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봉구에 사는 스물네 살 김아무개씨는 12·3 내란사태 뒤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서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에게 “다신 도망치지 말라. 다신 회피하지 말라”고 일갈했다. 그러더니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 한번 부르고 싶었다면서 지오디(GOD)의 ‘촛불 하나’를 열창했다. 정치인을 겨냥한 매서운 눈과 세상을 향한 밝은 웃음이 한 얼굴에 동시에 담겨 있었다. 얼마나 풍부한 감정을 지니고 사는지 느껴졌다. 충격 속에 지켜본 ‘그날 밤’의 국회 영상에서는, 본관 유리창을 깨고 들어온 계엄군 한 명이 그 와중에 창가의 화분이 깨질세라 옮기는 모습이 보였다. 반듯하고 단정한 평소의 모습이 짐작됐다. 이 청년들이 서로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할 뻔했는가.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가 조금만 늦었으면 어땠을지 모골이 송연하다.
윤석열은 그 미친 짓을 벌이고도 여당에 ‘날 살려줘’도 아니고 ‘날 살려내’ 수준의 노골적인 메시지를 보내더니, 아예 ‘탄핵할 테면 해보라’고 뻗대고 있다. 일부 의원은 대놓고 부응했다. 비상계엄이 “고도의 통치행위”(윤상현)라거나 “내란죄냐 아니냐 해석의 여지가 있다”(조배숙), “민주당의 패악질을 규탄하고 탄핵의 부당함을 알리자”(나경원)는 등 갖가지 요설이 나왔다. 계엄의 충격에 더해 ‘중진’이라는 이들이 내보인 이런 야만적 처신에 참담함을 느끼는 지지자와 당원도 적지 않다. 대체 그들이 사는 세상은 어디인가. ‘내 밥그릇’이라는 프리즘으로만 세상을 보아온 보수 참칭 이익 패거리의 오랜 습속을 적나라하게 목격하니 무릎이 풀린다. 난파선에서 고깃덩어리를 챙기느라 분주한 꼴이다.
그날 밤 계엄 해제를 위해 달려오지 않은 국민의힘 의원들은 사실상 내란의 공범이다. 1차 탄핵안 표결 직전 우르르 본회의장을 떠났던 의원들은 사실상 동조자다. 유일하게 자리를 지킨 안철수 의원, 바로 다시 들어와 투표한 김예지 의원, 한참 뒤에 돌아와 물 두 잔을 들이켠 김상욱 의원 말고는 최소한 부역자들이다. 뒤늦게 2차 탄핵안에 찬성하더라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모두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한다. 윤석열의 직무를 즉각 정지시키지 않고 군통수권을 비롯한 대통령의 권한을 고스란히 쥐여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국민의힘은 이 판국에도 탄핵 트라우마를 들먹인다. 혼란 방지를 내세우지만 사실상 ‘이재명 포비아’다. 온 국민이 식겁한 내란을 목도해놓고도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듯 ‘이재명 대통령만큼은 안 된다’는 주문을 왼다. 아니, 사기꾼 거짓말쟁이 범죄자라며. 백번 양보해 그런 이가 위험한가, 자기가 무슨 일을 벌이는지도 모르는 난폭한 미치광이가 위험한가.
윤석열이 상상 이상으로 무도하다면 한동훈 대표는 짐작대로 무능하다. 당장 대통령 직무 정지가 필요하다더니 미적대며 1차 탄핵안 표결을 무산시켰다. 궁지에 몰리자 윤석열의 2, 3월 하야, 4, 5월 대선을 내밀었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도통 설명 못했다. 배신자 빌미 안 잡히고 탄핵만은 막았다는 앙상한 명분을 쥐려고? 이재명 사법리스크가 현실이 될 때까지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어보려고? 이토록 ‘질서 있는 잔머리’라니. 그조차 윤석열이 거부하니 어쩌지 못하고 꼬리를 내렸다. 정국 안정은커녕 자기 안정조차 챙기지 못한 모습이다.
내가 다 옳고 뭐든 가장 잘할 수 있다는 망상에 빠진 두 전직 검사는 정치에 뛰어든 내내 야당 탓, 이재명 탓만 하다가 끝내 몰락했다. 국민의힘도 그들과 함께 떠내려가고 있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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