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반스케처 40여 명이 2026년 3월7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정역 문화거리에서 자신들이 그린 ‘도시 풍경화’를 들어 보이고 있다.
꽃샘추위로 수은주가 영하 5도까지 떨어진 2026년 3월 첫 주말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정역 거리와 광장 곳곳에 스케치북이 펼쳐졌다.
한순간의 스케치로 세상을 품는 어반스케처들이 봄을 맞으러 성급히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올해 첫 실외 스케치 모임에 참여한 ‘어반스케쳐스 고양’ 회원이다. 300여 명이 함께하는 어반스케쳐스 고양은 2022년 4월 활동을 시작해 2025년 1월 글로벌 어반스케처스(USk·Urban Sketchers)에 등록을 마쳤다. 70개 나라 514개 단체가 등록된 글로벌 어반스케처스에 우리나라는 24개 지역별 단체가 등록돼 있다.
이날 모임에 참가한 금홍(62)씨는 2018년 봄 골프를 치던 중 뇌출혈로 쓰러져 5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오른손 등 몸의 오른쪽이 제 기능을 찾지 못한 채 일상에 복귀한 금씨는 2021년 왼손으로 붓을 잡았다. 그림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다스리던 중 2023년 경기도 파주에서 어반스케치를 접했다. 매주 화요일 재활치료차 병원을 찾던 그는 병원 휴게실 풍경과 사람들을 스케치했다. 금씨는 눈앞에 펼쳐진 주변의 모습을 화폭에 옮기면서 자유로움을 느낀다.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조경영(55)씨는 2019년 경기도 수원에서 어반스케치를 접한 뒤 2022년 1년간 학교를 쉬었다. 조씨는 강화 보문사,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 등 3대 관음성지(관세음보살을 모신 사찰)를 비롯한 33곳의 관음성지를 모두 찾아 그렸다. 이 과정에서 마음이 치료되는 것을 느꼈다. 그는 또 국내외 스타벅스를 다니며 스케치를 한다. 아침 일찍부터 어디에 가도 문이 열린 곳이어서 일관된 주제로 그릴 수 있다는 게 그 이유다. 방학이 있는 여름과 겨울뿐 아니라 사계절 내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때가 하루빨리 오길 갈망한다.
이날 참가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초(활동명·37)는 애니메이션을 전공해 어반스케치가 낯설지 않다. 2025년 8월 타이 푸껫에서 열린 어반스케처스 아시아링크스케치워크에 참가해 외국 친구들을 사귄 초는, 2026년 11월 인도 푸네에서 열릴 아시아링크를 손꼽아 기다린다. 그는 다른 참가자들이 실내로 옮겨 스케치를 이어간 이날도 화정역 광장을 지키며 스케치를 마쳤다. “겨우내 실내에서 그렸으니 밖에서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가장 연배가 높은 김순구(77)씨는 어반스케치로 건강을 관리한다. 육군 중령으로 27년간의 군생활을 마친 뒤 기업에서 비상기획관으로 70대까지 일한 김씨는 2019년 어반스케치를 만났다. 직장을 다니며 틈틈이 익힌 한국화에 뿌리를 둔 그의 스케치에는 한국화풍이 배어 있다. 그동안 80권의 스케치북을 완성했다. “어반스케치 덕에 안 가본 곳을 가게 되고, 산책을 겸해 건강도 지킨다”고 말한다.
2024년부터 이 모임을 이끌고 있는 김태균(63)씨는 참가자들과 인사하는 동시에 스마트폰을 내밀어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이 사진들을 단체대화방에 올려 서로의 모습과 안부를 나눈다. 자신의 스케치를 이어가는 중에도 다른 어반스케처들의 모습을 시시각각 사진으로 전달한다.
이들이 이날 빵과 커피를 나눠 먹으며 그림을 그린 빵집 곳곳에는 어반스케치가 갤러리처럼 걸렸다. 빵집 주인이자 어반스케처인 김은진(56)씨는 영업 때문에 스케치에 참가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다행히 2025년 11월부터 두바이쫀득쿠키를 제작·판매해 그간의 손실을 충분히 만회한 김씨는 3월 말로 가게를 그만두고 어반스케처로 돌아갈 기대에 부풀어 있다.
어반스케치란 미술운동을 퍼뜨린 스페인 출신 삽화가이자 기자 가브리엘 캄파나리오는 그의 책 ‘어반 스케치’에서 “어반스케치는 시간을 멈추고 소음을 지운다. 순전히 재미를 위한 것이며 결과보다 경험”이라 말한다. 어반스케처들은 이날도 이른 봄을 소리 없이 잡아 세웠다.
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

조영경씨가 화정역 주변 식물카페에서 식물을 그리고 있다.

금홍씨가 화정역 주변 거리에서 왼손으로 스케치하는 동안 시민들이 이 모습을 보며 지나치고 있다.

초(활동명·오른쪽)와 정상례씨가 화정역 광장에서 주변 풍경을 스케치하고 있다.

김순구씨가 카페에서 창밖 풍경을 그린 어반스케치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은진씨가 2026년 3월 말로 영업을 마치는 자신의 빵집 앞에서 자신이 그린 어반스케치를 들어 보이고 있다. 뒤편 빵집 안에서 어반스케처들이 바깥 풍경을 스케치하고 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이 대통령 “헌법에 있는 ‘검찰총장’ 어떻게 바꾸나” 작심 발언
![[단독] 삼성전자 로봇사 인수할 때 주식 1억3천만원어치 산 직원 수사 [단독] 삼성전자 로봇사 인수할 때 주식 1억3천만원어치 산 직원 수사](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315/53_17735537029589_20260315501250.jpg)
[단독] 삼성전자 로봇사 인수할 때 주식 1억3천만원어치 산 직원 수사

트럼프 군함 요청 받은 중·일·영·프, 동의도 거절도 않고 ‘모호성 유지’

김구 증손자 김용만, 다카이치 ‘독도는 일본 땅’ 망언에 “파렴치한 도발”

‘법왜곡죄 1호’ 조희대 처벌 가능성은…법조계 “내심 의사 입증 어려워”

한국 포함 5개국 호르무즈 ‘킬 박스’ 몰아넣나…뒤로 빠지는 트럼프

‘절윤’ 한다며?…충북지사 출사표 윤갑근 개소식에 윤어게인 총출동

중국 ‘원유 45%’ 달린 호르무즈…트럼프 군함 요청에 즉답 피해

파병땐 자칫 전쟁 휘말릴라…정부, 청해부대 파견 딜레마

‘주일 미군 5천명 이란으로’ 한술 더 뜬 트럼프…다카이치 압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