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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주노동자 제도 퇴행, 또 퇴행…트럼프에게 손가락질할 때가 아니다

등록 2026-01-29 22:38 수정 2026-02-04 13:53
베트남에서 온 연수생들이 2026년 1월25일 오후 경남 김해시의 한 직업전문학교 앞에서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김해(경남)=신소영 기자 

베트남에서 온 연수생들이 2026년 1월25일 오후 경남 김해시의 한 직업전문학교 앞에서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김해(경남)=신소영 기자 


네팔 출신 28살 이주노동자 툴시 푼 마가르는 2024년 8월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왔다. 전남 영암에 있는 돼지농장 우성축산에서 일했는데 한국에서의 삶은 생각과 달랐다. 사장과 네팔인 팀장이 밤늦은 시간까지 일을 시켰고,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 벌로 밥도 굶겼다. 석 달 만에 체중이 7~8㎏ 줄었다.

툴시는 “너무 힘들다, 이 회사에서 일을 못할 것 같다”고 말했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고용허가제로 온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이동이 엄격히 제한된다. 사업주에게 부당한 처우를 당하면 이동할 수 있지만, 직접 피해를 입증해야 한다. 툴시는 고용센터에 피해 신고를 했지만 “증거가 있냐”는 답만 받았다. 결국 일하다 쓰러진 툴시는 네팔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가 사장과 팀장에게 온갖 굴욕을 당하고 2025년 2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제1556호 기사 참조)

전남 영암의 한 돼지농장 우성축산에서 괴롭힘 피해를 당한 뒤 목숨을 끊은 툴시 푼 마가르(왼쪽에서 두번째)가 2024년 12월 친구들과 목포로 놀러간 모습이다. 피해 노동자 제공

전남 영암의 한 돼지농장 우성축산에서 괴롭힘 피해를 당한 뒤 목숨을 끊은 툴시 푼 마가르(왼쪽에서 두번째)가 2024년 12월 친구들과 목포로 놀러간 모습이다. 피해 노동자 제공


고용허가제에서 사업주는 툴시의 사장처럼 절대군주 같은 권한을 누리며 이주노동자 위에 군림한다. 이주노동자는 사업주의 전횡에도 그저 참고 또 참을 수밖에 없다. 2020년 12월 영하 18도의 강추위에 전기 공급이 끊겨 난방기가 작동하지 않는 비닐하우스에서 자다 숨진 캄보디아 출신 30살 속헹도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였다.

문제는 한국의 이주노동자 관련 제도가 고용허가제보다 더 퇴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겨레21이 취재한 결과, 조선업 등 특정 분야에서 연수비자(D-4-6)로 입국시켜 기능인력(E-7-3)으로 전환하는 기술연수생 제도와 계절노동자(E-8 비자) 제도가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를 ‘인신매매’ 피해자로 내몰고 있었다. (한겨레21 1600호 표지이야기) 그런데도 2017년 1085명으로 시작한 계절노동자 제도는 2025년 기준 입국자가 9만5596명으로 급증했다. 같은 해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온 노동자는 8만617명에 그쳤다.

고용노동부가 송출국과 협약을 맺고 직접 대상자 선발과 송출 과정을 관리하는 고용허가제와 달리 법무부가 운용하는 두 제도는 법무부가 비자만 발급하고 빠지는 구조여서 이주노동자 모집과 송출, 체류 자격 유지 등의 중간 과정에 브로커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 브로커가 이 구조적 빈틈 사이에서 속박, 정서적 통제와 고립, 사기, 강제노동, 협박, 폭행, 임금이나 수수료 갈취 등으로 이주노동자를 모집·운송·은닉하는 인신매매가 판치게 된 까닭이다. 1990년대 법무부 지침으로 도입된 이후 2007년 폐지될 때까지 줄곧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비판에 시달렸던 산업연수생 제도가 슬그머니 부활했다고 볼 수 있다.

산업 현장뿐만이 아니다. 서울시가 시행한 필리핀 가사관리사 사업은 ‘가사·돌봄 분리’ 원칙을 허물고 ‘바닥 매트 청소’ ‘냉장고 청소' ‘바깥 유리 등 높고 위험한 곳 청소’ 등 온갖 집안일을 떠넘기면서도 겨우 월 118만원의 임금(실수령액)만 주다 노동착취라는 비판을 받고 1년6개월 만에 폐지됐다. 한겨레21과 만난 필리핀 아이돌보미 제트(Z) 역시 집 안의 가사노동을 도맡아 하며 하루 평균 12시간을 일했다고 털어놨다.(1600호 포커스) 이런 행태 역시 인신매매나 다름없다.

이 모든 일이 2026년 한국의 초상이다. 불법이민자를 쫓아내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손가락질할 때가 아닌 것이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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