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이 만든 무모한 ‘월경’

2026년 7월30일 북아프리카 모로코 북서쪽 바다에서 수많은 이주민이 스페인령 세우타로 가기 위해 헤엄치고 있다. AP 연합뉴스
배를 타고 한국에서 출발해, 바닷길로 지구를 반 바퀴만 돌아보자. 서태평양을 항해하던 배는 말레이반도에 접한 믈라카해협을 통해 인도양으로 접어든다. 짙푸른 인도양을 여러 날 항해해 다다른 곳은 아라비아반도 서남단 바브엘만데브해협이다. 해협을 지나 홍해로 접어들면, 수에즈운하를 통과해 아프리카와 유럽 대륙이 마주한 지중해를 만나게 된다. 지중해 서쪽 끝에 지브롤터해협이 있다. 곧 대서양으로 나아갈 참이다. 지브롤터를 지나다보면,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의 ‘닭 우는 소리’를 동시에 들을 수 있다. 그곳에 세우타가 있다.
‘마그레브’라고 한다. 아랍어로 ‘해가 지는 곳’을 뜻한다. 북아프리카 대륙 서쪽을 이르는 말인데, 거기에 모로코가 있다. 모로코는 마그레브의 상징이다. 수도 라바트와 함께 모로코를 대표하는 도시 카사블랑카에서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차로 5시간가량 달리면 최북단 도시 테투안에 도착한다. 대륙의 끝자락에서, 평평하던 땅은 갑자기 웅장하게 치솟는다. 테투안에서 조금만 더 북쪽으로 가면 세우타와 맞닿은 국경지역 프니데크가 있다. 세우타는 모로코 북동쪽에 자리한 멜리야와 함께 유럽연합(EU) 회원국인 스페인 땅이다. 유럽연합 번호판을 단 차량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다. 가난한 아프리카와 잘사는 유럽, 식민주의의 유산은 21세기에도 여전하다.
세우타에는 약 6m 높이의 두 겹 철조망이 두 대륙을 분리하고 있다. 아프리카 전역에서 짧게는 5~6개월, 길게는 2~3년씩 목숨을 내걸고 사하라사막을 건너온 이주민이 세우타의 철조망을 넘은 지는 이미 오래됐다. 일정한 주기를 두고, 하루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이 세우타와 멜리야에서 철조망을 넘어 유럽으로 향했다. 불법 이주민 집단의 진입 시도는 세우타와 멜리야에서 흔한 일이다. 그래서 2026년 7월 말의 상황은 이례적이다.
2024년 11월14일 알제리 출신 이주민이 모로코 북서부에서 바다로 뛰어들었다. 목적지는 세우타, 곧 유럽이었다. 바닷길을 헤엄쳐 건넌 그는 세우타에서 스페인 당국에 체포된 뒤 곧바로 모로코로 추방됐다. 그는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추방이라고 맞섰다. 소송은 세우타 지방법원과 안달루시아 고등법원을 거쳐 스페인 대법원까지 옮겨갔다. 스페인 대법원은 2026년 7월8일 “육상 경계선을 불법으로 넘어온 이주민과 해상을 통해 경계선 침범 없이 도착한 이주민은 차이가 있다. 해상을 통해 넘어온 이주민은 육상 경계선을 침범한 불법 이주민처럼 ‘즉각 추방’(이른바 ‘핫 리턴’)할 수 없다. 개별 신원을 확인하는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의 판결문은 7월28일 공개됐다.

2026년 7월30일 스페인령 세우타와 인접한 모로코 프니데크에서 이주민들이 국경선 통과를 위해 모여들고 있다. AFP 연합뉴스
“7월22일에서 23일 사이 스페인 당국과 대법원의 판결이 끼칠 영향에 대해 협의했다. 대법원의 판결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스페인 쪽에 전달했다.”
모로코 이민당국자는 8월4일 유로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소셜미디어를 타고 ‘가짜뉴스’가 넘쳐났다. 불법으로 국경을 넘은 이주민은 스페인 이민법 규정에 따라 추방될 수밖에 없음에도, “헤엄쳐 세우타에 도착하면 스페인 정부가 당신을 추방할 수 없게 됐다”는 주장이 난무했다. 7월30~31일 줄잡아 6만 명의 이주민이 모로코에서 세우타로 바닷길을 통해 들어갔다. 세네갈·말리·모리타니 등지에서 사하라사막을 넘어온 ‘전통적 이주민’이 아닌 모로코 청년이 대부분이었다. 유럽 극우세력은 반색하며 비판 시위에 나섰다. 스페인은 이민정책에 온건적인 좌파 진영이 집권하고 있다.
2025년 9~10월 모로코에서도 이른바 ‘제너레이션 제트’(젠지) 시위가 벌어졌다. 일부 병원에서 제왕절개수술 도중 숨진 산모가 급증하면서 촉발된 시위는 모로코 국가 전화번호(+212)를 형상화한 깃발 아래, ‘자유·존엄·사회정의’를 요구하는 전국적인 규모로 타올랐다. 시위에 참여한 청년운동가들은 줄줄이 체포·구금됐다. ‘혁명 열기’는 시작하기도 전에 꺾였다. 모로코 정부가 강경하게 탄압한 탓이다. 모로코 인구의 3분의 1가량이 15~34살 청년층이다. 모로코의 청년 실업률은 30~35%다. 2030년 피파(FIFA) 월드컵을 스페인·포르투갈과 공동 주최하기로 한 모로코 정부는 교육·의료·복지 예산 등을 대폭 삭감하고,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경기장과 부대시설 건설에 집중하고 있다. 미래가 없는 청년들이 눈 감고 ‘유럽’으로 향한 이유다. 그들 대부분은 8월1~2일 자발적으로 모로코로 돌아갔다.
스페인은 자치령인 세우타와 멜리야를 각각 1640년과 1497년 점령했다. 유럽 국가의 식민주의는 역사가 깊다. 1884년 모로코 남부 서사하라 지역을 식민화했던 스페인은 프란시스코 프랑코 군사독재 정권이 몰락한 1975년에야 그곳에서 자발적으로 물러났다. 이후 모로코가 서사하라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서사하라 주민들은 독립국가 건설을 내걸고 ‘폴리사리오 전선’을 설립해 대항했다. 국경을 맞댄 알제리가 폴리사리오 전선을 지원했다. 스페인은 신경 쓰지 않았다. 분쟁은 지금껏 이어진다.

2026년 7월31일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의 모로코 대사관 앞에서 극우단체들이 ‘반이민’을 내걸고 시위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1년 폴리사리오 전선 지도자 브라힘 갈리가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스페인에서 요양했다. 모로코는 즉각 반발했다. 모로코가 국경을 풀자 줄잡아 8천여 명이 순식간에 세우타로 들어갔다. 세우타 국경은 모로코의 ‘압박 밸브’인 셈이다. 왕정국가인 모로코는 이슬람국가임에도 미국·이스라엘과 가깝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서사하라에 대한 모로코의 ‘주권’을 인정한 바 있다.
앞서 가자지구와 이란 전쟁에 비판적인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7월20일 알제리를 방문해 “전면적인 외교 강화”를 강조했다. 산체스 총리를 비롯한 유럽연합 지도부가 이번 사태를 두고 “모로코 정부가 조장한 것”이라고 의심하는 이유다. 실제 “세우타 국경지대에서 모로코 국경 단속요원이 불법 이민자의 초소 통과를 묵인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꿈 없는 아프리카 청년들이 무지막지하게 유럽으로 향한다. 유럽엔 꿈이 있나? 2026년 7월 유럽연합 회원국의 평균 실업률은 6.3%, 청년 실업률은 15.5%다. 쉽지 않은 세상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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