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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걱정만큼 쓸데없는 상속세 걱정

상위 5% 이해를 전 국민 문제로 둔갑한 정치권과 언론… 폐지 땐 상속계급사회 질주
등록 2025-04-11 16:37 수정 2025-04-15 07:02
2024년 6월25일 시민노동단체 회원들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입구에서 `무한감세, 감세중독에 빠진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부자 감세 철회와 재정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2024년 6월25일 시민노동단체 회원들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입구에서 `무한감세, 감세중독에 빠진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부자 감세 철회와 재정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재산상속을 통한 부의 영원한 세습과 집중을 완화해 국민의 경제적 균등을 도모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1997년 12월 헌법재판소는 상속세법에 대해 합헌 결정(96헌나19)을 하며 상속세의 의의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의 상속세 모델은 1916년 제정한 뒤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상속세다. 미국 상속세는 불로소득에 대한 조세 정의 실현과 부의 재분배를 위해 누진적으로 설계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최근 진행되는 상속세 완화 논의는 이러한 상속세의 의미와 가치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세금 부담이 크냐 작으냐만 두고 가격 논쟁만 벌이고 있다. 그 결과 혜택은 재벌과 극소수의 초고액 자산가들에게 집중된다. 정말 상속세는 비싸기만 하고 불필요한 세금일까?

중산층도 집 팔아야?… 허튼소리

상속세 폐지를 주장하는 정치권과 보수언론은 ‘중산층도 상속세 내려면 집을 팔아야 한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일단 중산층이 상속세를 걱정할 일은 없다. 인구의 95% 이상은 상속세를 한 푼도 내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의 분석을 보면, 실제로 상속세를 내는 비율은 2023년 기준 전체 상속인의 5.65%에 불과하다. 상속자산 규모 상위 5%만 상속세를 낸다는 얘기다.

게다가 상속세를 내는 5.65% 안에 든다고 해도, 고액의 상속세를 낼 가능성은 작다. 상속세액 대부분은 초고액 자산가들이 부담한다. 2023년 기준 전체 상속 발생 인원 35만2700명 가운데 단 100명이 전체 상속세 결정세액의 59.6%를 납부했다.(참여연대 2025년 3월4일 ‘상속세 감세 주장이 숨기고 있는 쟁점들’ 바로보기 기자간담회) 상속받은 사람 중에서도 0.03%가 전체 상속세의 절반 이상을 부담한 셈이다.

그럼에도 상속세가 너무 높다는 인식이 넓게 퍼져 있다. 2월28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상속세를) 현행보다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52%으로 절반을 넘었다. 이 배경에는 많은 국민, 특히 중산층까지 상속세 부담을 안고 있다는 오해가 있다. 실제로 상위 전체 상속인의 5.65%만 상속세를 낸 실태와 달리 한국인 다수는 상속인 10명 가운데 3명 이상이 상속세를 납부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한국조세재정연구원 3월7일 ‘설문 실험을 이용한 납세자 인식 및 선호 분석’ 보고서)

정치권은 이러한 오해를 의도적으로 이용해 감세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김유찬 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은 “상속세 체계에 공제 제도가 많아서 일반적인 사람들은 상속세 부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잘 모르고 두려워하는 경우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이러한 사람들의 우려를 바탕으로 정부는 세 부담 완화를 꾀하고 결과적으로 극소수 대자산가의 상속세 부담만을 줄여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자산 불평등 심화에 큰 영향을 준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부자가 내는 상속세는 그렇게 많은가? 정치권과 경제지에서 상속세 폐지·인하를 주장하면서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이 50%에 달한다고 언급하는데, 다소 과장됐다. 명목세율이 높아 보이는 건 맞지만, 실제로 상속하는 재산 가운데 절반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과세표준 구간인 30억원 초과시 10억4천만원을 내고, 추가로 30억원을 초과하는 금액의 50%를 납부하도록 정해졌을 뿐이다.

 

자산 상위 1%가 내는 상속세도 13.9%

게다가 이들이 실제로 부담하는 상속세는 이보다 적다. 실제 부담하는 세금을 살펴보기 위해선 실효세율을 따져봐야 한다. 이상민 위원이 2024년 8월 국세청 자료를 바탕으로 실효세율을 파악한 결과를 보면, 상속세 과세가액 대비 실효세율은 23.1%였다. 2023년 최상위 1%(200명) 상속재산을 물려받은 사람에게 적용된 상속세 실효세율은 13.9%뿐이었다. 1억원의 상속세를 내야 하는 사람이 2024년 8월 기준으로는 2310만원만 냈고, 2023년 기준으로는 1390만원만 냈다는 얘기다.

명목세율과 실효세율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한국의 상속세엔 공제되는 항목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은 모든 상속인은 최소 2억원(기초공제)을 공제받을 수 있다. 배우자가 생존했을 경우에는 최대 30억원까지 공제받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도 최소 5억원(일괄공제)까지 공제받을 수 있다. 신승근 한국공학대 교수(복지행정학)는 “명목세율은 50%라고 하지만 공제 항목이 많아서 실효세율은 낮은 편이다. 부양가족 공제도 많이 해주는 수준이다. 결국은 실효세율로 보면 그렇게 높지 않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경제지에서 ‘기업인의 경우 50%인 최고 세율에 할증이 붙어 60%까지 상속세가 부과될 수 있다’는 주장도 하는데,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세율에 20%가 가산되는 게 아니라,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은 주식 가격에 20%를 가산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시장에서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은 주식은 45% 이상(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최한수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의 ‘우리나라 경영권 프리미엄 현황 분석’ 연구)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이에 견줘보면 20%라는 가산 수치는 오히려 상속세를 할인해주는 셈이다.

정부는 3월12일 유산취득세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상속세 부과 기준을 현행 피상속인(사망자)에서 상속인(상속받는 배우자·자녀)으로 바꾸는 게 뼈대다. 한국의 현행 상속세는 유산세 방식으로 피상속인(사망자) 전체 유산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방식이다.

다른 세금도 적은데… ‘유산취득세’는 위장 감세

유산취득세 도입도 선택지가 될 수는 있지만, 필연적으로 전체 세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남는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유산취득세를 도입한다면, 전체 세수가 줄어들지 않도록 세금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유찬 전 원장은 “국가의 세수입은 300억원짜리 1건을 과세하던 것을 100억원짜리 3건을 과세하는 것으로 바뀌면 세수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유산취득세로 과세 체계를 전환한다면 현재의 상속세 부담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과세표준구간과 일괄공제액을 축소해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민 위원도 “정부가 제출한 유산취득세 안에는 어마어마한 감세가 같이 합쳐져 있다. 이미 부결된 안인 인적공제를 현행 5천만원에서 5억원으로 10배 늘리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유산취득세를 하려면 가능한 한 조세 중립적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속세가 국세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24년 기준 2.65%(9조6400억원)에 달한다. 상속세를 완화할 경우 세수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상속세를 제외하면 자본에 부과하는 세금이 사실상 없기도 하다. 국민의 대표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부동산과 주식의 경우 과세가 거의 되지 않거나 다른 나라에 견줘 과세 규모가 적다. 금융투자소득세는 도입 직전 철회됐고, 부동산 보유세 역시 낮은 수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속세는 사실상 유일하게 자산에 부과하는 세금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소득세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 평균보다 한참 낮다. 국회예산정책처 백경엽 세제분석2과장이 2023년 한국조세연구포럼에 제출한 ‘상속·증여세 과세체계 국제 비교 및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지디피) 대비 상속·증여세 부담은 0.7%로 상속세·소득세를 모두 부과하고 있는 오이시디 22개국(평균 0.1%) 가운데 높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같은 해 소득세 부담은 지디피 대비 6.1%에 그쳐, 오이시디 평균 8.9%보다 낮고 22개국 가운데 칠레 다음으로 가장 낮다. 이상민 위원은 “상속세가 낮은 나라들 같은 경우는 그 이전에 소득 과정에서 세금을 충분히 많이 내는 나라들이다. 한국은 소득세도 낮고 특히 자산 관련 세금은 어마어마하게 낮고 금융 자산에 대한 과세는 아예 없다. 이런 상황에서 상속세를 낮출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상속세 인하가 국가 부채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신승근 한국공학대 교수(복지행정학)는 “한국도 일본처럼 고령화 사회로 간다. 우리가 사회에서 부양해야 할 사람이 엄청 늘어나는데 상속세를 인하하면 안 된다”며 “세수 부족을 메울 수 있는 건 국가 부채밖에 없다. 그러니까 지금 세대가 세금을 조금 부담하면서 국가 부채를 늘릴지 아니면 세금을 그대로 부담하면서 부채를 늘리지 않을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고 경고했다.

상속세 재산가액별 과세인원 및 총결정세액 비교

상속세 재산가액별 과세인원 및 총결정세액 비교


유지 필요성이 폐지 필요성 압도

1997년 상속세 합헌 결정문은 “상속세 제도는 자유시장경제에 수반되는 모순을 제거하고 사회정의와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하여…”라고 설명한다. 지난 28년 동안 이 결정문은 한국 사회의 사회정의와 경제민주화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이 생산해 만들어내는 소득의 가치보다 물려받는 자산이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국민소득 대비 증여를 포함한 상속의 합계(일부 중복)는 2002년 2.16%에서 2012년 2.74%, 2021년 5.31%, 2022년 6.52% 등으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2010년대 들어서면서 증가폭은 더 가팔라졌다. 같은 기간 국민소득 규모가 2.7배밖에 늘어나지 못한 사이, 상속과 증여를 통한 부의 무상 이전 규모는 8.3배 늘어났다.

상속세가 이런 흐름에 브레이크를 걸 ‘마지막 보루’로 남아야 하는 까닭이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상속세는 ‘최후의 보루’다. 소득세 등 다른 세금의 세율이 낮기 때문에 이거라도 해야 한다”며 “상속세가 없으면 사회 전체 유동성이 저하되고, 기회가 공정하게 가지 않고, 다시 자산의 양극화, 소득의 양극화, 주거의 양극화가 진행될 것이다. 재산을 가진 사람은 상속에 더 집착하고, 상속계급사회가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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