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학생의 미래만 걱정하는 사람들

서울 배재고 야구부 소속 학생과 교장·교직원·학부모 그리고 광주제일고 학생들이 2026년 7월6일 오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이 안장된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한겨레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배재고 사건의 일차적 피해자는 배재고 학생들의 5·18 혐오표현을 직접 들은 광주제일고 학생들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보도되면서 피해 범위는 광주 시민 전체로 확장됐다. 광주 시민은 이 사건을 통해 세대를 거치며 누적된 5·18 트라우마를 다시 떠올려야 했고, 지역 혐오와 타자화 속에서 배제되는 감각을 다시 경험해야 했다.
그런데 이번 혐오표현의 피해를 광주에만 한정하는 것이 타당한가. 5·18은 광주에서, 광주 시민들에게 가해진 국가폭력에 의한 학살이다. 그러나 이 고통은 특정 지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국가가 가해자였다는 점에서, 이 폭력은 권력이 통제되지 않을 때 어디서든 반복될 수 있었던 참사이기도 하다.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부당한 고통은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된다. 마틴 루서 킹은 1963년 ‘버밍엄 감옥에서 쓴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어디서든 발생하는 불의는 세상 모든 곳의 정의를 위협한다. 우리는 도망칠 수 없는 상호성의 네트워크에 묶여 있으며, 하나의 운명이라는 하나의 옷을 입고 있다.”
또한 5·18은 국가폭력만의 사건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국가폭력에 맞선 시민들의 봉기와 저항이 있었다. 이 봉기와 저항은 이후 다른 국가폭력에 맞서는 또 다른 시민적 저항을 촉발했다는 점에서, 5·18은 광주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의 민주화 운동을 형성한 역사적 지표가 됐다. 그런 의미에서 5·18은 더 이상 광주만의 사건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역사다.
그러나 배재고 사건 이후 우리 사회는 두 방향에서 익숙한 반응을 보였다. 하나는 선별적 엄벌주의다. 며칠 전까지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주장하고 (드라마가 됐든 현실 속이 됐든) ‘참교육’에 열광하던 정치인을 비롯한 많은 이가 돌연 얼굴을 바꿔 배재고 학생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징계의 적절성을 논했다. 이는 처벌 기준의 일관성이 무너진 문제일 뿐 아니라, 고통받는 피해자보다 고통을 가한 가해자의 안위를 먼저 걱정한다는 점에서 성폭력 사건 등에서 흔히 목격되는 반응과 닮아 있다.
다른 하나는 처벌을 둘러싼 능력주의적 시선이다. 배재고 학생들을 선처하자는 의견에 반대하며 ‘배재고 야구부는 원래부터 전국대회 우승권이나 최상위권 전력이 아니었기에 6개월 출전정지로 인한 전력 손실이나 진학 타격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냉소하는 반응이 나왔다. 학생들의 혐오표현 가해에 대한 처벌 여부까지 능력주의에 기반해 판단한다는 점에서 이 역시 한국 사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낯익은 장면이다.
배재고 학생들의 행위를 전적으로 교육이나 사회구조의 문제로 환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두 가지 반응은 학생들 사이에서 혐오가 발생하는 토양이 돼왔다. 그렇기 때문에 5·18의 고통은 특정 지역과 그 시민들에 한정되지 않고,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로 재인식돼야 한다. 그것이 5·18을 둘러싼 혐오와 타자화에 맞서는 최소한의 출발점이다.
배재고 학생들에 대한 징계와 광주제일고에 방문해 사과한 일, 국립5·18민주묘지 참배는 이런 의미에서 이번 혐오표현이 한국 사회에 일으킨 고통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는 장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함께 바라보는 것은 한국 사회가 5·18의 공동체적 의미를 회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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