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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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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도려내는 고통

등록 2026-03-05 22:24 수정 2026-03-11 14:01
학교 공습으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합동장례식이 열린 2026년 3월3일 이란 남부 소도시 미나브에서 거대한 공동묘지가 조성되고 있다. UPI 연합뉴스

학교 공습으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합동장례식이 열린 2026년 3월3일 이란 남부 소도시 미나브에서 거대한 공동묘지가 조성되고 있다. UPI 연합뉴스


2024년 2월 편집장을 맡은 뒤 지난주에 만든 제1603호로 정확하게 100번째 한겨레21을 제작했다. 지난 주말 책상에 앉아 100개의 표지를 하나씩 되짚어보니, 그동안 한겨레21이 이야기한 주제는 크게 세 가지 열쇳말로 압축됐다. 세계의 고통, 유린된 민주주의, 불평등에 대한 저항이다. 지난 2년 동안 한겨레21은 러시아의 침공과 이스라엘의 집단살해로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주민들이 겪은 고통을 담았고, 윤석열이 일으킨 내란과 사법기관의 소극적 처벌 앞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유린되는 현실을 짚었으며, 재난과 참사, 학교급식·폭염·심야택배 노동 현장, 이주민과 장애인의 삶에서 벌어진 불평등에 저항했다.

이번 주에 제작한 제1604호 표지이야기는 다시 세계의 고통을 직시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침공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임박한 위협”을 명분 삼았지만, 2003년 이라크 침공 때 “임박한 위협”이라고 규정했던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은 것처럼 이번에도 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집권 2기 들어 오만을 중재자 삼아 이란 핵합의 협상을 이어가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을 침공하기 하루 전에 “이란 쪽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내놓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하지만 같은 날 오만의 외교장관은 “이란이 무기급 핵물질을 절대 보유하지 않겠다고 합의했다”고 트럼프 대통령과 다른 말을 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내세운 이란 침공의 명분을 근본부터 흔들 수 있는 발언이다.

이번 공습으로 숨진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정권이 2026년 초 경제 파탄과 인권침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인 민중 수만 명을 폭력 진압으로 살해한 정치세력이라는 점도 침공의 명분은 되지 못한다. 이란의 정권을 교체하고 다음 정치체제를 결정할 권리는 오로지 이란 민중에게 있다. 이란 민중이 스스로 억압과 착취가 없는 사회를 위해 일으키는 혁명이 아니라 외세의 침공으로 인한 ‘해방’을 맞게 되면 이후의 미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더 많은 폭력과 내전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라크와 리비아, 아프가니스탄의 사례에서 보았다. 게다가 하메네이 정권에 저항해온 이란 민중은 이번 침공 이후 하메네이가 되레 순교자로 여겨지는 곤란한 상황과 마주하게 됐다.

무엇보다 이번 침공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전쟁의 고통이 또다시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깊게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건이 2026년 2월28일 이란 남부 소도시 미나브에서 벌어진 학교 공습이다. 혁명수비대 해군기지 근처에 있는 여자초등학교에 떨어진 폭탄으로 3월1일 현재 175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희생자는 대부분 어린 학생들이었다. 3월3일 열린 합동장례식에서 인부들이 공동묘지에 이 학생들을 묻을 구덩이를 줄지어 파고 있는 장면과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의 주검을 향해 손을 뻗으며 동시에 오열하는 모습을 담은 보도사진에는 살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이 담겨 있다.

침공 닷새를 맞은 3월4일까지 확인된 이란 민간인 사망자는 어린이 183명을 포함해 모두 1114명에 이른다. 이 문장 하나만으로 이번 전쟁에 그 어떤 정당성도 부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하지 않은가.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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