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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 배움 서클 ‘노닐다’의 ‘나의 생전 장례 파티’… 초대장 쓰며 ‘죽음 예행연습’
등록 2024-11-29 20:05 수정 2024-12-02 10:56
노년 배움 서클 ‘노닐다’가 연 `죽음, 두번째 인생을 삽니다'에서 참석자들이 ‘모두의 꽃밭’을 만들어 꽃을 꽂고 있다.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끈 위로 화려하게 피어났던 ‘화양연화’를 하나씩 놓고 있다. 4주차 수업날인 2024년 11월26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

노년 배움 서클 ‘노닐다’가 연 `죽음, 두번째 인생을 삽니다'에서 참석자들이 ‘모두의 꽃밭’을 만들어 꽃을 꽂고 있다.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끈 위로 화려하게 피어났던 ‘화양연화’를 하나씩 놓고 있다. 4주차 수업날인 2024년 11월26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


“가을에 태어나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적응하며 살아온 날들 속에서 함께한 이웃들. 이 가을에 한자리에서 모두 만나고 싶어 초대하오니 오셔서 살아생전 덕담 나누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애자(82)씨가 쓴 ‘나의 생전 장례 파티’ 초대장이다. 추위를 부르는 겨울비가 이내 눈으로 바뀌고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속절없이 떨어진 붉고 노란 잎들은 눈 속에 갇혔다. 인생에서 노년의 삶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겨울일까, 새롭게 시작하는 봄일까. 아카데미느티나무 노년 배움 서클 ‘노닐다’는 4주간 ‘죽음, 두 번째 인생을 삽니다’를 주제로 서울 종로구 누하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특별한 배움의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 주차인 2024년 11월26일에는 참여자들이 ‘나의 생전 장례 파티’를 열어 엄숙하고 고요했지만 즐겁게 음식을 나눠 먹고 함께 손잡고 춤추며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3주차 수업날인 11월19일. 나의 생전 장례 파티 초대장을 쓰며 생각에 잠겼던 정헌원(75)씨는 “돌아가시기 전 병원에서 어머니와 껴안고 얼굴을 비비며 느꼈던 그 따뜻함이 지워지질 않고 자꾸 생각난다”며 “평상시에 사람들 많이 만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며 살아야겠다”고 아쉬움이 담긴 소감을 밝혔다. 이번 프로그램은 단순히 장례식을 준비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10여 명의 참가자는 아름다운 죽음, 인간다운 죽음을 상상하며 1, 2주차에 ‘각자도사 사회’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읽은 뒤 이야기를 나눴다. 3주차에는 부고 초대장 만들기, 묘비명 쓰기 등 나의 장례식을 준비했다. 2018년 ‘생전 장례식’에서 사회를 본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프로그램을 이끈 고현종 노년유니온 위원장은 “살아 있을 때 장례식 등을 기획하고 예행연습을 하면 좋을 것 같아”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했다며 “많은 사람을 환대하고 그분들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귀중한 시간이었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와 응원을 나눈 것이 가장 큰 성과였다”고 말했다.

‘노닐다’의 생전 장례식은 죽음을 준비하는 자리가 아닌 삶을 더 소중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작은 축제였다. “즐거운 인생 소풍이었다. 이제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가리라. 모두 행복하길! 사랑합니다!”라고 묘비명을 쓴 주은경씨는 “친구들하고 여행 갔을 때의 편안함을 느꼈고, 훨씬 홀가분해진 느낌”이라는 참여 소감을 밝혔다.

핵가족화와 전문화된 장례서비스의 발달로 장례식이 점점 형식화되고 있다. ‘나의 죽음을 가장 슬퍼할 사람은?’ ‘나와 평생을 산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를 아는 사람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따위를 적어보고, 묘비명은 어떻게 쓸지 초청할 사람은 누굴지 등 ‘나만의 장례식’을 이 기나긴 겨울밤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떨까.

사진·글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이 가사와 곡을 짓고 부른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에 맞춰 참석자들이 동그랗게 서 손을 맞잡고 있다. 11월26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이 가사와 곡을 짓고 부른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에 맞춰 참석자들이 동그랗게 서 손을 맞잡고 있다. 11월26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


‘경계 넘기-배웅과 마중’에서 이승을 넘어 저승으로 온 한 참석자가 기다리던 부모를 만나자 반갑게 껴안고 있다.

‘경계 넘기-배웅과 마중’에서 이승을 넘어 저승으로 온 한 참석자가 기다리던 부모를 만나자 반갑게 껴안고 있다.


참석자들이 ‘나의 장례 파티 초대장’을 살펴보고 있다. 앞쪽으로 자신의 묘비명이 보인다. 3주차 수업날인 11월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

참석자들이 ‘나의 장례 파티 초대장’을 살펴보고 있다. 앞쪽으로 자신의 묘비명이 보인다. 3주차 수업날인 11월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


참석자들이 ‘나의 장례 파티 초대장’을 쓰는 동안 정헌원(오른쪽 둘째)씨가 생각에 잠겨 있다.

참석자들이 ‘나의 장례 파티 초대장’을 쓰는 동안 정헌원(오른쪽 둘째)씨가 생각에 잠겨 있다.


한 참석자가 ‘나의 장례 파티 초대장’을 쓰고 있다.

한 참석자가 ‘나의 장례 파티 초대장’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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