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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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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걸린 다른 길의 시작

등록 2023-02-11 13:17 수정 2023-03-08 15:15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韓國軍(한국군)이 全域擔當(전역담당)했더면 越南戰(월남전)은 벌써 이겼을 것’

“한국군은 이 전쟁을 이해하고 있으며, ‘베트콩’과 맞먹는 냉정과 백병전의 결의를 갖고 싸우고 있다. 만일 월남전토를 한국군이 장악했다면 이 전쟁을 벌써 이겼을 것이다.”

1966년 5월30일 <동아일보>에 실린 <런던타임스>의 일요판 <선데이타임스> 기사 일부다. 1960년부터 1975년까지 15년간 이어진 베트남전쟁 당시 <런던타임스> 기자가 현지 한국군 부대를 찾아 성과를 찬양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한국은 전쟁 당사국인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했다. 1964~1973년 연인원 34만6천 명이 베트남에 갔고, 이 중 5099명이 전사하고 1만962명이 부상당했다.

한국은 이른바 ‘전쟁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현대건설, 한진상사, 금성전자 등이 베트남에 군수물자를 납품했다. 한국군 관련 국내 송금액은 8억7250만달러, 외자도입액은 32억8820만달러에 이른다. 은행원 초급이 월 3만원 안팎, 서울 아파트 한 채 가격이 1천만~2천만원이던 시절이다. 당시 국민총생산의 2.6~3.5%가, 수출 총액의 25~47%가 베트남전쟁 특수로 인한 것이었다. 베트남에서 들여온 외화가 전체 보유고의 40%를 넘었다.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룬 데 베트남전쟁은 결정적 구실을 했다.

하지만 전쟁은 많은 상처를 남겼다. 공산주의라는 거대악과 싸운 ‘거룩한 성사’로 이해한 이들에게도 전쟁은 참혹했다. 1990년대에야 참전군인들이 전쟁 후유증을 겪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1999년에는 한국군이 현지 베트남 민간인들을 학살했다는 충격적 사실이 전해졌다. 우리가 피해자이기만 한 게 아니라 누군가에겐 가해자일 수 있다는 ‘관점의 전환’이 일었다.

그로부터 24년, 사건이 발생한 뒤로 55년 만에 한국 정부가 당시 한국군의 학살로 피해를 본 베트남 민간인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처음 나왔다. 일단은 1심 판결에 불과하지만,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으로 비슷한 소송이 잇따를 수 있다. 전쟁 뒤 전범국 일본과 독일이 걸은 서로 다른 길 가운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2023년 2월7일 승소한 재판의 원고인 베트남인 응우옌티탄이 55년 전 겪은 참혹한 사건과, 1999년 이후 이 문제를 집요하게 다뤄온 <한겨레21>의 관련 보도, 향후 과제 등을 살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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