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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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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워, 나는 도망쳤으나 그는 죽었다

한겨레21 기자들은 왜 극한 폭염 노동에 뛰어들었나
등록 2025-07-31 21:21 수정 2025-08-07 11:51
2025년 7월1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정부 규제개혁위원회의 폭염 규칙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는 민주노총 조합원 위로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다. 연합뉴스

2025년 7월1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정부 규제개혁위원회의 폭염 규칙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는 민주노총 조합원 위로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다. 연합뉴스


어떤 이들에겐 더운데 일하다 죽었다는 이야기가 한없이 멀기만 하다. 얼마나 더웠기에 사람이 죽었지? 너무 덥다 싶으면 좀 시원한 데 가서 쉬다가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시원한 물 마시고 한숨 돌리고 일하면 됐을 것을 왜 그리 무리했지? 자기 몸이 죽을 정도로 타들어가는데 그걸 모르고 일하다니 말이 되나?

한겨레21이 수많은 물음표를 들고 현장으로 갔다. 폭염 노동의 대표 작업장인 농업, 건설업, 택배·배달업 현장에 기자들이 직접 뛰어들었다. 폭우에 이어 33도 이상의 폭염이 이어지던 2025년 7월,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사건이 줄잇던 시기였다. 노동현장에서 체감한 것은 땡볕과 복사열, 높은 습도에 치솟는 체감온도와 체온, 심박수였다. 쉬고, 열기를 털고, 내 몸을 살필 여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2025년 7월24일 오후 전북 고창군의 한 수박밭. 밭에는 한 줌의 그늘도 없었고 실내 휴게 공간도, 심지어 화장실도 없었다. 직사광선에 들고 간 온습도계마저 한순간 60도를 찍으며 고장 나버렸다. 체감온도 40도에 체온과 심박수 모두 치솟은 오후 2시30분께 정신이 혼미해졌다. 열사병 증세에 결국 작업을 그만뒀다. 바로 그날, 기자처럼 작업을 그만두고 도망칠 수 없었던 이는 죽었다. 경북 포항의 야산에서 제초 작업을 하던 네팔 국적 40대 남성이었다.

불법 하도급 관행이 판치는 서울의 공사 현장에서는 뜨끈한 공기만 가득한 천막 휴게 공간조차 그림의 떡이었다. ‘폭염시 2시간당 20분 이상 휴식’이라는 규칙은 “어차피 (더워서) 맛탱이 간 애들은 쉬어봤자”라는 팀장 말 앞에 무색해졌다. 각종 건축자재가 내뿜는 복사열을 고스란히 받는 건축 현장 울타리 안은 바깥보다 훨씬 뜨거운 섬이었다. 체온은 평소보다 3도까지 올라 ‘위험’ 상태가 됐다. 폭염으로 새벽 5시부터 오후 1시까지만 일했는데도 그러했다. “그보다 더 일하면 죽는다”는 말이 들렸다. 실제 7월7일에는 경북 구미의 한 아파트 공사장에서 오후 4시까지 일하던 베트남 출신 20대 노동자가 숨졌다.

“라이더는 밖에서 기다려주세요.” 냉방시설이 가동 중인 가게 안에는 배달노동자가 앉을 곳이 없었다. 물 한 잔 얻어마시기는커녕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어려웠다. 내 몸보다 배달 중인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녹지 않는 것이 우선이었다. 택배노동자는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을 아끼려 계단을 뛰어야 했다. 배달과 택배망을 장악한 거대 플랫폼들은 프로모션을 내걸어 폭염 노동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한겨레21은 폭염 노동이 신체에 끼치는 영향을 측정하기 위해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지티에이컴(ZTACOM)이 개발한 반지형 건강 모니터링 기기 ‘바이탈링'을 착용하고 작업에 나섰다. 바이탈링은 착용자의 심박수, 피부온도, 운동량을 측정하고 스트레스를 분석해 실시간으로 건강 이상을 감지하고 응급 신호를 전송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 기기다. 실제 복지관이나 요양병원 등에서 치매환자, 노인, 암환자 등의 몸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기 위해 활용하고 있다. 바이탈링이 보내온 노동자의 응급 신호는 ‘인공지능 시대’라는 2025년 처참한 일터의 현실을 고스란히 내보인다.

이렇게 지금, 노동자들이 더워서 죽어가고 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장필수 기자 feel@hani.co.kr·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제1575호 표지이야기>

44도 수박밭 땡볕 노동 8시간, 시야가 흐려졌다

2시간마다 20분 휴식? 팀장이 쉬자고 할 때 쉽니다

음식은 고객 집앞에 놓아주세요, 물·휴식·안전은 셀프

무더위에 3명 숨진 택배 노동, 이유 있었다

죽기 전에 작업중지를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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