형(24시간) 장애인거주시설 시범사업을 시작했지만 이 역시 서울 전체에 단 30석에 불과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제원씨에겐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다. 긴급돌봄서비스도 아버지 전씨가 사망해야 시작된다. 전씨는 제도 앞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전씨만의 사례가 아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부모연대)는 2025년 11월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고 전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20대 최중증장애인(자폐) 아들을 돌보던 어머니가 갑자기 뇌경색으로 사망했고, 아버지도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어 아들을 돌볼 수 없었다. 결국 27살 여동생이 오빠 기저귀까지 갈면서 모든 일상을 바쳐야 했고, 이를 알게 된 부모연대가 전국을 뒤진 끝에 경남 산청에 입소할 곳을 겨우 찾아냈다. 성인이 된 최중증 발달장애인 남성들의 가족은 모두 비슷한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2006년 10월10일 아버지 전경철씨가 찍은 아들 제원(당시 7살)씨 사진. 전경철씨 브런치 갈무리

2006년 10월10일 아버지 전경철씨가 찍은 아들 제원(당시 7살)씨 사진. 전경철씨 브런치 갈무리


장애인권리보장법 ‘탈시설화’ 새겨졌지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3월13일 전체회의를 열고 ‘장애인권리보장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서미화(더불어민주당)·김예지(국민의힘)·최보윤(국민의힘) 의원이 각각 발의한 법안을 통합·조정한 새 기본법으로,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등 권리 중심 정책의 패러다임 변화를 반영했다. ‘탈시설화’란 표현도 들어갔다. 그러나 탈시설 정책을 따라가지 못하는 주택 지원, 활동지원서비스는 전씨와 같은 사각지대를 낳고 있다.

부모연대는 색동원 사건 등으로 시설의 폐쇄성과 장애인 학대의 심각성이 드러난 상황에서 ‘시설 확대’로 정책 방향이 가면 안 된다고 했다. 다만 ‘맞춤형 지원’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이 보완돼야 한다고 말한다. 김남연 서울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은 “움직일 수 있느냐 없느냐를 활동지원서비스 산정 기준으로 삼는 제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며 “자해·타해 등 도전행동이 심하고, 전혀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인데도 움직일 수 있다는 이유로 월 100시간 남짓밖에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현실은 부당하다. 지원주택과 활동지원서비스가 있다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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