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2월20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 서울 시민추모대회에서 유가족들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
매주 친구들과 하는 토론 모임에서 2025년의 키워드를 꼽아봤다. 친구들이 꼽은 키워드는 ‘혐중과 극우’ ‘감정 낚시’ ‘참을성’, 독립영화 ‘3학년 2학기’와 ‘세계의 주인’, ‘지브리 프사(프로필 사진)’ ‘쿠팡’이었다. 나는 ‘불안정성’을 꼽았다.
2025년의 한국이 ‘발 딛고 설 세계, 구조, 관계가 사라진 상태’를 일컫는 ‘세계 없음’(worldless)의 절정에 다다랐다고 봤기 때문이다. 유튜브 속 극우 음모론에 취한 대통령이 일으킨 내란의 여파로 한국의 민주정은 1987년 이후 공고하게 유지해왔다고 믿었던 공통의 합의를 상실했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이후 새 대통령을 뽑았지만, 공통의 합의가 사라진 세계는 아직 복원되지 않고 있다. 정치는 내란으로 드러난 체제의 모순을 치유하는 근원적 개혁을 외면한 채 ‘내란 세력보다 조금 더 나은 정치’ 대 ‘내란 세력’이라는 적대적 공생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경제 불안정성도 커지고 있다. 고물가·고금리·고부채·주거난이 이어지는 동시에 고용이 불안정해지면서 임금으로 인한 자산 축적은 어느덧 불가능한 신화가 됐다. 그런 현실에 대한 체념이 사람들에게 자기 자본에 부채까지 더해 주식과 코인 등에 단기 투자하는 불안정성을 부추기고 있다. 국제 관계에 대한 학습 열풍과 기업 혹은 재벌에 대한 호의적 반응(요즘 재벌은 셀럽이 되었다)은 사람들이 노동자가 아니라 투자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투자에서의 승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정치와 경제에서 불안정성이 커지는 사이, 곳곳에서 시스템 붕괴를 상징하는 재난 참사가 벌어졌다. 올 한 해 유독 붕괴로 인한 사망 사고가 잦았다. 게다가 2025년을 사흘 앞두고 벌어진 전남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는 179명이 사망하고 1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참사의 원인이 무엇이고 책임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시민들은 내란 이후 대처에 골몰하느라 무안공항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유가족들이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무안공항 텐트를 지키고 선 까닭이다.
2025년 3월 경북 일대에서 발생한 ‘역대 최대 규모 산불 참사’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피해 복구 예산 1조8809억원을 투입해 ‘무너진 삶을 일으켜 세우겠다’고 홍보했지만, 이 예산의 상당 부분을 산림 재개발에 투입했다. 이재민들은 정부가 제시하는 ‘표준 항목’에 피해를 입력할 수 있어야만 보상받는 상황에 처해 있다. ‘표준’이란 개념 자체가 ‘비표준’을 전제한 개념이다. 제주항공 참사 피해 유가족과 경북 산불 참사 피해 주민은 오늘도 “최초의 ‘빅뱅’과도 같았던 참사 이후 지독한 ‘여진’ 같은 상실”을 견디며 살고 있다.
한겨레21이 이 참사 피해자들의 이야기로 2025년을 마무리하는 건 이들이 붕괴 직전의 사회 가장 밑바닥에서 울부짖고 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2026년엔 시민들이 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일어설 수 있어야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불안정성을 극복할 힘을 모을 수 있다. “우리 삶이 개인들의 단독공연이 아니라, 서로를 돕고 보호하는 협동공연으로 이뤄진다는 관점은 불안정한 개인에게 위로를 준다.” 이번호 ‘곤란한 책’에 담긴 문장이 참고가 되면 좋겠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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