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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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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베트남” 끈질긴 24년

등록 2023-02-15 07:11 수정 2023-03-08 05:09

세상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던 새로운 이야기(거창하게 포장하자면 ‘의제’)를 발굴해낸.

더구나 이 이야기에 끈질기게 매달려, 기어이 무언가를 이루어내고 마는.

‘좋은 저널리즘’이란, 그런 것이라 믿는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특종이나 단독 보도 못지않게,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래서 더 나은 세상을 향해 한 발짝 나아가는 데 보탬이 되는 기사.

이 잣대로 보자면 나는 <한겨레21> 창간 이후 지난 29년 동안 ‘좋은 저널리즘’의 예시로 항상 둘을 꼽곤 한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고경태)과 양심적 병역거부(신윤동욱) 연속보도.

1999년, <21>의 베트남 통신원이던 구수정(한베평화재단 이사)이 베트남 정부의 전범조사위원회가 작성한 기록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언급했다는 사실을 처음 보도했다. 구수정이 민간인 학살 현장 수십 곳에서 들은 증언을 바탕으로 기사를 쓴 뒤, 고경태 당시 <21> 기자는 베트남을 여러 차례 오가며 보도를 이어갔다. 베트남전에 참가했던 한국군들도 만나 민간인 학살에 대한 귀한 증언을 끌어냈다. 외신들도 이를 인용 보도했고,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다른 언론의 눈길이 미치지 않던 문제를 사회적 쟁점으로 길어올린 이 보도를 접한 한국 독자의 마음도 움직였다. 한국군에게 피해를 입은 베트남인 가족을 돕자는 <21> 캠페인에 1억5천여만원이 모였고 베트남에 평화공원을 지었다. <21>은 2000년부터 2019년 사이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를 모두 6차례 표지이야기로 다뤘다.

첫 보도 이후 24년이 지난 2023년 2월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는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로 피해를 본 생존자 응우옌티탄(63)에게 한국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놨다. 비록 배상 금액은 3천만100원으로 많지 않지만,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한국 법원이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 연속보도 역시 20년 가까이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신윤동욱 당시 <21> 기자는 2001년 ‘차마 총을 들 수가 없어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집총을 거부해 입영하지 않고 감옥에 갇힌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을 인터뷰했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일었다. 종교적 이유가 아닌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나타났다. 국회에서 대체복무제와 관련한 논의가 시작됐다.

첫 보도 이후 17년이 지난 2018년 6월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병역법 제5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해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법원의 첫 무죄 판결이었다.

이렇게 <21>의 첫 보도 이후, 24년 또는 17년 만에야 법원이 전향적인 판결을 내놓았다. 그 기나긴 시간 동안 <21>은 이 두 의제를 끈질기게 보도해왔다.

이번 표지이야기 역시 그 역사적 기록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박기용 기자가 응우옌티탄이 55년 전에 겪은 퐁니·퐁녓 마을 집단학살 사건과 이번 판결의 의미에 대해, 고경태 전 <한겨레21> 편집장이 진실의 물꼬를 트는 데 결정적이었던 참전군인 증언을 이끌어낸 뒷이야기를, 이완 기자가 지난 24년간 <한겨레21>의 끈질기고도 집요한 관련 보도의 역사를 전한다.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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