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부부 공천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54)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창원지법 영장전담부(정지은 부장판사)는 2024년 11월14일 창원지검 전담수사팀(팀장 이지형 차장검사)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청구한 구속영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진행했다. 이로써 ‘김건희-명태균 게이트’는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김건희-명태균 게이트’는 여러 면에서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떠올리게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복잡하게 전개됐지만, 핵심 내용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무런 권한이 없는 비선실세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씨와 함께 주요 국정 상황을 논의해 결정하고 이 과정에서 최씨가 경제적 이득을 취한 범죄다. 그 출발점은 대통령 지시로 만들어진 케이(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의 운영과 인사 그리고 모금에 대한 최씨의 개입이었다.
‘김건희-명태균 게이트’ 역시 매일 새로운 녹취가 공개되는 등 복잡한 양상을 보이지만 결국 핵심적인 내용은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아무런 권한이 없는 민간인 명태균씨와 함께 국민의힘 공천과 신규 창원국가산업단지 선정이나 대통령실 이전 등 국정 상황을 논의하고 결정했고, 이 과정에서 명씨가 경제적 이익을 도모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다른 점을 꼽자면,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관계는 최씨의 아버지인 고 최태민 목사 때부터 오랜 기간 이어온 공동체적 동반자 관계였다면, 윤 대통령 부부와 명씨의 관계는 대선 기간 시행된 ‘미공개 여론조사’를 매개로 단시간에 맺어진 정치적 거래 관계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최종적으로 적용된 혐의는 21가지에 달하지만, 최초 수사의 갈래를 따져보면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K스포츠·미르재단에 자금을 출연하도록 최씨 등이 재벌들을 압박했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한 관계 기관들이 근거 없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특정인들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배제하는 행위를 벌였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씨가 딸 정유라씨를 위해 저질렀던 입시 부정과 뇌물 상납 문제였다.
‘김건희-명태균 게이트’ 수사도 크게 세 가지 방향이 필요해 보인다. 우선, 이번 구속 사유가 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다. 한겨레21이 입수한 창원지검의 명씨 구속영장 청구서에 담긴 명씨의 범죄 사실을 보면, 명씨는 경남 창원 의창구 국회의원이었던 김영선 전 의원과 지방선거에 출마하고자 했던 배아무개씨, 이아무개씨로부터 ‘공천을 매개로 거액의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이것만으로도 명씨의 범죄가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정면으로 훼손한 사안”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는 명씨를 향한 수사에서 ‘경유지’일 뿐 ‘종착역’이 될 수 없다. 구속영장 청구서에서 검찰은 명씨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배경에 ‘국민의힘 당대표(이준석), 대통령 후보 부부와의 친밀한 관계’가 있다고 적시했다. 그리고 명씨를 불구속 수사할 경우 ‘남은 증거를 추가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검찰 수사는 윤 대통령 부부와 명씨의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 이유와 이 이유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2016년 9월20일 한겨레의 단독 보도(‘K스포츠 이사장은 최순실 단골 마사지 센터장’)에서 출발한다. 이후 모든 언론이 관련 보도 전쟁에 참전하며 각종 ‘의혹의 산’을 쌓는다. 검찰은 첫 보도 2주일 뒤인 10월5일에야 의혹과 관련한 수사에 들어갔다. 애초에는 서울중앙지검 형사부가 해당 사건을 맡았다. 하지만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단순 고발 사건을 맡는 형사부가 아니라 특수부가 수사를 맡아야 한다는 비판 여론이 거셌다. 수사 초기 검찰은 이런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 검찰이 달랑 2명의 수사팀으로 사건을 꾸려가는 동안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을 해체(9월30일)하고 관련 문서를 대량 파기했다. 최씨는 독일로 출국했고, 독일과 한국에서 각각 운영 중이던 회사를 폐업했다.
지지부진하던 수사에 변곡점이 발생한 건 같은 해 10월24일이었다. 제이티비시(JTBC)가 최씨의 사무실에서 발견한 태블릿피시(PC)에 담긴 내용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한 것을 비롯해 청와대의 극비 외교문서와 인사에까지 관여했다는 점이 여기서 드러났다. 검찰은 그제야 수사팀을 7명으로 확대하고 수사팀에 이름을 붙였다. 한겨레 보도 이후 한 달 넘게 지난 시점에서야 최씨의 자택 등에 대한 첫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김건희-명태균 게이트’는 더 심란한 초기 과정을 밟고 있다. 경남선거관리위원회는 2023년 12월 김영선 전 의원과 명씨의 수상한 돈거래를 포착해 이를 수사 의뢰했다. 창원지검은 이 사건을 소속 검사가 아예 없는 행정부서인 수사과에 배당했다. 수사과는 별다른 수사 의지 없이 9개월을 허비하다가 2024년 9월5일 뉴스토마토 보도 이후에야 사건을 형사 4부에 정식 배당했다. 정식 배당 이후에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던 검찰은 언론 보도가 쏟아지기 시작한 9월30일이 돼서야 뒤늦게 증거를 확보하겠다며 명씨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그사이 이른바 ‘황금폰’이라 불리는, 윤 대통령 부부와 명씨가 소통하는 데 사용됐던 휴대전화가 사라졌다. 그러는 사이 공직선거법은 공소시효가 지났고, 10월10일 내사 종결 처리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검찰이 수사 검사 15명 규모의 특별수사본부를 꾸린 건 2016년 10월27일이었다. 한겨레의 첫 보도 이후 한 달여, JTBC 보도로 인해 태블릿피시라는 변곡점이 생긴 직후였다. 당시 검찰은 특수본을 꾸리고 나흘(10월31일) 만에 최씨를 전격 체포하고, 11월2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건희-명태균 게이트’ 수사도 비슷한 흐름이지만 강도와 속도는 훨씬 무르고 더디다. 명태균 수사팀이 추가 검사 파견으로 특별수사팀 규모로 재편된 건 2024년 11월4일이다. 뉴스토마토 첫 보도 이후 두 달여가 지난 시점이다. 물론 아직도 정식 이름이 붙은 특별수사팀이 아니다. 그나마 수사 검사가 확충된 지 7일 만에 명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긴 했다.
2016년 검찰이 최씨 구속 당시 영장에 적시했던 혐의는 이제 와 생각해보면 꽤 적극적인 법리 적용이었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공범)와 사기미수 혐의였다. 최씨가 대기업을 압박해 사실상 지배했던 K스포츠·미르재단에 774억원을 출연하도록 한 것이 직권남용의 핵심이었고, 사기는 본인이 직접 운영한 회사가 7억원 상당의 연구 용역을 수주했다가 실패한 혐의였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는 공직자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혐의다. 당시 검찰은 최씨가 공직자는 아니지만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공모한 공범 관계라고 적시했다. 최씨가 안 전 수석을 시켜 범죄를 도모했고, 이 공범 관계로 인해 공직자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법리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게 당시 검찰의 판단이었다. 모두가 아는 ‘안종범 수첩’을 통해 그 관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포함된다는 것은 최씨가 구속된 이후에야 밝혀진 사실이었다.
2024년 검찰이 명씨의 구속영장에 적시한 혐의는 앞서 설명했듯 아직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뿐이다. 이는 지난 두 달여간 언론을 통해 쏟아진 의혹들과 적절한 호응을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명씨가 한 것으로 확인한 행위들조차도 담아내지 못한다. 우선 더불어민주당은 2024년 10월31일 윤석열 대통령이 명씨와 통화하면서 김영선 전 의원의 국민의힘 공천을 거론하는 육성을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다. 검찰은 명씨를 구속하며 이 행위의 위법성 여부에 대해 적시도, 판단도 하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건희-명태균 게이트’ 핵심 제보자인 강혜경씨는 ‘명씨가 윤 대통령을 위해 81차례의 여론조사를 해준 대가로 김영선 의원의 2022년 6월 보궐선거 공천을 받아 왔다’고 주장하며 관련 통화 녹음 파일들을 증거로 세상에 제시했다. 이는 김 전 의원도 “명태균의 덕을 봤다”며 인정한 대목이다. 하지만 정작 검찰이 청구한 명씨의 구속영장에는 이런 내용도 전혀 담겨 있지 않다. 어떻게 명씨가 김 전 의원의 공천에 관여할 수 있었는지가 빠진 채, 명씨가 김 전 의원의 세비를 ‘7600여만원 기부받았다’는 범죄 사실만 적혀 있는 것이다.
명씨의 구속 사유에 ‘공짜 여론조사의 대가’로 이뤄진 공천이 빠져 있다는 건 검찰이 이 사건의 공모 혹은 공범 관계를 아직 밝히지 못했거나 밝힐 생각이 없음을 보여준다. 앞서 공직자가 아닌 최씨를 안 전 수석과 공모 관계인 것으로 판단해 구속했던 2016년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에 견줘 2024년의 ‘김건희-명태균 게이트’ 수사가 훨씬 미약해 보이는 이유다. 다만 명씨가 누구와 공모 관계였는지는 검찰도 이미 알거나 혹은 알아내기 위한 과정임을 밝혀두었다. 명씨의 구속영장에서 검찰은 범죄의 중대성을 지적하며 ‘대통령 후보 부부 등 정치인들과의 친분관계’를 첫 줄에 적어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검찰은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하고, 문고리 3인방인 이재만 당시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을 차례로 구속했다. 특검법 발의에 앞서서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조사를 시도하려 했다. 재벌 회장들을 줄소환하고, 우병우 전 수석을 비롯한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도 죄다 불러 조사했다. 검찰의 존재 이유를 드러내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펼쳤음에도 특검을 막지 못했다. 탄핵에 대한 열기 때문이었다. 그 시간 동안 주말마다 서울시청 앞 광장을 비롯한 전국에서 촛불이 타올랐는데, 그 숫자가 주마다 불더니 제5차 촛불 집회였던 2016년 11월26일에는 주최 쪽 추산 전국 200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김건희-명태균 게이트’는 증폭된 의혹에 견줘 검찰이 아직 풀이를 시작하지도 않은 난제가 수두룩하다. 한겨레21 보도 이후 명씨가 ‘시작부터 끝까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신규 창원국가산단은 명씨가 ‘김건희 여사에게 따로 보고’한 여사의 관심 사업으로 추진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다. 특히 명씨가 신규 창원국가산단과 관련한 대외비 문건을 보고받고 주변에 땅을 사라고 권유했던 2022년 12월 무렵,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 관계자 2명이 창원에 온 뒤 명씨를 직접 만나 ‘대통령과의 친분은 말하되, 이권에는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다는 증언(20쪽 기사 참조)도 나왔다.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1조4천억원 규모의 국책사업 추진에 민간인 명씨와 아무런 권한이 없는 김 여사의 관계가 작동됐다면 이는 심각한 국정농단이 된다.
또한 표본 및 수치가 조작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사고 있는 국민의힘 대선 경선 여론조사를 비롯한 각종 여론조사는 일관되게 윤 대통령을 위해 결과값이 ‘마사지’ 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짙다. 게다가 명씨는 이미 검찰에 김 여사로부터 돈봉투를 받았다는 사실을 진술했고, 검찰이 압수한 증거 중에 이 돈이 담겼던 코바나컨텐츠 봉투가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 진술은 강혜경씨도 검찰에서 “명씨가 김 여사로부터 500만원을 받았다. 명씨가 봉투를 보관하고 있을 것”이라고 진술했기 때문에 사실관계가 뚜렷하다.
강혜경씨는 앞선 2024년 11월1일 한겨레21과 한 단독 인터뷰에서도 “윤 대통령 당선 이후 (명씨가 김 여사에게) 금일봉을 받아 왔는데 무슨 색깔이더라고 막 저한테 얘기했다”며 “500만원 받은 거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열 전 미래한국연구소장 역시 11월12일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명씨가 대선이 끝나고 김영선 전 의원이 당선되기 전에 금일봉을 받았다고 (전해 들었다). 얼마였냐고 하니까 (돈봉투를 본 사람이) 500만원이라고 하더라”라며 “돈봉투를 본 사람으로부터 코바나컨텐츠 봉투에 담겨 있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명씨는 이 돈을 “교통비 정도를 받은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 돈이 윤 대통령을 위해 불법적인 여론조사를 진행한 명씨에게 주는 윤 대통령 부부의 격려금이라면 이는 뇌물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자 명씨는 2024년 11월13일 동아일보와 만나 ‘(김 여사가) 2021년 9월, 딸 옷이나 사 입히라’며 준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명씨가 김 여사에게 돈을 받은 시점이 강씨나 김 전 소장이 말하는 2022년 3월 대선 직후가 아니라 명씨 말대로 2021년 9월이라고 해도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 시기는 명씨가 윤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 ‘대선 자체 여론조사’를 하던 때다. 명씨는 그해 9월 무려 네 차례나 자체 조사를 했다.
아울러 2022년 6월 지방선거에서 오세훈·김진태·박완수 등 주요 지방자치단체장 공천 문제에 명씨의 영향력이 행사된 것으로 보이는 각종 통화 녹음 파일을 둘러싼 의혹도 규명할 필요가 있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이 또한 보수 정당의 존립 정당성 자체를 뒤흔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촛불의 헌법학-헌법학자가 쓴 대통령 탄핵 백서’를 쓴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준일 교수는 “명씨가 (윤석열 대통령을 위해) 시행한 여론조사 비용 자체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고, 이 대가로 공천을 받고 (김영선 전 의원으로부터) 세비의 절반을 받은 것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보인다.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를 통해) 김 전 의원 공천에 개입하고 이게 대가라는 것이 인정되면 윤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위법 사항은 성립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신규 창원산단의 경우 명씨가 창원시 공무원과 공모한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것 같은데, 이 경우 직접 권한이 없는 김 여사는 공무상 비밀누설죄의 공범이나 교사범이 될 수 있다”며 “다만 김 여사와 명씨의 공모에 박근혜-최순실의 경제공동체와 같은 이해관계 연결고리가 있는지는 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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