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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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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견고해진 수직과 수평의 세계

등록 2026-10-01 21:49수정 2026-10-06 15:05
2026년 9월9일 오후 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요마치에 있는 대만 티에스엠시(TSMC)의 일본 자회사 제이에이에스엠(JASM·Japan Advanced Semiconductor Manufacturing) 공장의 모습. 한겨레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2026년 9월9일 오후 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요마치에 있는 대만 티에스엠시(TSMC)의 일본 자회사 제이에이에스엠(JASM·Japan Advanced Semiconductor Manufacturing) 공장의 모습. 한겨레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수직과 수평의 세계’.

2024년 2월 한겨레21 편집장이 된 뒤 쓴 첫 ‘만리재에서’(제1502호) 제목이다. 이 글에서 수직은 ‘아래위로 나뉘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 격차’를, 수평은 ‘보편적으로 함께 나빠지고 있는 세계의 민주주의’를 뜻했다. 수직적 불평등이 낳은 고통과 그런 구조를 만든 책임은 가진 자와 권력자에게 있다. 그러나 일부 시민은 그 구조에 함께 저항하기보다, 곁에 있는 여성·이주노동자·장애인·빈곤층 같은 동료 시민들을 혐오하며 이들에게 그 책임을 묻는다. 그 결과 민주주의가 더욱 나빠지고 있다는 문제 제기였다.

2년7개월이 지난 지금,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우파 세력은 이제 자신을 ‘좌파정치와 문화권력에 의해 억압받고 배신당한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최근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우파 세력의 비판도 이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들은 영화가 박정희를 아내 육영수 피살의 배후처럼 묘사한다며, ‘좌파가 장악한 영화계가 박정희를 파렴치한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영화의 특정 장면을 근거로 내세우기보다, 단지 박정희를 ‘왜곡된 공격을 받는 피해자’의 자리에 놓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이 힘을 얻을수록 박정희가 독재자라는 인식과 독재자를 옹호한 우파 세력의 행적은 희미해진다.

여기서 곤란한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사실과 의견에 근거한 논쟁이 사라지고, 진영만 바라보는 주장과 음모론이 난무한다는 점이다.(물론 이 현상은 더불어민주당 지지 세력에게서도 벌어지고 있다.) 다른 하나는 우파 세력이 이 과정에서 기득권으로부터 탄압당하는 약자와 피해자에게 더 많은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민주주의의 당위를 역이용한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권력에 의해 배제된 이들의 목소리를 공적 의제로 끌어올리는 제도여야 하는데, 되레 극우정치를 정당화하는 역설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역설을 극복하려면 여성·이주노동자·장애인·빈곤층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진보정치가 의회에 진출하고, 그 힘으로 실질적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구성된 의회의 압력을 받은 정부는 경제적 불평등 격차를 완화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원내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치 개혁에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재명 정부도 ‘3대 메가프로젝트’ 속도전을 내세우며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만이 한국 사회의 복합적 위기를 해결할 최종 해법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이런 프로젝트가 실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겨레21은 이를 현장에서 확인하기 위해 2021년 11월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인 티에스엠시(TSMC) 공장을 유치한 일본 구마모토현과, 1987년 2월 TSMC 설립 이후 세계적인 반도체 도시로 성장한 대만 신주시를 찾았다.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가 사람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성장의 이익과 비용은 누구에게 어떻게 배분됐는지를 심층 취재해 연속 표지이야기로 전한다. 이 또한 국가가 수직으로 꽂은 프로젝트로 인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수평적으로 보장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아닐까 해서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이번호를 끝으로 2년7개월간의 편집장 일을 마칩니다. 다음호부터는 후임 편집장이 인사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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