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올 것 같’이 옅은 먹구름 틈새로 파란 하늘이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냈다.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른 태양’은 구름 사이로 빛을 흩었고, 가을 늦더위는 빗방울에 사그라들었다.
한강 작가의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하는 문학기행이 2024년 11월16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와 5·18민주광장 등에서 열렸다. 전남도립도서관(박용학 관장)은 광주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소설 속 주요 장소를 직접 탐방하며, 작품과 역사적 현실을 연결 짓는 뜻깊은 시간을 마련했다.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었거나 관심 있는 시민 22명이 답사길에 올랐다.
문학기행의 첫 번째 여정은 국립5·18민주묘지였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참가자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탑 앞에 섰다. 답사자들은 영령을 위해 분향·묵념을 한 뒤 희생자들의 위패와 영정이 모셔진 ‘유영봉안소’를 둘러봤다.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인 문재학(사망 당시 16살) 열사의 묘소도 참배했다. 전남 무안에서 엄마, 동생과 함께 온 무안행복초등학교 5학년 문도훈군은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잔혹한 역사가 있었다니 슬펐다”며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5·18 민주화운동의 핵심 현장인 광주 금남로에는 옛 전남도청과 상무관 복원 공사가 한창이다. 현장 가림막에 걸린 사진 등을 보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 참석자들은 5·18민주광장과 계엄군의 헬기 사격 총탄 흔적이 있는 전일빌딩245를 찾았다. 연말까지 운영되는 건물 1층 북카페 ‘소년이 온다’에는 한강 작가의 작품 30여 권이 비치돼 있다. 잠시 짬을 낸 참석자들은 책의 한 구절을 필사하거나 영상을 시청했다. 전남 목포에서 온 이은주(67)씨는 “오늘 이곳에 와보니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느꼈던 슬픔이 더욱 실감 나고 가슴이 찡하다”고 밝혔다.
문학기행의 마지막 장소는 아직 조명이 덜 된 광주 서구 옛 상무대. 신군부에 저항해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끌려와 구금되고 무참한 폭력에 굴종을 강요받았던 상무대의 헌병대 영창과 구속자들이 군사재판을 받았던 법정이 있던 곳이다. 아픈 역사를 복원하고 재현해 지금은 5·18자유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이날 길잡이로 나선 박진우 5·18기념재단 사무처장은 행사를 마치며 “2024년 ‘지금-여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5·18의 의미를 어떻게 현재화할 수 있는지 되짚어봤으면 한다. 이번 문학기행이 오월, 광주로 들어가는 관문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머리로만 인식했던 5·18을 가슴으로 아파했고, 뭉클한 울림의 시간이었다. 한강 작가를 모시고 이런 프로그램을 다시 한번 했으면 좋겠다”고 손뼉을 치며 긴 하루의 여정을 마쳤다.
광주=사진·글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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