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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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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홍명보였을까… ‘축구인’들의 쇄국정책이 문제다

대표팀 감독 선임 파문 2년, 국내 지도자론 뒤에 숨은 폐쇄성과 팬 배제
등록 2026-07-02 20:54 수정 2026-07-04 14:38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홍명보 감독이 2026년 6월28일(현지시각) 오전 멕시코 과달라하라 인근 사포판의 치바스 베르데 바예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홍명보 감독이 2026년 6월28일(현지시각) 오전 멕시코 과달라하라 인근 사포판의 치바스 베르데 바예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계를 2년 전으로 돌려보자. 정답은 이때 이미 나왔으니까. 홍명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발표 하루 만인 2024년 7월8일, 선임 과정이 불합리했다는 폭로가 내부에서 나왔다. 당시 대표팀 감독 선임을 맡았던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전강위) 박주호 위원(2014·2018 월드컵 국가대표)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 ‘캡틴 파추호’를 통해 전강위 논의 과정 일부를 공개한 것이다.

영상 촬영 중 피디로부터 홍명보 울산HD 감독의 선임 소식을 전해 들은 박 위원의 놀라는 표정이 그대로 화면에 담겨 논란은 더욱 커졌다. 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에 참여한 전강위원이 언론 보도로 감독 선임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당시 박 위원은 외국인 감독 후보 중 한 사람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이는 감독 선임 소식을 기다리던 축구 팬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 박주호 위원이 2024년 7월8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캡틴 파추호’ 영상을 찍다가 실시간으로 홍명보 감독 선임 소식을 듣고 놀라는 모습. ‘캡틴 파추호’ 유튜브 갈무리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 박주호 위원이 2024년 7월8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캡틴 파추호’ 영상을 찍다가 실시간으로 홍명보 감독 선임 소식을 듣고 놀라는 모습. ‘캡틴 파추호’ 유튜브 갈무리


‘싫다’던 홍명보를 누가 밀어올렸나

 

홍명보는 누구도 원하지 않던 감독 후보였다. 심지어 홍명보 본인조차. 홍명보 감독 선임 발표(7월7일) 불과 이틀 전인 7월5일까지만 해도 그랬다.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리그1 수원FC와 울산HD의 경기를 앞둔 홍 감독은 기자들로부터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이사가 홍 감독을 설득하러 울산에 간다고 한다”는 말을 전해 듣자 “선수단이 이날 경기 이후로 휴가를 떠나서 나는 울산에 없을 것”이라고 답하며 이 기술이사를 만나지 않겠다고 에둘러 표현했다.

K리그 팬들은 프로팀 감독을 징병하듯 뽑아가려는 대한축구협회의 행태에 분노했다. 울산HD 서포터스 ‘처용전사’는 전강위 2차 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인 2024년 2월23일, 대한축구협회에 항의하는 뜻을 담은 트럭 시위에 나섰다. 국외 축구를 주로 보는 축구 팬들은 국내 감독 선임 자체에 부정적 시선을 보냈다. 월드컵 말고는 축구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시민들에게 홍명보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실패의 쓴맛을 본 감독일 뿐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홍명보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다. 당사자인 홍 감독도 원치 않았던 대표팀 감독 자리로 그를 밀어올린 이들은 ‘한국 축구인’이었다. 이들의 지상 과제는 ‘국내 지도자의 대표팀 감독 선임’이었던 듯하다. 전강위 내부에서도 끊임없이 ‘빌드업’이 시도됐다.

 

“회의 시작 전부터 그런 얘기를 계속 이어갔어요. ‘이제 국내 감독이 해야 되지 않아?’ ‘국내 감독 좋은 감독 많은데’ (…) 외국인 감독님에 대해서는 설명할 때 이건 안 좋고 저건 안 좋고, (…) 그런 얘기를 하던 분들이 국내 감독님한테는 그런 게 없어요. 뭐가 좋다 안 좋다가 없어요. 그냥 다 좋다, 잘한다….”

―박주호 전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 ‘캡틴 파추호’ 유튜브 영상 37분11초부터

대표팀 감독 후보였던 제시 마치 감독(현 캐나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과 협상이 틀어지자, 전강위는 월드컵 2차 예선을 임시감독 체제로 어영부영 넘기며 반년을 허비하다 홍 감독을 찾았다. 몇몇 위원이 홍 감독 선임을 주도했다. 전강위 10차 회의록에 따르면 어떤 위원은 “지난 (브라질) 월드컵에서 본인의 꿈을 펼치지 못했기에 아쉬움이 있을 것”이라며 감독 역량과 상관없는 말만 얹었다. K리그 팬들의 반발에 대해서는 “대표팀이 잘돼서 K리그가 잘되는 거니 명분은 충분히 있다”는 시대착오적 발언도 나왔다.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은 2024년 6월27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을 찾아가 10차 전강위 회의 결과를 보고했다. 홍 감독이 최우선순위로 꼽혔다고 정 위원장이 보고하자, 정 회장은 “(다비트 바그너와 거스 포예트 등) 세 명의 후보와 대면 면접을 진행하고 결정하는 게 절차상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이날 보고 이후 정 위원장은 돌연 자리에서 물러났다. 후일 공개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스포츠윤리센터 진상조사에 따르면 정 위원장은 홍 감독을 1순위로 정한 자신의 결정을 정 회장이 거부한 것으로 이해하고 실망해 거취를 결정했다. 정 위원장을 따라 위원 몇 명도 함께 사퇴하며 전강위는 사실상 와해됐다. 사보타주였다.

협회 밖에서도 정 회장을 압박하는 성명이 나왔다. 한국축구지도자협회는 2024년 7월1일, 정 위원장의 사퇴와 관련해 “정몽규 회장이 경질한 것과 다름없다”며 정 회장을 비난했다.

성명 발표 일주일 전인 6월24일 출범한 한국축구지도자협회는 국내 지도자 선임론을 전면에 내세운 단체였다. 설동식 협회장은 출범식에서 “왜 우리 감독들은 대표팀 사령탑 선임 과정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건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배척론이 된 ‘국내 지도자 선임론’

 

한국 축구계는 암묵적인 쇄국정책을 펴고 있다. 2026시즌 K리그1 12개 클럽 중 외국인 감독은 단 한 명뿐이다. K리그2 17개 클럽 중 외국인 감독은 3명이다. 일본 J1리그 20개 클럽 중 외국인 감독이 6명인 것과 대비된다.

외국인 지도자의 적은 비중은 원인이 아닌 결과다. 한국 축구계는 외국인 지도자에 적대적인 분위기를 형성해왔다. 대표적 사례가 한국 대표팀 감독 최종 후보에서 탈락한 뒤 2025시즌 전북현대모터스의 지휘봉을 잡았던 거스 포예트 감독이다.

전북의 포예트 선임은 성공이었다.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영입했지만, 성적은 반비례하며 2024시즌 강등권까지 떨어졌던 전북현대는 1년 만에 K리그1과 코리아컵 우승컵을 동시에 들어 올리며 더블을 달성해, 한국을 대표하는 빅클럽의 명예를 단숨에 회복했다.

포예트의 성공 비결은 ‘한국 축구에 대한 높은 이해도’였다. 포예트는 2024년 8월 유튜브 채널 ‘이스타TV’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축구 철학과 대표팀 운영 방안 일부를 설명했다.

포예트는 “한국 선수 중 눈여겨본 선수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주저하지 않고 스트라이커 이영준(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을 언급했다. K리그를 챙겨보지 않고서는 한국 축구 팬 사이에서도 다소 생소한 이영준을 지목한 것은, 그가 대표팀 감독직에 지원하며 한국 축구를 얼마나 많이 연구하고 분석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포예트 체제’는 1년을 넘기지 못했다. 심판과의 마찰 탓이었다. 심판 판정은 전북뿐 아니라 K리그 전반에 걸친 문제였지만, 심판진과 포예트 사단의 갈등은 더욱 심각했다. 2025년 11월8일 터진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심판의 오심에 격분한 전북의 마우리시오 타리코 코치가 퇴장 처분을 받자 재차 항의하며 두 손가락을 눈에 갖다 댔는데, 경기 주심을 맡은 김우성 심판과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이를 인종차별, ‘눈 찢기 행위’로 간주했다.

축구 팬들은 연맹의 결정을 납득하지 못했다. 전북현대와 타리코 코치는 ‘제대로 보라’며 눈을 가리켰을 뿐이라며 재심을 청구했지만, 5경기 출장 금지와 2천만원 제재금 징계는 확정됐다. 이후 타리코 코치는 심적 고통을 호소하며 자진 사임했고, 사단을 이끌던 포예트 감독도 쫓겨나듯 전북을 떠났다.

포예트의 업적은 끝까지 외면당했다. 2025년 대한축구협회 올해의 지도자상은 이정효 전 광주FC 감독에게 돌아갔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 8강 진출을 비롯해 코리아컵 준우승을 거둔 이 감독의 성과도 훌륭했지만, 석연찮은 의심은 남는다.

코리아컵은 프로와 아마추어를 통틀어 대한민국의 모든 축구클럽이 참가하는 대한축구협회 주관 대회다. 자신들이 주관한 대회에서 우승한 감독을 ‘패싱’한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 축구 캐스터는 익명의 축구인과 만난 자리에서 “도대체 왜 사람들은 외국인 감독을 그렇게 좋아하냐”며 볼멘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는 일화를 전했다. 과연 이 적대감은 포예트를 비롯한 외국인 감독을 대하는 축구인들의 태도와 무관할까?

 

2026 북중미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손흥민 등 선수들이 2026년 6월27일(현지시각) 오전 멕시코 과달라하라 인근 사포판의 치바스 베르데 바예에서 훈련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6 북중미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손흥민 등 선수들이 2026년 6월27일(현지시각) 오전 멕시코 과달라하라 인근 사포판의 치바스 베르데 바예에서 훈련하고 있다. 연합뉴스


팬 없는 ‘축구인 정치’는 계속된다

 

다시 홍명보 선임 당시로 돌아와보자. 정해성 위원장의 사보타주에 이어 국내 지도자들의 압박까지 받은 정몽규 회장은 4선이 불투명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평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정 회장의 입지는 좁았고, 4선을 위해서는 국내 축구인들의 지지를 받아야 했다. 이임생 기술이사가 독단적으로 홍명보 감독 선임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는 선임 발표 과정에서 포예트를 비롯한 외국인 감독 후보자의 전술을 ‘롱볼 축구’ ‘전방 압박’으로 단정 지으며 한국 축구와 맞지 않는다고 말하더니, 홍 감독에게는 ‘K리그 빌드업 1위’라는 정체불명의 지표까지 동원해 웃음거리가 됐다.

세간의 비아냥 속에서도 홍명보는 대표팀 감독이 됐고, 정몽규 회장은 4선에 성공했다. 대표팀 감독 선임 전까지 정 회장을 압박하던 한국축구지도자협회는 2025년 1월, 대한축구협회장 선거를 앞두고 돌연 정 회장 지지를 선언했다. 월드컵을 목전에 두고 정 회장이 사임을 발표하자 이들은 안타까워하며 “월드컵의 성공적인 준비를 위해 축구계의 화합과 단결이 필요한 때”라며 훈계하듯 말했다. 대체 무엇을 위한 화합과 단결일까.

정몽규 회장은 곧 물러난다. 홍명보 감독은 도망치듯 사퇴했다. 일각에서는 ‘제대로 망해야 새판이 짜인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이미 위르겐 클린스만이라는 폐허 위에서도 축구계는 우리에게 재건을 약속한 뒤 참담한 결과물을 냈다. 내국인과 외국인을 갈라치기하고, 클린스만을 독단적으로 선임했던 정몽규를 회장으로 다시 선출한 ‘축구인’들이 투표권을 들고 있는 한, 팬을 기만하는 그들만의 축구는 계속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욕 조금 먹고, 엿 한두 번 맞고 나면 사람들은 잊어버린다’고 그들은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본질적인 질문부터 다시 던진다. ‘축구인들은 과연 축구가 국민의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가?’ ‘내외국인 따질 것 없이 좋은 지도자들이 필드에서 경쟁하며 팬들에게 수준 높은 축구를 보여줄 의지가 있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말할 축구인은 얼마나 될까.

 

정진욱 자유기고가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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