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축제가 국회 앞에 펼쳐졌다. 축제에 참여한 이들은 엄청난 인파와 교통체증으로 짜증이 날 만도 한데 표정이 모두 밝았다. 각자 가슴속에는 자신만의 분노를 품고 왔지만 얼굴에는 희망의 빛이 가득했다.
12·3 내란 우두머리인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2024년 12월14일 국회에서 가결됐다. 이날 오후 대통령 윤석열 탄핵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국회 앞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국회가 위치한 여의도는 섬이다.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정해져 있다. 북쪽으로는 마포대교·서강대교, 남쪽으로는 여의2교·서울교, 동남쪽으로는 여의교를 통해 들어올 수 있다. 오후에 인파가 몰리자 국회의사당역과 여의도역에서는 지하철이 정차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한겨울 차가운 북풍을 뚫고 다리를 건너 국회 앞까지 걸어왔다. 끊임없이 몰려오는 인파를 보면서 집회 참가자의 규모가 짐작되지 않았다. 드론을 띄워 국회 주변을 360도로 촬영했다. 사진으로 확인하니 집회에 참여한 시민(주최 쪽 추산 200여만 명)은 국회대로와 의사당대로, 여의도공원로, 여의도공원, 여의도역 앞까지 가득 차 있었다. 엄청난 인파다.
대규모 집회를 대비해 전날부터 통신사들이 중계기를 추가로 많이 설치했지만, 통신이 잘 연결되지 않았다. 통신이 연결돼 있던 누군가가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고 외쳤다. 시민들은 벌떡 일어나 각자 응원용 봉과 손팻말을 들고 케이팝(K-POP)에 맞춰 탄핵소추안 가결을 축하하기 시작했다. 축제는 밤까지 이어졌다. 집회 참가자 누구나 하나가 되는 자리였다.
거대한 축제가 끝났다. 국회 앞 거리는 다시 조용해졌다. 200여만 명이 모인 거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깨끗하다. 집회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주워 청소했다. 이 정도 인파에 별다른 사건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국회 앞 상가에 선결제를 하고 집회 참가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은 ‘비상계엄’으로 국민에게 공포·불안·당혹 등 불편한 감정과 분노를 안겨줬지만, 시민들은 목숨을 걸고 국회 앞에서 계엄군을 막아내고 추운 아스팔트 바닥에 나와 공포와 분노를 축제로 승화했다. 축제의 시작과 마지막 곡으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와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나왔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노래가 묘하게 어울렸다.
사진·글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박선원 “윤석열, 탄핵가결 전 국힘에 ‘2주 버텨달라’ 요청”
‘한덕수 탄핵’ 언급한 민주…“내란 상설특검 후보 추천 미루지 말라”
헌재 주심이 보수라 망했다? 윤석열 파면에 영향 더 미치는 것
[단독] ‘명태균 폰’ 저장 번호만 9만개…김건희·홍준표와 소통도 확인
커피 애호가 몸엔 이 박테리아 8배 많아…카페인 때문은 아니다
정보사 대령 “선관위 직원 묶을 케이블타이·두건 논의, 맞다”
공조본, 윤석열 25일 출석 불응 시 체포영장 검토
현실의 응시자, 정아은 작가 별세…향년 49
이재명 “한덕수,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한다면 그것도 내란”
“닥쳐라” 김용원이 또…기자 퇴장시킨 뒤 인권위원에 막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