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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폭력은 틀렸다” 크게 말하자

등록 2026-01-08 22:03 수정 2026-01-13 17:12
왼쪽부터 일본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하라 다미키, 독일 언론인 제바스티안 하프너, 그리고 아돌프 히틀러. 출처 국립히로시마 원폭사몰자 추도평화기념관, 언론 자유의 집, AFP 연합뉴스.

왼쪽부터 일본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하라 다미키, 독일 언론인 제바스티안 하프너, 그리고 아돌프 히틀러. 출처 국립히로시마 원폭사몰자 추도평화기념관, 언론 자유의 집, AFP 연합뉴스.


하라 다미키는 1945년 8월6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피폭됐다. 미국이 핵폭탄을 투하한 그날이다. 그는 소설 ‘여름 꽃’에서 이날을 되짚으며 “모든 인간적인 것은 말살”되었다고 썼다. 서경식에 따르면 하라는 이후 “스스로를 질책하고 증인으로서의 ‘괴로움’을 떠안고 살았다. 그러나 그를 더욱 괴롭게 한 것은 사람들의 둔감함과 무관심이었다.”1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같은 해 11월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한반도에서 또다시 핵폭탄 사용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끔찍하고도 어리석은 행위를 반복하려는 인간에게 절망한 하라는 1951년 3월 철도 선로에 몸을 눕혀 목숨을 끊었다. 그는 이런 시를 남겼다.

‘가엾고 어리석은 우리는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어/ 파멸의 한 발짝 앞에서도 멈춰 설 줄을 모릅니다/ 내일 다시 불은 하늘에서 쏟아져/ 내일 다시 사람은 불타 죽겠지요’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제1차 세계대전부터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하기 직전까지 독일 사회의 전후 혼란과 혹독한 인플레이션, 나치의 부상 등을 기록한 자전적 회고록에서 이렇게 돌아봤다.2

“가장 단순하지만, 깊이 살펴보면 어디에나 나타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두려움이었다. 얻어맞지 않기 위해서는 같이 때려야 했다.”

“다음과 같은 사고방식이 작용한 경우도 있었다. 즉 ‘나치의 적들이 예상한 것은 하나도 들어맞지 않았다. 그들은 나치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제 나치가 이겼다. 나치의 적들은 틀렸다. 그러므로 나치가 옳다.’”

“지금껏 내내 믿어온 성 마르크스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성 히틀러가 더 힘이 센 것 같다. 그러니 제단 위 성 마르크스의 그림을 망가뜨리고 성 히틀러의 그림을 달자. 그리고 ‘모든 게 자본주의 탓이다’ 대신 ‘유대인 탓이다’ 하고 기도하자. 어쩌면 이것이 우리를 구원해주리라.”

미국 델타포스 특공대가 2026년 1월3일 새벽 카라카스에 있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의 숙소를 덮쳐 부부를 ‘납치-이송-구금’했다는 뉴스를 보았을 때 나는 하라와 하프너의 절망을 떠올렸다. 세계가 또 끔찍하고도 어리석은 행위를 반복하려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는 인간을 죽이기 위한 “세계 최고의 기술 테스트베드(실험장)”가 되고 있다.(이번호 출판) 2023년 10월 이후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군의 집단살해(제노사이드)는 나치가 그들에게 했던 집단살해의 역설적 재현이다. 2026년을 열면서 일어난 미국의 베네수엘라 주권 침탈 사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한 국제질서가 무너지고 ‘불량제국’ 전성시대를 여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힘과 무력, 권력”이 그 어떤 법과 윤리도 파괴할 수 있는 시대 말이다.(이번호 표지이야기)

러시아와 이스라엘은 더욱 거센 폭력을 쓸 것이고, 대만을 노리는 중국이 어떤 수단을 쓸지 모르며, 미국 역시 라틴아메리카에 이어 그린란드까지 복속하려 할지 모른다. 이 모든 국가 폭력의 피해는 또다시 힘없는 나라와 힘없는 시민, 힘없는 소수자에게 집중될 것이다. 세계시민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폭력은 틀렸다”라고 크게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하자.

 

1. ‘나의 일본미술 순례2+이 한 장의 그림엽서’,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연립서가 펴냄, 2025

2. ‘어느 독일인 이야기: 회상 1914~1933’,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이유림 옮김, 돌베개 펴냄, 2014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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