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견제하려다 골목상권 잡을라
홈플 사태 계기로 새벽배송·의무휴업 폐지 시도… 중소상인 “온라인플랫폼법 먼저 도입”

2026년 4월14일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가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민주노총 제공
‘의무휴업일’이 일요일에서 평일로 바뀐 대구 지역 대형마트의 생활잡화 코너에서 일하는 ㅇ씨는 지난 3년6개월 동안 삶의 질이 심각하게 떨어졌다고 했다. 대구시는 2023년 2월10일 전국 최초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기존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일괄 전환했다. ㅇ씨는 “가족모임이나 경조사가 대부분 일요일에 있는데, 참석을 잘 못하다보니 ‘투명인간’이 된 것 같다. 같은 팀 동료는 교회도 못 가는 상황”이라며 “일요일에 일해도 휴일수당을 받는 것도 아니고, 휴무일이 된 월요일도 연차를 쓰고 쉬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전환은 노동자 사이에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ㅇ씨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일요일에 꼭 쉬어야 할 땐 다른 팀원과 근무를 바꿔야 하는데 눈치도 보이고 뒷말도 나온다”며 “그래서 다른 점포에선 일요일 휴무 순서를 정할 때 제비뽑기까지 한다더라”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홈플러스의 파산 위기 등으로 대형마트 업계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정부가 지난 14년간 유지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쿠팡 등 이커머스(전자상거래)와 비교해 비대칭적 규제를 해소하기 위한 새벽배송 허용, 골목상권 보호를 이유로 유지된 의무휴업일 폐지가 핵심이다. 최근엔 산업통상부가 대형마트 업계 관계자들을 불러 간담회를 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노동·시민·중소상인 단체로 꾸려진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는 2026년 7월22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를 규탄하는 등 반발했다.

2026년 4월14일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가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민주노총 제공
정부가 손보려는 유통법은 2012년 개정된 뒤 14년간 유지됐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내용이 핵심으로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문을 열지 못하게 하는 영업시간 제한, 매월 이틀(둘째·넷째 일요일)을 쉬게 하는 의무휴업 규정을 담고 있다. 대형마트 업계는 코로나19 이후 쿠팡을 비롯한 이커머스 이용률이 급속히 높아지며 업황이 악화하자 그간 꾸준히 유통법 개정을 요구했다.
정부와 여당은 2025년 11월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김범석 의장이 국회 청문회 출석을 거부하는 등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자 ‘쿠팡 견제’를 위한 방편으로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가능하도록 하는 법 개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 시도는 노동계의 거센 반발은 물론 미국 정부를 동원한 쿠팡의 ‘통상·외교 마찰’ 이슈 제기에 부딪혔다. 강우철 민주노총 마트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새벽배송 확대는 노동자의 희생을 갈아 넣어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새벽배송 탓에 쿠팡에서 수차례 과로사가 발생했고, 현재도 배송·물류 현장 노동자는 장시간·고강도 노동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또 다른 쿠팡을 양산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대형마트 업계 역시 새벽배송 허용의 실익이 크지 않다고 본다. 1500만 유료 와우회원을 기반으로 이미 시장의 판도를 틀어쥔 쿠팡과 경쟁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판단에서다. 앞서 롯데마트는 새벽배송에서 쓴맛을 봤다. 롯데 통합 온라인몰 ‘롯데온’은 2020년 5월 새벽배송 서비스 ‘새벽에 온(ON)’을 론칭했으나 2022년 4월 전면 철수를 선언했다.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의 7월22일 리포트를 보면, 이마트의 새벽배송 비중은 온라인 부문인 쓱(SSG)닷컴 거래액의 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6년 4월8일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가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유통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민주노총 제공
이런 까닭에 대형마트 업계는 이번 논의를 지렛대로 새벽배송보다는 숙원사업인 ‘의무휴업일 폐지’를 관철하려는 모양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전국 매장을 물류 거점으로 삼는다 해도 새벽배송에 소요되는 인건비와 차량 확보 등 막대한 추가 비용을 고려하면 쉽사리 투자에 나서긴 힘들다”며 “월 2회 일요일 의무휴업 폐지가 당장의 수익성 개선에 훨씬 큰 영향을 준다. 휴일 매출이 평일에 견줘 1.5~1.7배에 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미 2023년 대구를 시작으로 부산과 서울 일부 지역(서초·동대문·중구·관악), 경기(의정부), 충북(청주) 등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226곳) 중 13%에 해당하는 30여 곳이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했다. 이로 인해 2025년 기준 전국 67개 대형마트와 245개 기업형슈퍼마켓(SSM)이 매주 일요일에도 영업 중이다. 여기에 더해 홈플러스가 파산 위기에 몰린 것도 유통법 개정을 요구하는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대형마트의 위기가 단순히 온라인에 유리한 비대칭적 규제 탓만은 아니라는 반박이 나온다. 전수찬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객원연구위원은 “전체 유통업체 매출 가운데 대형마트 비중은 2021년 15.1%에서 2025년 9.8%로 큰 폭의 하락을 했지만 같은 오프라인 업종인 백화점은 2021년 14.7%에서 2025년 14.2%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SSM도 2021년 2.7%에서 2025년 2.2%로 소폭 감소에 그쳤다”고 짚었다. 전 연구위원은 이어 “심지어 대형마트 3사가 매출 하락을 겪는 동안 미국계 대형마트인 코스트코는 2021년 5조5354억원에서 2025년 7조3220억원으로 매출이 크게 늘었다”며 “새벽배송 금지나 의무휴업 때문이 아니라 1인 가구 증가 등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를 읽지 못한 안일한 경영에서 위기가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소상인들은 유통법 개정 시도를 ‘생존권 위협’으로 바라본다. 중소상인들이 이미 대형마트보다 더 큰 어려움에 내몰린 탓이다. 소매업 판매액 변동을 나타내는 ‘소매업태별 판매액지수’(불변지수)를 보면, 대형마트 판매액지수(2020=100)가 2021년 98.8, 2023년 95.6, 2025년 88.9로 하락하는 동안 일반 슈퍼마켓 및 잡화점은 92.6, 86.1, 80.6으로 더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시장 현황 역시 영업점포는 2020년 18만1574개에서 2024년 16만8334개로 4년 새 7.3% 줄었다. 같은 기간 영업을 하지 않는 빈 점포 수는 2만615개에서 2만4274개로 17.8%나 늘었다.
박용만 한국마트협회 회장은 “골목상권의 중소마트는 한 달에 10~15개씩 폐업하고 있다. 이커머스 공세를 핑계로 정부가 대기업인 대형마트 규제 완화를 추진하면 중소상인과 자영업자는 결국 쿠팡과 대형마트라는 두 공룡에게 짓밟힐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서경옥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부회장은 “정부 말대로 비대칭 규제가 문제의 핵심이라면 중소상인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휴식권을 위협하는 대형마트 규제 완화가 아니라, 쿠팡 같은 온라인 플랫폼의 횡포를 규제할 수 있는 온라인플랫폼법 도입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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