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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유가족과 음모론적 국토부

“한 가지는 분명해졌습니다. 전원 사망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등록 2026-01-15 23:47 수정 2026-01-20 17:37
12·29 무안공항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2026년 1월15일 국회에서 열린 임시국회 1차 본회의에서 항공·철도 사고조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가결되자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

12·29 무안공항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2026년 1월15일 국회에서 열린 임시국회 1차 본회의에서 항공·철도 사고조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가결되자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


참사의 순간이 담긴 영상은 각인처럼 머리에 남는다. 2014년 4월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 모로 누운 채 가라앉고 있는 세월호에서 창문을 두드리던 학생들의 모습은 한국인 모두에게 그럴 것이다. 나는 영상을 보면서 “해경은 왜 학생들을 구하지 않나” 말하며 절규했다. 어느덧 12년이 된 지금까지도 그 장면은 죄책감이라는 이름으로 선명하다.

2024년 12월29일 전남 무안공항 활주로에 동체착륙으로 내려앉던 제주항공 여객기가 방위각제공시설 콘크리트 둔덕에 부딪쳐 폭발하는 모습도 많은 이에게 지워지지 않는 장면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영상을 보면서 “활주로 끝에 왜 저렇게 단단한 장벽이 있나” 말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어느덧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장면은 고통이라는 이름으로 선명하다.

단단한 장벽에 대한 의문은 뒤늦게 풀렸다. 그 콘크리트 둔덕이 없었다면 여객기에 타고 있던 179명이 숨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한국전산구조공학회의 용역 보고서가 최근 공개됐다. 기체, 활주로, 지반, 둔덕, 각종 구조물을 가상 모델로 구현해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사고 상황을 정밀 분석한 결과다. 앞서 참사가 발생한 직후 항공 분야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리어마운트가 “랜딩기어와 플랩이 작동하지 않았음에도 (여객기는) 최선의 수준으로 동체착륙이 이뤄졌다”며 “대규모 사망자가 나온 원인은 매우 단단한 장애물과 충돌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내용과도 일치한다.

그런데도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는 2025년 8월 작성 완료된 보고서를 5개월 동안 공개하지 않았다. 게다가 보고서를 뜯어보면, 국토부가 이 용역 조사를 의뢰한 까닭이 콘크리트 둔덕이 지닌 문제 규명에만 있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오히려 2007년 무안공항을 완공했을 때와 2023년 개량공사를 했을 때 왜 규정에도 어긋난 콘크리트 둔덕을 그냥 뒀느냐는 책임 추궁을 피하기 위해 명분을 만들어달라는 요구에 가까워 보인다. 이런 요구를 해놓고도 사조위는 2025년 7월 엔진 조사 결과를 유가족들에게 밝히며 조종사의 과실을 강조했다. 유가족은 물론이거니와 제주항공 조종사 동료들이 국토부에 분노를 느끼는 건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이번호 특집)

유가족들은 2026년 1월8일 낸 입장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유가족들은 지난 1년 동안 수없이 ‘만약에’를 되뇌었습니다. 비행기 이륙이 지연되지 않았다면, 조류와 조우하지 않았다면, 다른 공항이나 다른 항공사였다면, 연말 과로가 누적된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만약 그 둔덕이 없었다면. 우리는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 가지는 분명해졌습니다. 적어도 전원 사망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회학자 전상진은 ‘음모론의 시대’에서 음모론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불행과 고통의 원인을 찾아내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그런데 2026년 1월 한국 사회를 보면, 이해하기 힘든 불행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존재인 무안공항 참사 유가족들은 과학적 조사와 증거에 기반해 사실관계를 파악해가고 있다. 반면 국토부는 사실관계를 비틀어 진실을 가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전도된 음모론이다. 유가족이 주체가 된 조사가 지금 다시 시작돼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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