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 고위 공무원에게 수시로 보고받았다. 보고와 함께 제출받은 문서는 대외비여서 모든 쪽에 ‘보안 주의’라는 빨간색 도장이 찍혀 있다. 이 문서에는 사업 부지 입지별 현황 비교와 유치 시설 목록 등이 담겨 있다. 외부에 공개되면 인근 땅값이 들썩일 만한 정보다. 중앙정부에서 온 사업 부지 현장실사를 직접 안내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사업 유치를 위해 정부에 제출할 서명 건의문에 이름을 올릴 국회의원 51명을 직접 고르기도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사업비 1조4천억원 규모의 국가사업이자 지역 숙원 사업이다. 그런데 이 모든 행위의 주체가 된 사람에겐 아무런 직책이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걸까.

이 사람은 평소에 대통령 부인과 자주 연락한다고 자랑했다. 2022년 6월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 공천 때 대통령 부인이 전화로 “오빠한테 전화 왔죠? 잘될 거예요”라는 말을 해주었다고,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녹음 파일을 크게 틀었던 사실이 복수의 증언으로 확인됐다. 이 사람과 연관 있는 정치인이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당선될 수 있도록 대통령이 힘을 쓴 것으로 보이는 정황을 대통령 부인이 직접 얘기해준 것이다. 대통령 부인은 이 사람에게 “완전 의지하는 상황”이라며 “식견이 가장 탁월하다고 장담한다”는 문자메시지를 건네기도 했다.
이 사람은 최근 언론 보도가 쏟아지고 있는 ‘김건희 여사 공천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씨다. 첫 번째 문단에서 거론된 사업은 2023년 3월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회의에서 발표된 신규 국가 첨단산업단지 15곳 가운데 하나인 339만㎡ 규모의 경남 창원 방위·원자력 융합 단지(창원국가산단)다. 만에 하나 명씨가 창원국가산단 선정 과정에 개입할 수 있었던 배경에 “완전 의지하는” 관계인 김 여사의 권력이나 김 여사로부터 흘러나온 정보가 존재한다면, 김 여사에게는 공천개입 의혹만이 아니라 비선 실세 국정농단 의혹까지 더해진다. 공천개입보다 무게감이 더 큰 문제다. 마침내 탄핵으로 귀결되고 말았던 2016년 사건들의 기시감이 짙게 드리워지는 의혹들이기도 하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인식이다. 윤 대통령은 2024년 10월21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면담에서 명씨와 관련한 의혹을 두고 “현재 나오는 의혹들이 다 허무맹랑한 것들 아니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명씨의 창원국가산단 선정 과정 개입 문제를 추적 탐사한 이번호 한겨레21 표지이야기를 보고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대통령의 평소 성정을 보면, 그럼에도 능히 같은 말을 할 것 같다는 게 우리의 불행이지만 말이다.
이 불행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2024년 11월9일이면 윤 대통령의 임기는 반환점을 맞이한다. 하지만 대통령 부부의 권위와 신뢰는 벌써 땅바닥에 추락해 있다. 권력자 주변에서 호가호위하던 이들은 권력자의 권위와 신뢰가 추락한 뒤 자신들이 적대자의 공격에 노출되면, 권력자에게서 얻은 것들을 야금야금 내놓으면서 ‘나를 보호해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권력자가 그 신호에 별다른 응답이 없으면 이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 나선다. 이때가 대통령 부부에게 가장 위험한 시점이 될 것이다. 명씨와 관련한 보도들을 보면, 그 시점이 이미 당도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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