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도시와 다름없이 아파트와 상가가 늘어선 거리가 이어진다. 아파트 단지가 끝나자 학산으로 오르는 임도가 나온다. 차 한 대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길이다. 입구에는 ‘학산숲속시집도서관 500m’ 표지판이 있다. 천천히 10여 분을 걸어가니 경사진 곳에 목조로 지은 작은 건물 하나가 나온다. 카페나 누군가의 별장 같기도 하다. 시집 전문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주변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아름드리 소나무 사이에 지어졌다.
나무 향이 가득한 이 작은도서관을 시집 3200여 권이 가득 채우고 있다. 넓은 창으로 바로 앞 맏내호수와 푸른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시를 읽을 수 있다. 도서관 내에는 문학자판기도 있다. 화면에 보이는 단어 중 하나를 고르자 안리타 시인의 ‘흔들린다’라는 시가 출력돼 나왔다. “어쩌면 지나쳐 갈 아주 작은 일들이 내 삶의 전부를 흔들었는지도 몰라, 아주 사소한 슬픔 하나가 확대된다”는 문구가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동네 산책을 하러 나왔다가 도서관 표지판을 보고 온 봉요한(36), 최지혜(36) 부부는 “보통 도서관 하면 콘크리트 건물이 생각나는데 나무로 도서관이 지어져서 생김새도 다르고 너무 좋다”며 “도서관이 숲에 있으니 여기에 오면 시를 꼭 읽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학산숲속시집도서관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서학예술마을도서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초등학교와 주택가에 자리잡은 이 도서관으로 인근 전주교대 부설초등학교 1학년 한 학생이 우산을 쓰고 들어온다. 학생은 익숙하게 그림책 코너에서 책을 가져와 읽기 시작한다. 서학예술마을도서관은 ‘예술’ 전문 도서관이다. 원래 도서관 건물은 오래전 의원으로 사용됐다. 이후 카페와 갤러리로 사용된 건물을 시에서 매입해 2022년 예술 전문 도서관으로 바꿨다. 지역 예술가들이 직접 도서관 조성에 참여했다.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담쟁이동과 예술책으로 가득한 팽나무동 등으로 구성했다.
한옥마을로 대표되는 전북 전주가 ‘작은도서관’들로 유명해지고 있다. 전주시는 2017년 ‘책의 도시 전주’를 선포하고 모든 시민이 책과 함께 성장하고 책이 삶이 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2019년 전주시립도서관 꽃심을 시작으로 12개 공공도서관을 순차적으로 리모델링하고 있다. 서가와 열람실 등으로 구성된 딱딱한 도서관에서 벗어나 모든 시민이 쉽게 접근하고 쉴 수 있는, 쉼이 있는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특히 예술, 여행, 시집 등 전문적인 서적을 열람할 수 있는 특화도서관을 적극 만들고 있다. 한옥마을에는 ‘마음여행’을 할 수 있는 한옥마을도서관, 전주 여행을 시작하는 전주역 앞에는 여행 서적을 갖춘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 연꽃이 유명한 덕진공원에는 연못 한가운데 자리한 연화정도서관 등 전주시가 직영하는 11개 작은도서관이 있다. 작은도서관들은 각자의 개성으로 전주시민뿐만 아니라 여행객들을 유혹한다.
전주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도서관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2024년 11월 말까지 매주 토요일 운영되는 도서관 여행에 참여하면 도서관 여행 해설사가 동행해 전주 도서관과 문화에 관해 설명해준다. 하루 코스(1회)와 반일 코스(2회)가 있어 각자의 취향과 일정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깊어가는 가을 도서관으로 여행 가는 건 어떨까?
사진·글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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