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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었다

등록 2024-11-01 23:31 수정 2024-11-05 08:47
디자인 장광석 실장

디자인 장광석 실장


미래한국연구소는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매번 직원에게 여론조사와 보고서 작성을 지시했다. 연구소 집기를 ‘동업자’ 건물에 옮겨두기도 했다. 거짓말이었다. 2022년 대선 때 윤석열 후보를 위해 81차례 여론조사를 했고 이 가운데 21차례는 미공표 조사였는데, “미공표 조사는 윤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대선 당일인 2022년 3월9일 미공표 여론조사 보고서가 윤석열 캠프 핵심 참모진에게 공유됐고, 이를 토대로 전략회의를 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2022년 6월 지방선거를 이틀 앞두고 “사모님(김건희 여사)이 궁금해한다”며 미공표 서울시장 여론조사를 진행한 사실도 드러났다. 거짓말이었다.

경남 창원 신규 국가첨단산업단지(창원국가산단) 선정 넉 달 전인 2022년 11월 국토교통부 실사단의 부지 심사를 직접 안내했다는 증언이 나오자 “안내한 적 없고 차를 타고 쫓아다녔다”고 했다. 당일 전화 통화로 실사단의 이동 경로를 실시간으로 전하고, 현직이던 김영선 전 의원이 늦게 도착한다며 질타하는 음성이 공개됐다. 거짓말이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창원지검이 압수수색에 나서자 “아버지 묘소에 묻어둔 증거물을 불태우러 간다”고 했다. 창원지검 관계자는 “아버지 주검을 화장해서 뿌렸고, 그래서 아버지 묘소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이 모든 거짓말은 명태균씨의 것이다. 명씨는 자신의 위법 행위가 드러날 수 있거나 정치적 책임을 외면하고 싶을 때 거짓말을 쏟아내고 있다. 문제는 한 국가의 최고권력자와 그의 부인이 겨우 이런 사람에게 휘둘렸다는 점이다.

한겨레21 단독 보도로  김건희 여사가 명씨를 통해 2022년 6월 지방선거 때 서울시장 선거 판세를 파악했고, ‘5·18 망언’의 책임을 물어 강원도지사 후보 공천에서 배제됐던 김진태 전 의원의 공천 배제 번복 결정에 개입했으며, 2024년 4월 총선을 다섯 달 앞두고 당무감사에서 부진한 성적을 기록한 김영선 전 의원의 구제에 관여했고, 창원국가산단 선정과 관련한 보고서를 받아봤다는 의혹이 드러났다.(제1537호 표지이야기) 그리고 급기야, 윤 대통령이 2022년 6월 보궐선거에서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에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육성이 공개됐다. 이로써 이번 사태는 정치 개입 권한이 없는 대통령 부인의 불법 정치 개입 문제에서 당무 개입 권한이 없는 대통령 당사자의 불법 공천 개입 사건으로 전환됐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윤 대통령이 명씨처럼 자신의 위법 행위가 드러날 수 있거나 정치적 책임을 외면하고 싶을 때마다 거짓말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당장 이번 사건에서도 2021년 11월 있었던 국민의힘 대선 경선 이후 “명씨와 문자를 주고받거나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했던 대통령실의 해명이 거짓말로 드러났다.

정치는 말에 대한 신뢰에서 시작한다. 정치인의 말을 듣고 이를 신뢰하게 된 시민이 정치적 의사를 정치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일상에 집중하는 체제를 우리는 대의민주주의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신뢰가 붕괴하면 어떻게 될까. 일상에 집중했던 시민들이 일상을 버리고 광장에 나와 직접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때가 되면 시민들이 직접 행하는 첫 번째 정치는 거짓말하는 최고권력자의 퇴출이 될 것이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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