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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일주일만 허비했다

“끝까지 싸우겠다”며 한동훈 뒤통수 친 윤석열…정당성 없는 ‘한씨 정권' 꿈꾸다 정치적 신뢰 상실
등록 2024-12-14 16:43 수정 2024-12-15 16:10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024년 12월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024년 12월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4년 12월12일, 칩거를 끝내고 모처럼 대통령실에 나타난 대통령 윤석열은 ‘끝까지 싸우겠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내놨다. 전반적으로 억지와 거짓으로 점철된 담화였다. 야당이 국정을 마비시켰다는 근거를 들며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재차 강변했는데, 요건에 맞지 않는 계엄을 선포했다는 자백이다. 계엄 선포는 통치행위라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도 했는데, 이는 전두환 사형 선고로 반론 가능하다. 국민이 잘 모를 거라며 거론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국가정보원 보안점검 사례는 2023년 10월 국정감사에서도 다뤄졌다. 당시 밝혀진 사실은 선관위가 일부러 보안 요건을 약화시킨 상황에서 점검에 응했는데도, 마치 해킹이 실제 가능한 것처럼 알려졌다는 거다.

‘극우 유튜버’같던 12·12 윤석열 담화

이런 엉터리 담화의 목적은 뭘까? 법적 시각에서 보면,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게 아니라 나름대로 선의를 갖고 벌인 일임을 공개적으로 호소한 것으로 보인다. 내란수괴 혐의에 대한 방어권 행사에 대통령의 권한을 동원했다. 정치적으로는 극우 유튜브 등에 몰입한 상태인 일부 보수층과 정치인들에게 구원 요청을 보낸 거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나라를 사분오열시키고 혼란으로 몰아서라도 직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이에 앞서 “대통령이 조기 퇴진에 응할 생각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며 탄핵소추안 표결 참여와 자유투표 방침의 필요성을 언급했던 한동훈 대표는, 담화 직후 내란을 자백하는 내용이었다며 당 윤리위원회를 소집해 대통령 출당을 논의하겠다고 했다. 친윤석열계 의원들은 대표 사퇴를 요구하며 새 원내대표로 ‘윤핵관’ 권성동 의원을 당선시켰다. 탄핵소추안 표결을 무산시킨 지 5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12월8일 한동훈 대표가 한덕수 국무총리와 함께 당명과 당색을 지운 채 새하얀 배경 앞에 서서 공동담화문을 발표할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이 자리에서 한동훈 대표는 “대통령의 퇴진 전까지 국무총리가 당과 긴밀히 협의해 민생과 국정을 차질 없이 챙길 것” “대통령은 외교를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 권한 행사의 범위와 퇴진 여부를 당이 결정할 수 있다는 전제가 붙은 어법인데, 고려 중기 ‘최씨 정권’에 빗대 ‘한씨 정권’이라 부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얘기였다.

이 구상의 ‘전제’는 12월7일 대통령의 ‘2분 담화’에 근거를 두고 있다. “임기 문제를 포함하여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 향후 국정 운영은 우리 당과 정부가 함께 책임지고 해나가겠다”는 대목이 핵심인데, ‘탄핵만 막아준다면, 당이 결정하는 임기 단축 및 퇴진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메시지로 해석됐다. ‘대통령 직무집행 정지 필요성’을 언급하던 한동훈 대표는 담화 직후 총리와의 협의 구조를 통해 사실상 통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탄핵 시사’ 카드로 ‘한씨 정권’을 받아낸 모양새다. 이 ‘거래’는 같은 날 오후 105명의 국민의힘 소속 의원이 탄핵소추안 표결을 무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탄핵 없는 퇴진’ 초법적 구상의 한계

한동훈 대표는 이걸 ‘질서 있는 퇴진’이라고 했지만, 정확히는 ‘탄핵 없는 퇴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힘이 ‘탄핵 없는 퇴진’ 앞에 하나가 된 이유는 선거 유불리 문제다. 첫째, 탄핵은 보수 분열의 방아쇠가 된다. 왜 찬성 혹은 반대를 했느냐를 놓고 서로를 탓하기 시작하면 선거는 해보나 마나다. 둘째, 국민의힘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피선거권 박탈을 전제한 ‘이재명 없는 대선’을 기대해왔다. 그러나 조기 대선이 이재명 대표의 확정판결 이전에 치러지면 다 물거품이 된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한씨 정권’과 ‘투표 무산’은 나름 난국 돌파를 위한 ‘묘수’로 보였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새로운 부담이 이어졌다. 첫째, 한덕수-한동훈 콤비의 국정운영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다수 제기됐다. 군통수권을 포함해 모든 권한은 법적으로 여전히 대통령에게 있다. ‘한씨 정권’은 사실상 대통령의 직 유지를 정당화하는 눈속임 아닌가? 실제 대통령은 몇 가지 인사안을 재가함으로써 이러한 의심을 키웠다.

둘째, 탄핵소추안 표결을 무산시킨 것에 대한 유권자의 분노가 너무나도 컸다. 대통령이 군인들에게 무엇을 지시했는지, 뭘 계획했는지 등이 추가로 드러난 것도 비판 여론을 키웠다. 여당은 탄핵소추안 표결 무산으로 대통령과 자신을 분리하는 데 실패했다. 더군다나 야권은 탄핵소추안을 탄핵될 때까지 발의할 기세다. 계속 투표를 무산시킬 것인가?

12월9일 의원총회는 이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였지만 답을 내는 건 애초에 쉽지 않았다. 첫째, ‘한씨 정권’의 정당성은 오직 대통령의 퇴진 일정이 확정될 때야 그나마 내세울 수 있다. 탄핵 무산으로 일단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한 친윤계는 2026년 지방선거 때 대선을 함께 치르는 비상식적 방안을 주장했다. 친한동훈계는 최소 6개월 내 시점에 대통령의 하야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므로 간극이 컸다.

둘째, 탄핵소추안 처리에 대해선 표결 참여 목소리가 커지는 참이었다. 그러나 ‘당론을 바꾸려면 새로운 원내대표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쟁점이 흐려졌다. 당내 기반이 취약한 한동훈 지도부가 혹시라도 무너질 경우 원내대표가 당을 이끌게 될 터였기에 논의가 당권 경쟁의 맥락으로 번지면서 결론을 못 내린 거다.

그나마 대통령 퇴진 일정 논의를 위해 구성하기로 한 정국 안정화 태스크포스(TF)는 12월11일 ‘2월 퇴진 4월 대선 또는 3월 퇴진 5월 대선’이라는 시간표를 제출했다. 이날 의원총회에서 국회의원이 아닌 한동훈 대표는 특별히 발언 기회를 얻어 TF안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대통령이 저지른 일의 심각성이 크고 탄핵이 아니면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빠른 퇴진이 아니면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게 핵심 논리였다.

‘퇴진 거부’ 대통령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대통령이 이 안을 수용했다면 ‘한씨 정권’의 구상은 비로소 간신히 제 궤도를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앞서 봤듯 TF의 조기퇴진안을 거부했다. ‘한동훈의 탄핵 협박에 두 번 당할 수는 없다. 탄핵할 테면 해봐라’라는 기분이었던 건지, 아니면 ‘헌법재판소 가서 다투는 게 차라리 유리하다’는 계산이 선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분명한 사실은 대통령은 책임지기보다는 어떻게든 직을 유지하기를 우선하기로 했다는 거다.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대통령이 퇴진 의사가 없다면 ‘질서 있는 퇴진’도, ‘한씨 정권’도 작동할 수 없다. 남은 길은 탄핵뿐이고, 상식의 눈으로 보면 이는 처음부터 분명했다. 그러나 한동훈 대표가 이를 외면하고 대통령의 비상식에 당내 다수인 친윤계가 호응하는 바람에, 대한민국은 일주일을 허비했다. 이 책임을 어떻게 지려는 것일까? 첫걸음은 탄핵소추안 가결일 텐데, 그 이후에도 신뢰 회복은 쉬워 보이지 않는다. 아마, 오래 걸릴 듯하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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