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이란 한 사람이 소속된 사회에서 동등하고 존엄한 구성원으로 존중받는 것을 뜻한다. 자신이 가진 정체성으로 인해 차별당하거나 무시당하지 않고, 보편적 권리를 향유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상징적으로도, 제도적으로도 인정받는 것이다. 독일 철학자 악셀 호네트의 인정이론을 기준으로 볼 때, 노동자에 대한 경제적 착취는 노동자를 상품으로 취급하며 무시하는 구조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남성과 이성애자만 완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구조에서 비롯한다. 호네트는 인정이 사회적 불의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유일한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철학자 낸시 프레이저의 생각은 달랐다. 프레이저는 개인이 정체성으로 인한 차이를 인정받기 위한 투쟁에만 몰두하면, 경제적 불평등이 점점 더 극심해지고 있는 이 시대의 분배정의에 대한 문제제기가 소홀해지고, 사회비판이 문화비판으로 축소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프레이저는 경제적 차별 해소와 문화적 무시라는 사회적 불의를 극복하기 위해선 분배와 인정 구조가 함께 변할 수 있도록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레이저와 호네트의 공저서 ‘분배냐, 인정이냐?’에 담겨 있는 기념비적 논쟁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24년 10월2일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동성혼 법제화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먹고사는 문제들이 충분히 해결되는 게 지금은 더 급선무”라며 “사회적인 대화·타협이 충분히 성숙된 다음에 논의해도 되겠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표의 말이 프레이저처럼 인정투쟁에 가린 분배정의라는 쟁점을 꺼내는 생산적 논쟁을 위한 거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저 말은 그저 성소수자가 이성애자처럼 결혼하고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제도적으로 인정받도록 하는 일, 그러면서 한국 사회의 존엄한 구성원으로 존중받도록 하는 일은 ‘나중에’ 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일 뿐이다.
민주당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같지도 않다. 국회 다수당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정부가 금융투자소득세 같은 제도를 바로 시행해 재정을 확보하게 하고 분배정의를 도모할 수 있게 압박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재명 체제의 민주당은 금융투자소득세 시행 추가 유예 혹은 폐지를 검토하고 있고, 종합부동산세와 상속세도 과세 대상자를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이런 방향성으로는 성소수자 혐오를 일삼으며, 분배정의 따위는 일말의 관심도 없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국민의힘 세력과의 정체성 차이를 인정받을 수 없다.
‘먹고사는 문제’가 성소수자와 동떨어진 문제도 아니다. 제21대 국회에서 가족구성권 3법(혼인평등법·생활동반자법·비혼출산지원법)을 발의했던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은 “차별금지법도 동성혼도 먹고사는 문제이자 죽고 사는 문제”라고 말했다. 동성부부는 법적 부부가 아니어서 급여 생활자의 연말 소득공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유산상속도 어려우며, 유족연금도 받지 못한다. 성소수자는 빈번하게 채용 거부나 입사 취소를 당하고, 채용된다고 해도 임금과 수당 등에서 차별을 당한다.
이 모든 사회적 불의가 바로 한겨레21이 동성부부 11쌍의 ‘혼인평등 동시 소송’(1534호 표지이야기)을 응원하는 까닭이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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